2012년 4월 30일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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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지구에서 통진당 패배는 새로운 노동자정치의 기회인가?
- 정규직에만 맴도는 협소한 계급대표성에서 노동자 정치는 없다 -
문창호  ㅣ  2012년4월30일

부산경남의 민심이 새누리당에 등 돌리고 있다. 부산에서는 16대2, 경남에서는 14대1로 새누리당이 야권연대(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에 압승한 것 같지만, 의석수가 아닌 정당득표율을 보면 부산 51.3%대40.2%, 경남 53.8%대36.1%로 격차가 크게 줄어든다. 소선거구제로 인해 새누리당이 의석수에서 과잉대표된 것이다. 반면에 서울에서는 야권연대가 소선거구제의 이점을 누렸는데, 정당득표율에서는 48.7%대42.3%이지만, 의석수는 딱 2배이다. 득표수로 따져보면 수도권에서의 여야 간 격차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점에서, 영남권 민심의 이반 현상은 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오히려 노동자의 도시, 진보 1번지라는 울산, 창원의 시간은 거꾸로 가고 있다. 민노당이 지역구 의원을 배출해온 울산북구, 창원을(현 창원성산)은 물론 울산, 창원 전역에서 통진당 후보는 모두 낙선하고, 새누리당이 싹쓸이 했다. 이를 진보신당과의 분열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어 보인다. 단 한 곳을 제외한 울산, 창원의 전 지역구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과반 득표했다. 권영길 지역구였던 창원성산에서만 새누리당 후보가 49% 득표했는데, 떨어진 통진당과 진보신당 표를 합하면 50.9%로, 여기서만 진보 분열이 패배의 직접이유가 됐다. 그렇지만 같은 새누리당 후보가 지난 총선에 비해, 진보 둘이 함께 늘린 표보다도 많은, 13,000여 표를 더 획득해 당선됐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의 성장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PK 일반의 변화에 비쳐보면 반동적으로까지 보이는 울산, 창원의 상황은 이유가 뭘까? 무려 노동자의 도시에서 반동이라니 말이다. 이에 관한 프레시안 기사(“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을 버렸나, 그 반대인가”)는 통진당의 실패한 선거전략(후보문제 등)과 흔들린 정체성의 문제가 노동자들의 지지세에 균열을 냈고, 이 틈으로 박근혜의 영향력이 스며든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손호철 교수도 총선 직후 통진당을 향해 “우경화됐으면 표라도 얻거나 아니면 이념이라도 지켰어야 했는데 (이념도 잃고 표도) 못 얻었다”고 혹평했다.

불만을 품은 수혜자들


하지만 노동자라는 뭉뚱그린 표현으로는 사태의 핵심, 즉 노동자 내부의 분열과 서로 상반된 경향을 놓칠 수밖에 없다. 울산, 창원에는 대공장과 그 하청, 협력업체들이 집중돼 있다. 97년 이후 재편된 대공장 노동체제의 주된 특징은 정규직에 대한 포섭과 비정규직에 대한 배제이다. 대공장 정규직은 노조로 조직돼있고 고임금과 상대적 고용안정을 누리며 단협으로 어느 정도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대공장 정규직은 이중적 존재인데, 현 노동체제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불안,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조건에 놓여 있다. 먼저는 쌍차, 한진중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회사의 구조조정 앞에서는 정규직도 취약하다. 자본은 그동안 정리해고제를 적극 활용해왔는데, 대부분의 사업장들이 구조조정을 겪었고, 이에 정규직 사이에서도 고용불안 심리는 상당하다. 또한 임금이 물량에 연동돼 있어 잔업과 특근을 하지 않고서는 고임금을 유지할 수 없고, 이로 인한 장시간 노동과 근골격계 질환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특히 자동차업종에서는 교대제에 의한 심야노동 문제까지 겹쳐져 있다. 이외에도 자본은 현장통제, 노조무력화 등으로 조직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조직노동자들은 여러 이익을 향유한다는 점에서는 현 노동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바라지는 않겠지만, 앞의 이유들로 한편으로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해서는 변화와 개량을 바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대공장 정규직=‘개량주의적 노동계급 상층’). 실제로 금속노조, 민주노총은 정리해고제 폐지, 임금축소 없는 노동시간 단축(주간연속2교대제) 등을 핵심 요구로 걸고 있다. 반면에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미조직노동자의 경우에는 길게 말할 것도 없이 현 체제의 일방적인 피해자들이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건 대공장 정규직 집단이 그들의 불안, 불만을 해소시켜보려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은 외면하면서 자신들 문제의 해결에만 매달리고, 심지어는 비정규직을 희생시키는 이기주의, 실리주의로 경도돼왔다는 것이다. 이를 노사협조적 지도부의 문제 내지는 일시적 분위기로 바라볼 수 없는 점이 대공장 노동체제가 개량적 요구를 길들이는 방식이 약자의 희생 위에서의 자본과 정규직의 담합이기 때문이다. 즉 자본은 현 노동체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비정규직 차별 해소, 정규직화, 완전고용보장, 생산성 부차화 등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하고, 한편으로는 적절한 수준의 타협에는 길을 열어놓고 민주노조운동을 압박하면서, 대신 타협의 비용을 다른 집단에게 전가하는 식으로 체제를 재생산해왔다. 그 결과, 구조조정 대상자와 비정규직이 그 비용을 치러온 것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의 고용안전판 정도로 활용하는 게 비근한 예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비용 전가를 의식하든 안하든 간에 일부 대공장 정규직들은 명백히 자본의 공모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조차도 산 자와 죽은 자의 구분처럼 회사 밖으로 굴러 떨어지면 끝이라는 공포에 불안해하는 게 대공장 노동체제의 한 모순이다.

노동자정치세력화 실패와 책임자들

이상이 대공장 민주노조운동이 ‘정규직 제한적 포섭-비정규직 배제’의 노동체제에 부정적으로 적응하면서 퇴보해버린 데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또한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실패한 핵심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조운동의 노동자정치세력화 열망에 의해 창당되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민노당의 노동자 배신행위들과 어처구니없는 모습의 분열, 그리고 통진당의 국참당과의 합당 등을 탈노동자정당화로 규탄하고 이러한 의미에서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새로운, 제대로 된 노동자정당을 만들겠다고 한다. 분당과정에서 노동자정치를 유물 마냥 비웃던 진보신당까지 다시 노동자를 호명하고 있다. 통진당에 등 돌린 의식있는 노동자들을 잡아보겠다는 심산들이다. 통진당의 노동자지구에서의 참패는 과연 새로운 노동자정치의 기회가 될까?

무엇보다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주노총이 민노당-통진당을 지지해왔고, 또한 노동자정치세력화 실패의 사회적 토대, 기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공장 정규직은 불만을 품은 수혜자라는 이중적 존재라서,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자신들의 불만 조건을 개선하고 지위의 강화를 원한다는 점에서 개혁주의, 개량주의에 이끌린다. 조합원들의 불안과 불만은 정리해고제와 기업들의 구조조정 남용, 장시간 노동 등에 집중돼있고, 한편 상층 지도부는 산별교섭, 전임자 문제 등의 해결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이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직접 투쟁하기보다는 국회에서 해결하는 그림이 싸게 먹히고 현실성도 크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반MB 야권연대는 최선으로 보일 수도 있다. 사실 떡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 것 같지만. 또 이 과정에서 통진당의 선명한 계급정체성이나 비정규직 문제의 제대로 된 해결 같은 건 그들에게 부차적 의미 정도밖에 갖지 않을 것이다. (이는 2008년 이래로 사회주의자들의 반-민노당 선전이 운동진영에서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울산, 창원에서 도대체 어느 노동자가 새누리당에 표를 던진 것일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대공장 노동체제의 일방적인 피해자들인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그들이다. 다른 영남권 지역들과는 오히려 반대로 노동자도시라는 울산, 창원에서 새누리당이 더 득세한 데에는 비정규직 배제의 대공장 노동체제에 이유가 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05년 울산북구 재선거에서 한나라당은 현대차노조 위원장 출신 민노당 후보를 비정규직 양산의 주범으로 몰며 당선한 바 있다.) 자본과 담합해 자신들에게 비용을 전가하고 있는 정규직과 그 대표선수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고울 수가 없다. 비정규직은 두 번의 박탈감을 느낀다. 회사에게서 한 번, 정규직에게서 또 한 번. 이 상처 사이로 보수의 영향력이 파고든 것이며, 여기에 계급투표 조직과 계급형성에 실패한 진짜 이유가 있다. 불만을 품은 수혜자들의 알량한 개혁 요구와 그들이 쓴 진보라는 탈의 위선에 미조직 비정규직은 혐오까지 느끼며 더 뒷걸음치고 있다. 선거운동기간 중 이정희 대표가 비정규직 집회에 참석도 못하고 현대차 간부들만 만나보고 상경했던 일은 꽤 상징적이다.

파괴없이 창조도 없다!

이상의 내용에서 다음의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노동자정치세력화 실패는 조합원들의 실리주의, 이에 영합하는 상층의 관료주의와 개량주의 정치가 원인이며, 또한 이러한 경향들을 지속시키는 물적 토대가 존재한다. 따라서 실리주의, 관료주의, 개량주의와의 투쟁은 선언이 아니라 그 물적 토대를 해체해 들어가는 과정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할하고 있는 노동체제, 자본주의적 생산이 진정한 투쟁대상이라는 점에서 투쟁의 내용은 새로운 생산관계를 담보해가는 반자본주의, 사회주의여야 한다. 이 투쟁전선에서 비정규직이 반드시 주체로 서야 하며, 정규직의 개혁적 요구를 상승시키고 단일한 계급의식을 형성시킬 수 있는 공동투쟁의 틀을 형성해야 한다. 우리는 이에 관해서 노동자통제, 소유사회화 등의 요구를 내건 공장위원회 건설에 대해 주장해왔다. 또한 새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새로운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정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도 주장해왔다. 통진당의 패배는 어떤 기회도 아니다. 거저 얻겠다는 건 거지근성에 불과하다. 우리가 묵묵히 해나가야 할 지난한 과제에 대한 또 한 번의 확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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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좌파정당 비판] 정세대응과 당건설의 변증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