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희망을 보았다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강렬한 교훈 하나는 “세상에 발언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한마디를 하기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았다. 그 시절에는 그 한마디가 그리 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제 시대가 지나, 젊은이들이 대의에 목숨을 내놓는 일은 줄었지만, 여전히 젊은이가 세상에 무언가를 요구하려하면 세상은 그에게 소중한 무엇을 요구하거나 앗아간다.

입시폐지를 요구하고, 대학서열화를 폐지하라는 요구를 하며 한 젊은이가 10대 수년 동안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이룬 목표와 성과를 과감히 세상에 내놓았다. 서울대 졸업장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06학번인 유윤종(23)은 13일 교내 4곳에 붙인 ‘저번 주에 자퇴서를 냈는데…’라는 제목의 대자보에서 “제가 대학을 그만두는 이유는 대학 서열 체제와 입시 경쟁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며 이번에 병역거부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자퇴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더욱 주목할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결단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투명가방끈이라는 청소년 단체와 함께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에 맞춰 대학입시 거부 선언과 대학 거부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병든사회의 원인균, 대학입시제도, 그러나 입시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

우리는 이 땅에서 대학입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서울대, 아니 그중에서도 인기과 입학자 수백명을 제외하고는 수십만명의 입시생이 불행해지는 줄 세우기 입시제도가 얼마나 어이가 없는 제도인지를. 그리고 그렇게 잘 알면서, 우리는 그 서열에 기꺼이 굴복한다. 잔업, 특근을 밥 먹듯 해 제살 깎아 번 돈을 과외비로, 그리고 과고, 외고 입시학원비로 기꺼이 지출하는 노동자는 어디든 널려있다. 대학은 대학대로 대학서열의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언론사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고, 대학서열의 앞자리에 있는 대학들은 등록금을 지금보다 3,4배 올려도 오려고 하는 학생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반값등록금을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 코웃음을 친다. 입시와 관련해 이 사회는 깊이 병들어 있다. 이 병든 사회를 통해 천문학적인 이익을 올리고 있는 사학재단과 입시산업은 이 사회의 독버섯이다. 

그러나 대학입시제도를 선착순으로 바꾸어 세상을 놀라게 한 베네주엘라에서 이른바 엄격한 선발제도는 가난한 지원자를 솎아내기위한 꼼수정도로 폄하된다. 대학입시에서 70%가 만점을 받는 영국에서 줄세우기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나 대학입시제도에 대한 가장 통렬한 반박은 1999년부터 2,000년까지 9개월간 UNAM(멕시코국립자치대학)에서 벌어진 동맹휴학이다. “모든 멕시코 젊은이에 대한 평등한 교육기회의 제공”를 제기했던 학생들은 수백명이 구속되면서도 년간 3만원의 등록금과 추첨제 입시제도를 지켜냈다. 40만의 학생이 다니는 UNAM에서 추첨제(뺑뺑이)로 들어온 학생들 중에 3명이나 노벨상을 수상했다.

병든 세상에서 용기는 외롭다

입시제도는 시장화된 교육을 떠받치는 명분과 당위를 제공하는 가장 강력한 이념적 도구다. 점수로 표현되는 학생 개개인의 서열은 서열화된 대학과 만나 한국판 카스트제도(계급)을 형성한다. 상품화된 교육을 받으며 학생 스스로 상품이 된다. 명품교육을 구매하여 스스로 명품이 된다는 환상에 모두가 빠져있다. 그리고 상품화된 교육은 학생을 숙주삼아 교육시장을 끝없이 재생산한다. 이제 한 학생이 이 재생산의 고리를 끊기 위해 세상에 전쟁을 선포했다.

유윤종은 본인의 바램과 달리 사람들에게 서울대 자퇴생으로 불릴 것이다. 본인이 기득권이라 생각해 거부했던 그 꼬리표를 평생을 달고 살 운명이다. 그러나 걱정마시라! 입시제도와 병역제도에 저항해도 떨어지지 않는 꼬리표지만 입시제도로 생명을 이어가는 상품화된 교육의 주된 원리인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순간 아주 쉽게 떨어질 것이다. 헬렌 켈러가 1차 세계대전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반대하는 순간, 이 기적의 소녀는 순식간에 매국노에 정신 나간 장애인이 되었다. 이제 입시제도 철폐투쟁을 그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세력은 자본주의에서 고유한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제조라인을 뒤흔드는 반체제 세력이 될 운명이다. 그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투명가방끈이 되기를 희망하며, 어린 혁명가들에게 노동자계급의 최대한의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