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7일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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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는 민중들의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지켜낼 수 있을 뿐이다
김광수  ㅣ  2010.12.17

이명박과 세습정권의 헛발질이 사람을 죽였다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더니, 마침내 연평도에서 포가 터졌다. 포격이 발생한 후 주민들은 혼비백산하여 가재도구도 못 챙긴 채 뭍으로 피난을 가고, 가난하고 백없는 탓에 입대한 젊은 군인들과 돈벌이에 몰려 섬까지 건너간 건설노동자들이 생떼 같은 목숨을 잃었다. 북정권은 수차례의 경고에도 남한 군인들이 자신들의 영해에 포탄을 발사한 것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타국영토에 대한 포탄 발사는 사실상 전쟁도발행위이다. 게다가 압도적인 전력열세에 있는 외딴 섬의 군인들과 민간인들을 공격하여 희생자가 발생한 것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군사충돌을 예견되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등장한 이래 PSI 훈련 참여, 천안함 사건이후 유엔제제결의안 등 미국과 공조해 북한을 압박하는 강도를 계속 높여온 것은 한반도에서 일촉측발의 긴장을 조성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또한 전략적 인내라는 명분으로 6자회담을 사실상 좌초시키고 북한에 대한 압박의 수위만을 유지하고 대북적대 정책을 주도한 미국은 이번 사태에 가장 큰 원인 제공자다. 


왜 대북정책은 실패했는가?


사태가 벌어지고 나자, 이명박 정권은 가소롭게도 이번 사태가 지난 정권의 햇볕정책의 결과라고 들고 나왔고, 발끈한 민주당은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실패가 주원인이라고 받아치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를 계기로 햇볕정책도, 대북강경책도, 미국의 전략적 인내도 모두 실패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햇볕정책은 남북간의 경제 교류를 통하여, 북한을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서서히 편입시켜 체제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체제긴장을 줄임으로서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고, 이북을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편입시켜 통일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했다. 실제 햇볕정책은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낸 것도 사실이다. 북한정권은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내걸고, 공산당 일당지배를 유지하며, 관료들의 이해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본주의로의 변신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던 과정을 주목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돌파하는 유력한 수단중의 하나로서 남쪽으로의 대외개방을 시도했고, 그 성과중의 하나가 개성공단의 조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긴장완화에 다소 도움이 되었던 햇볕정책도 북미관계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려웠다. 북한의 전략도 북미관계 개선에 놓여 있었고, 남한의 작전지휘권도 미군에 있었고, 태평양 함대의 지휘권도 사실상 주한미군 사령관에 있는 사정상 북미관계의 개선 없는 평화체제 구축은 애초에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은 사실상 북미관계 개선의 보조적인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또한 남한 독점부르주아들은 태생부터가 미국의 적산불하로 시작됐고, 독재정권시절에 정경유착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부르주아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진보적인 역할을 하는 데 무능할뿐더러, 부르주아들의 전위라 할 정치권의 세력들은 수구, 친미, 친일의 뿌리가 너무 깊어서 햇볕정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김대중의 적자라 불린 노무현 정부에서 조차 햇볕정책이 흔들렸던 것은 이러한 사정을 웅변해준다. 2차대전 후 나치의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동방정책을 수행하고, 소련의 경제재건을 대가로 중부유럽의 패권을 포기하게 한 독일 부르주아의 영민함을 남한의 부르주아들은 흉내 낼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명백한 한계에다 이명박정권은 햇볕정책의 뒤집기에 나섬으로서 북핵문제에 대한 전략적 지속성을 흔들어, 이것도 저것도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바마 정권은 중동문제에 집중한다는 명분으로 6자회담마저 사실상 방기하고, 북한이 먼저 양보하기를 기다린다는 전략적 인내를 내세웠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적 인내는 사실상 대북정책의 유보입장이고, 소외정책이었기 때문에 북한이 관심 끌기, 사고치기로 일관하는 사태를 사실상 조장했다.


남한 정부가 미제국주의자들의 세계전략에 종속되어 있는 한 분쟁은 이어진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정착되는 것은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북이 핵개발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제국주의자들의 대북적대정책이 유지되고, 남한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종속되어 있는 한 북이 핵개발을 포기해도 충돌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때 대미자주외교를 주장하고, 전시작전권 환수를 추진하다가 이라크에 파병을 결정하고, 한미 FTA를 추진하는 모양새를 보아도 대미편향은 남한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여겨진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현상유지 정책에 덧붙여 대 중국 포위전선의 한 축으로 남한을 이용하려고 획책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대북정책말고도 미제국주의자들의 압박이 날로 강화되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하게 해준다. 한미군사동맹이 유지되고, 대미편향이 상식이 되고,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심화될수록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기란 점점 어려워진다.


문제는 반제투쟁역량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지자체 선거 연합 소속 정당들은 한 목소리로 한반도의 관리에 이명박정권이 실패했다고 하고, 관리체제의 복원을 주장한다. 북한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이른바 평화체제 구축의 로드맵인 남북합의서와 6.15선언을 이행하는 것이 최선의 방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달리 한반도에서 평화를 지키는 가장 큰 힘은 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남한민중의 역량이다. 북한의 군사적 역량은 평화를 지키는 역량중의 하나이지만 결코 전부가 될 수 없다. 북한정권은 선군정치로 대표되는 과도한 군사적 역량의 의존으로 자국의 경제적 어려움을 심화시키고 대외적으로 모험적인 정책을 계속함으로서 한반도에서 긴장을 유발시키며, 남한 민중의 평화투쟁역량, 반제투쟁역량을 약화시키고 있다.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요구하는 가장 간절한 바램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제 자식을 군대에 보냈거나 보낼 수밖에 없는, 그리고 전쟁나면 아파트 지하주차장 같은 3급 대피시설밖에 몸을 숨길 곳이 없는 이땅의 노동자요, 민중들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서 긴장을 유발하는 주범이자, 대세계전략의 한 축으로 남한 민중을 볼모로 잡고 있는 미제국주의자들에 대해 투쟁함으로서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번 연평도 포격에 대해 보복 운운하는 남한 부르주아지들은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다. 청와대 지하벙커에는 군면제자들이 득실거리고, 부자동네에는 이중국적자가 활보를 치고 다닌다. 애초에 자격을 상실했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대통령이 고려한다는 교전수칙의 변경도 한미연합사령관의 재가가 없으면 못 고치고, 전쟁이라도 하고 싶다면 지휘권은 바로 미군에게 넘어간다. 뭐 이런 놈들이 보복이니, 전쟁이니 하는 말을 하고 있다. 자격도 능력도 없는 것들이 뻥만 지나치게 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묘한 시기에는 말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 극한 언사만 늘어놓은 재주밖에 없는 놈들 때문에 나라에서 받은 거라곤 세금고지서와 징집영장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자식들이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지키는 힘은 용기에서 나온다. 남북화해를 이야기하면서도 미국이 요청하면 이라크에 파병하고, 한미동맹에 묶여 테러국가에 대한 봉쇄에 참여하면서 어떻게 평화를 말할 수 있는가? 정말 평화를 주장하려면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파기하겠다는 달려드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요즘 로뎅의 조각전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칼레시의 예처럼 목숨을 내놓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프랑스 칼레의 시민들에게 칼레를 포위한 영국군은 칼레시민을 학살하지 않은 조건으로 6명의 유력인사의 목숨을 요구했고, 시장을 비롯한 6명의 유력인사들이 자신들의 목에 밧줄을 걸고 영국왕의 면전에 나섰다.

공동체 전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멀쩡한 자기목숨을 내 놓을 수 있는 헌신적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배고프고, 고단한 어린 여공을 위해 차비를 털어 풀빵을 내놓고, 그들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은 전태일같은 사람,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자기 몸에 불을 당길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 그들을 따르고 그들이 열어 놓은 노동자들의 국가를 위해 무엇이든 내 놓을 각오가 되어 있는 참된 노동자들만이 이땅에서 평화를 지켜내고 평화를 염원하는 전세계 민중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평화는 싸워서 지켜내는 것이다. 전쟁을 준비해서가 아니라, 전쟁을 통해 아무것도 잃지 않고, 도리어 얻을 것이 많은 자본가들과 제국주의자들과의 투쟁을 통해 평화는 지켜진다.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민중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한반도에서 전쟁을 책동하는 미제국주의와 이에 호응하는 국내의 꼭두각시들과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만이 평화를 지켜내고, 노동자국가 건설의 초석을 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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