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2일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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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외삼촌 강진석 서훈논란으로 드러난 한국의 지배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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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장 박승춘 저격수들의 오인 사격


6월 말 20대 국회가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갑자기 김일성의 외삼촌인 강진석의 서훈문제가 불어졌다. 요는 보훈처가 강진석이 김일성의 외삼촌인줄도 모른 채 일제 시대 독립운동 업적을 인정하여 서훈하였고, 이를 나중에 알고 나서는 서훈사실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6월 27일 ‘탐사저널리즘’을 표방하는 뉴스타파가 이 문제를 보도했고, 이윽고 진보정당운동을 배신하고 더민주로 배를 갈아타 의원배지를 단 박용진이 의회에서 쟁점화를 하였다.


이 문제를 쟁점화한 배경에는 보훈처장 박승춘이 있었다. 박승춘은 12사단장을 지낸 장성출신으로 제대 후 한나라당에 입당하였고, 이명박 정권시절인 2011년 2월 보훈처장으로 임명되었다. 수구적 성향을 지닌 박승춘은, 보훈처가 2011년 말부터 이승만, 박정희를 찬양하고 진보세력을 종복으로 모는 ‘호국보훈 교육자료’를 배포한 일이나, 2012년 안보교육 동영상 배포하는 일 등, 보수이념의 선전에 최선봉에 섰다. 특히 518민중항쟁을 왜곡 폄훼하는 데 앞장서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기념곡으로 지정되는 데 결사 반대해왔던 인물이 박승춘이었다. 올해에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기념곡으로 지정되지 않자, 518 유족들이 박승춘을 기념식장에서 쫓아내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이후 야권 내에서 박승춘을 그냥 두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것이 보훈처의 강진석 서훈을 문제삼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문제는 수구이념의 신봉자이자 전파자로 자처하는 박승춘을 상대로, 박승춘보다도 더 보수적인 인식에 의거하여 싸움을 걸었다는 것이다. 즉 김일성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이미 해방 이전인 1942년 사망한 독립운동가, 그것도 항일무장투쟁을 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13년간이나 옥살이를 하다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 독립운동가에 대해, 단지 김일성의 친인척에게 서훈을 하였다는 이유로 문제를 삼은 것이다. 이러니 한겨레조차 ‘빈대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할 정도로 부당하게 연좌제를 적용하려고 하는 작태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지금까지 연좌제는 자손에 대한 연좌제였는데, 이제 이를 뛰어넘어 선대에까지 연좌제를 적용하는 것이니 과거 수구세력이 자행한 것보다 더 악랄한 행태라 할 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입장과 뉴스타파‧박용진의 입장


뉴스타파의 보도가 나온 후, 많은 사람들이 이 보도가 깔고 있는 인식의 심각함을 비판하였고, 이 문제를 국회에서 쟁점화한 박용진을 질타했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했는지, 뉴스타파의 담당기자는 SNS를 통해 서훈사실 은폐 문제를 제기하려고 했다는 변명을 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독립운동을 했더라도 김일성 일가나 친인척에 대한 서훈 만큼은 별도의 기준을 먼저 마련했어야 한다’고 하여 아무리 김일성 자신과는 관련이 없어도 친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독립운동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당연시했다. 박용진은 온갖 궤변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친인척에게 서훈을 주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입장이었다. 이것은 김일성을 악마화하고 김일성과 관련된 모든 것이 악으로 보는 비이성적 반북, 반공적 태도 이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뉴스타파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입장을 끌고 와서 자신을 변호했다. 그러나 뉴스타파나 민족문제연구소 공히 강진석의 서훈사실을 은폐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있지만,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일성의 외삼촌이라고 해도 서훈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면 서훈하는 것이 옳다.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국가라면 북한 정권 수립 이전에 옥중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강진석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는 것이 마땅할 수도 있다”라고 자기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강진석 서훈논란으로 드러난 반공주의 지배질서


우리가 강진석 서훈논란을 주목하는 것은 단지 건국훈장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과거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맥을 같이 하는 문제이다.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을 끝까지 일관되게 전개한 세력이자 가장 큰 민족해방운동 세력이 사회주의 운동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부정할 수 없는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아무리 일제하 민족해방운동에 헌신했다 하더라도 사회주의 계열은 해방 전에 사망했든 해방 후 남에 남았든 상관없이 전혀 업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오히려 남은 사람들은 연좌제로 고통받았다. 1980년대에 들어 비로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북으로 넘어간 일제하 독립운동가의 업적이 인정받았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제한되나마 진전된 민주주의, 일제 하 독립운동 역사를 밝혀나간 이른바 '소장파' 역사학자들의 노고 속에서 철저하게 짓밟혀 잊히고 있던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가 드러났다.


김대중, 노무현의 자유주의 정권 10년은 이 부분에서 민주주의 전진에 기대 조그마한 진전을 이뤄냈다. 바로 해방 이후 사회주의 운동을 하지 않았거나 북으로 가지 않았거나 한 분들에 한 해 일제 시대 민족해방운동의 업적을 인정해준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2005년 광복절에서 47명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을 실시했다. 이것은 극히 제한된 전진이었지만, 과거보다는 분명 전진한 것이다.


그리고 향후 역사적 과제는 이것을 더욱 전진시켜서 이런 기준자체를 없애고 과거 민족해방운동에 투신한 분들의 업적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일제시대 뿐 아니라 해방 이후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지배질서를 유지시키는 금기를 깨부수고 민주주의를 더욱 확장시키는 투쟁과정과 결부되어 있다. 그런데 뉴스타파와 박용진 등의 행태는 자유주의 정권이 이루어낸 작은 진전마저도 파괴하고 퇴보시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승춘과 보수세력은 외견 상 공격받는 위치에 있지만 속으로는 통쾌해 하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남"한 지배질서가 반석으로 삼고 있는 반공주의이다. 한국은 '반공국가'로서 출생신고서를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이승만이 내국민을 '적'으로 보고 거리낌없이 학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반공국가는 이른바 '수구보수'세력의 지배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반공국가는 이승만 정권시절 야당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주의 세력도 공히 공유하고 있던 기본 전제였고, 그 후예들 역시 공유하고 있는 기본 전제이다. 강진석 서훈을 문제삼은 뉴스타파와 박용진의 저변에 깔린 인식은 바로 이런 역사적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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