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사회주의정치신문 / 호

[칼럼] 안철수 신드롬과 노동자 계급

박남일 ㅣ 2011년10월21일(금)

참 대단하다. 서울 시장 보궐 선거 출마를 잠깐 고민했을 뿐인데도 여론이 들썩였다. 안철수 교수 이야기다. 마침내 그는 50%대의 지지율로 무장했다. 그러고도 ‘쿨’하게 박원순 변호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일찌감치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고도 5%대의 지지율에 머무르던 박원순 변호사는, 그로 인하여 ‘야권 단일후보’로 본선에 나서게 됐다. 이쯤 되면 안철수의 손은 ‘미다스의 손’으로 불려도 좋을 터다. 게다가 그런 깔끔한 태도가 돋보여, 이제 안철수는 철옹성 같은 박근혜를 누를 강력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른바 ‘안철수 신드롬’이다.

안철수가 이처럼 대중의 환호를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부르주아 논객들이 가장 흔히 내놓은 분석 결과는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다. 주류 정치권이 먹고 사는 일, 즉 경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보여주지 못한 채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골몰한 데 대한 실망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끊임없이 제기되는 정치권의 도덕성 문제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터에 학력과 인성, 경영능력을 두루 갖춘 신선한 엘리트가 등장하자 민심이 구세주를 만난 듯 요동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론들의 해석을 요약하면, 안철수 신드롬의 원인은 주류 정치권의 경제적 무능력과 도덕성 결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별로 새로울 게 없다. 이명박이 정치 무대에 등장한 10여 년 전이나, 더 거슬러 올라가 박정희가 군사정변을 일으킨 50년 전에도 이미 기회주의 언론들이 떨어댔던 호들갑의 연장일 뿐이다. 여기에는, 왜 넓은 세상의 수많은 일이 몇몇 정치 엘리트의 개인적 능력이나 도덕성에 좌지우지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다.

그렇다면 안철수 신드롬의 본질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그것은 사람들 뼛속까지 파고든 ‘영웅주의’의 발현이다. 역사는 시대적 영웅이나 뛰어난 지도자에 의해 발전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철학적 오류의 산물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모든 민주적 권리를 오로지 투표용지 한 장에 억지로 위임하고, 정작 자신은 정치적으로 아무런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는 기층 대중의 답답한 심경이 안철수라는 매력적인 엘리트에게 투영된 결과다.
하지만 그는 자본주의에 충실한 모범생이다. 노동자계급에게 그는 그저 모양 좋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과거에 노무현이나 이명박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청와대 주인이 되는 순간 자본가계급의 방패막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도 그는 노동자들의 친구가 아니다. 예컨대 작금의 용산 사태나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해고문제에 대해서, 심지어는 서울시 무상급식에 대해서 단 한번이라도 용기를 내서 명쾌한 입장을 밝힌 적이 있던가. 그 점에서는 안철수의 기(氣)를 받은 박원순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노동자는 관심 밖이다.

한편으로 안철수 신드롬은 우리 사회의 저열한 계급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모든 정치적 권리를 부르주아 정당이 달라는 대로 내주고 정작 자신은 아무런 정치적 대안도 보여주지 못한 노동자계급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크다. 특히 민주노동당 같은 유사(類似) 노동자정당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비한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가 2.28%의 득표로 꼴찌에 머무른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사회주의를 포기한 결과는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들러리인 셈이다. 특이한 것은 이토록 처참한 결과에 대하여 여태 민주노동당은 꿀 먹은 벙어리라는 점이다.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수많은 논객들도 관심 밖이다. 으레 그러려니 하는 모양이다.

지금 대공황에 직면한 자본주의 체제는,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고장 난 기관차 신세다. 노무현이나 이명박이 그런 것처럼 안철수 또한 달리는 기관차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무책임하게 손을 털거나, 경제를 살리겠다며 멀쩡한 강에 삽질하는 일 뿐이다. 고장 난 기관차를 멈추게 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계급뿐이다. 구세주는 없다. 노동자 계급이 거침없이 전면에 나서서 정치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고약한 세상을 바꾸는 힘은 안철수도 박원순도 아닌, 바로 노동자 계급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안철수와 노동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