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이른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한 건 지난 추석 직전인 9월9일이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너나 할 것 없이 정치권 모두가 비정규직 대책을 쏟아내고 있는 와중이었지만, 그 주체가 정책입안과 집행의 주체인 정부여당이란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종합대책’은 종합적이지도 않고, 대책은 더더욱 아니었다.

정부여당이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한마디로 ‘노동유연화 완성 대책’이라 할만 하다.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이고 유일한 해법이라 할 수 있는 원청 사용자성 인정이나,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광범위한 외주-사내하청 확산 방지대책 마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오히려 ‘사회보험료 지원’ 등과 같이, ‘차별 해소’를 명분으로 자본의 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마음 놓고 쓸 수 있도록 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야말로 ‘MB스러운’ 대책이 나온 셈이다.

정부여당이 이번 대책을 통해 내놓은 핵심적인 방향은 △차별 개선 △사회안전망 확충 △노사상생 △불법파견 규제 강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등으로 요약된다.

‘영세사업장 저소득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을 위해 비용을 지원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는 사회안전망 확충의 경우, 차별을 양산하는 다단계 생산구조의 정점에 서있는 대규모 원청의 책임은 일체 묻지 않는다. 오히려 영사사업장 사업주 지원(그래서 사실은 원청사용자가 책임져야 할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형식)을 마치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착시효과를 불러온다.

차별해소와 관련해서도, 기존의 차별시정제도가 보여 왔던 고질적 문제인 ‘업무를 기준으로 한 직무-고용형태 분리’라는 자본의 회피책을 그대로 인정하는 셈이다. 자본이 ‘차별여부를 비교할 대상’을 아예 없애버리는데, ‘동종 유사업무 차별 시정’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불법파견 근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내하도급 양산’의 다름 아니란 사실을 알기 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정부 대책대로라면 불법파견이 줄어들긴 커녕, ‘사내하도급’이란 이름으로 제조업 파견 등이 오히려 확대될 지경이다. 여기에 더해 상용형 파견에 대해서는 규제를 완화해 활성화를 유도하겠다고 하니, 이런 대책 없는 대책이 들어본 적도 없다.

고용관계의 다변화 속에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은 아예 전무하다. ‘노동3권 보장’이란 근본 해법은 애써 외면한 채, ‘산재보험 일부 적용’ 등 봉합책만 늘어놨다.

본격적인 비정규 노동자 투쟁이 시작된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사회적 쟁점이 됐던 대표적인 비정규 투쟁들 하나 하나를 떠올려보고, 여기에 이번 정부여당의 비정규대책을 대입해보면, 어느 것 하나 해결되는 것이 없다. 오히려 자본의 노동유연화를 촉진해 불법을 합법화 해주고, 이를 통해 비정규 노동자 투쟁을 억압하는 효과만 더욱 늘어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제 비정규 대책은 새롭게 만들거나 연구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 투쟁 속에서 요구와 과제가 이미 수립돼 있다. 이를 실행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기본권 보장, 파견법 폐지와 간접고용 규제, 원청 사용자성 인정,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등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쳐왔던 내용들이다.

민주노총은 정부여당의 비정규직 종합대책 발표 직후 논평을 통해 ‘정부와 여당이 뒤늦게나마 이 문제에 대하여 대책을 고민하고 마련한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대책을 내놓은 게 어디냐’는 식의 평가는 곤란하다. 민주노총이 같은 논평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한 근본대책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대책은 그동안 정부의 성격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유지돼 온 ‘노동유연화’ 기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말이 ‘대책’이지, ‘자본을 위한 비정규직 양산화 지원책’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지경이다. 노동유연화 저지와 비정규악법 폐지, 노동관계법 전면 재개정만이 ‘유일한’ 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