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2일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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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100호 발간 기념 공개좌담회 “왜 진보정치는 몰락했는가”
해방  ㅣ  
편집자주 ㅣ 해방연대 기관지위원회는 해방 100호 발간을 기념한 공개좌담회를 7월 13일 저녁 7시 해방연대 사무실에서 개최했다. 좌담회의 주제는 해방연대가 발행한 「왜 진보정치는 몰락했는가」 중 첫 번째 글을 중심으로 현재 진보정치 상황을 진단하는 것이었다. 좌담회는 약 2시간 20분가량 진행되었으며, 이번 호에 실린 좌담 기사는 당시 좌담 내용을 정리, 축약한 것이다. 어려운 시간을 내어준 좌담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사회자 박남일(해방연대 기관지위원)


좌담자 허석렬(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성두현(해방연대 지도위원)


박남일 지금부터 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 100호 발간을 기념하는 공개좌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주제가 왜 진보정치가 몰락했는가입니다. 진보정치 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진단 성격을 가지고 있고, 이와 관련하여 해방연대에서 발간한 같은 이름의 소책자가 있습니다. 그 책자의 첫 번째 주제로 나온 “진보정치 진보운동 전반이 몰락한 이유”라는 첫 번째 꼭지의 글을 중심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두 좌담자의 생각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정말 진보정치가 몰락했다고 보십니까?


허석렬 몰락했다고 하면, 기존의 진보정치가 대단하게 우리나라에서 활성화되었고 진보정치가 민중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는데, 주체들의 잘못된 실천으로 인하여 기존의 성과들을 모두 까먹고 몰락했다라고 해석하기 쉽지 않습니까? 제 생각에는 우리나라 진보정치는 굉장히 어려운 조건을 뚫고 초기에 성장하다가 제대로 개화해보지도 못하고 싹이 꺾여버렸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몰락했다고 해서 기존의 운동의 경험 등이 모두 필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몰락 속에서도 어떤 긍정적인 부분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점을 지향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분석해보고 반성해보고 그 위에 새롭게 진보정치를 구축하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봅니다.

성두현 조금 전에 소개를 한 소책자의 첫 번째 글을 썼는데요, 글에는 진보정치가 몰락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글을 쓸 때 단언하는 식의 글쓰기를 피하는 편인데 이번 글은 단언하는 표현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현실에 대해서 애매하게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지금의 잘못된 상황이 더욱 더 연장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단언하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리고 글에 전반적으로 제가 글을 쓰는 스타일에 비하면 자극적인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진보정치활동을 하는 활동가나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활동가들이 자기에 대해 솔직하지 않고 기만적인 생각이나 행동들을 하고 있어서 이런 부분을 깨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보정치가 몰락했다는 것을 우선 토론하고 규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 없이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진보정치를 계속 하고 있는 분들의 글들과 말을 보면 마치 진보정당이나 진보정치가 허약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살아서 잘 움직이고 있고,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잘 반성하고 재편하면 잘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깔고 있다는 점이 확인 되요. 이렇게 해서는 잘못된 진보정치를 극복하기는 상당히 어렵겠다고 생각해서 몰락했다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강조했습니다.


박남일 그러면 진보정치의 전반적 진단과 관련하여 두 분께 현실적으로 피부로 느끼거나 절감한 부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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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두현 민주노동당을 창당할 때 저도 창당 멤버였는데, 당시에는 여러 가지 희망적인 측면들이 있었고, 민주노동당은 출발하면서 노동자들이 자본가 세력과 달리 자기 이해를 실현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습니다. 창단 후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주장하여 대중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 어려움을 많이 뚫고 갈 수 있었고 여러 가지 구체적인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게 2004년도까지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초기의 상승세가 있었고, 2004년을 지나면서 더 희망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초기에 긍정적으로 나가던 부분이 그렇지 않게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커다란 위기에 처할 것 같다고 본 게 2007년도에요. 제가 당시 글도 쓴 게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의미도 있어서 당시 썼던 글을 한 번 인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7년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서 당시 대통령 선거에 임한 민주노동당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에 제가 9월 30일 경에 쓴 글인데, 제목은 “한사코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을 회피하고 있는 후보들과 민주노동당“입니다. 당시 글에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은 뭐냐면, 다들 확인하듯이 자본주의 모순이 심해지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히 진보정치가 해야 할 역할이 커지는 때였고 여기서 활로를 찾아야 하는데, 2004년 이후 당의 흐름을 보면 계속해서 과격한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자기 정강을 이야기할 때, 놀랍게도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당시에 유일하게 기억나는 현 체제에 대해서 예리하게 비판하면서 나가는 내용은 심상정 후보의 택지국유화였습니다. 당시 저는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시대 흐름에 대한 진보정치의 감수성이 없는 것이 아닌가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보면, 지금은 비정규직 문제가 아주 대중화되었죠. 그런데 당에서 경험했던 것을 보면, 2004년 당에서 비정규직 철폐운동본부를 만들자고 운동을 했는데, 처음에는 지금은 이상하다고 할 정도로 반대가 심했고, 논란이 되었다가 나중에 되었습니다. 이런 조짐이 있다가 대선에 와서는 진보정당이 존재하는 이유 의미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실제 몰락이라는 표현을 개인적으로 썼던 것은 2007년이었던 것 같아요. 이 부분은 몰락하는 당이라기보다는 당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측면을 강조한 것인데 불행하게도 그 후의 흐름을 보면 계속 이쪽으로 갔다는 것이죠. 뒤늦게 2012년에 진보정치가 몰락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저는 이미 2007년도에 그 징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허석렬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졌을 때, 한계가 많은 당이라고 인식했지만 그래도 기대를 많이 가졌던 이유 중 하나가 대중조직을 기반으로 해서 시작된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정당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민주노총이라는 거대한 노동운동 조직이 있었고, 전농, 전빈련과 같은 조직이 있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것은 그전의 진보정치와는 달리 한국 정치를 변화시키는 데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았고, 노동자계급의 지향을 재편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2007년이 되기도 전에, 그야말로 정파들 간의 갈등 상황이 노정이 되었는데, 저는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꼈거든요. 정당을 만들면 다양한 정치적 그룹이 들어와서 힘을 합쳐 정당을 건설하고 그 단합된 힘, 또는 연대의 힘을 가지고 사회를 바꿔나가고 정치를 바꿔나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고 오히려 당이라는 조직을 이용해서 어떤 정파가 당조직을 뛰어넘는 자신의 정파의 목적을 실현하려는 부분이 많았죠. 이런 정파의 투쟁이 더 이상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고 2007년 이전부터 민주노동당의 장래에 대해 비관적이었습니다. 그러다 2007년의 상황을 보면 이것은 더 이상 하나의 정당으로 존재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내부에서 서로를 적대하는 정파 간의 투쟁이 더 이상 화해할 수 없는 지점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이 건강한 사상투쟁의 형태를 띤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어찌 보면 굉장히 소부르주아적인 이권투쟁의 형태를 띠면서 겉으로는 그것이 마치 사상투쟁인 것처럼 표현되는 것을 보고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그 뒤로 통진당이 만들어지면서 진보정당이 끝이 났다. 통진당은 도저히 진보정당이라고 볼 수 없죠. 왜냐하면 자유주의 그룹들과 합당을 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진보정당 운동이 끝이 났고, 그 이후에 진보신당, 노동당이나 정의당 이런 그룹은 진보정당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의 잔여물이고 새롭게 진보정당을 만들어가는 데 큰 기여를 못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해방 100호_3_특집_3(허석렬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jpg

박남일 진보정치가 이렇게까지 몰락 또는 퇴보하게 된 근본적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허석렬 시간이 감에 따라서 정당운동을 한 부분들과 대중조직과의 괴리가 심해진 것 같아요. 대중조직을 별로 되살리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대중조직 내에 있는 많은 정파들이 대중조직 내에서 불건전한 투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이 민주노동당의 정당정치에도 반영되었던 것이죠. 대중들의 해방을 추구하거나 또는 대중들의 의식을 높여서 노동자들을 한국정치의 주역으로 세운다든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진 투쟁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진보정당 운동에 투영되었기 때문에, 진보정당 내부의 정파투쟁이 매우 불건전하게 진행되었고, 물론 대선도 있었지만 그것이 결국 민주노동당의 실패, 몰락으로 나타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두현 저는 정파들의 정치적 내용이 어땠는가를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서로 별 내용적 차이는 없고 오른쪽으로 가는 것은 비슷했어요. 2004년 이후 내부에 논란이 벌어진 것이 열우당 2중대냐 아니냐였죠. 당권파가 이중대로 가고, 다른 쪽은 이중대 노선에 반대하고 그랬는데, 실제 내용을 보면 명분에 불과했던 것 같아요. 그 후의 모습을 보면 민주대연합에서는 별로 차이가 없는데, 그때부터 이런 조짐이 있었던 것이죠. 저는 종파투쟁이 큰 원인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 자체가 결정적 원인이라기보다는 종파투쟁을 하지만 내용은 동일하게 오른쪽으로 가고 있었다는 것과 당에서 그것이 제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원인이죠.


그래서 저는 중요한 원인은 정치노선 자체에 있었다고 봅니다. 이를 정확히 표현하면, 보통 자주파라고 하는 그룹은 현재 변혁의 성격을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반대 단계로 보지 않았고 민족민주혁명, 즉 일종의 민주주의혁명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을 그쪽의 논리 구조로 보면 일종의 맹동주의로 보고 아예 이론적으로 반대한 겁니다. 평등파라고 하는 쪽은 뭔가 좌파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내용에서 보면 개량주의적 성격이 매우 강했죠.


저는 이 부분이 나중에 역사에서 완전히 증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선 참패 이후 당이 분당되는데, 그때 우경화 흐름이 계속 갔다는 겁니다.


허석렬 그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제가 말씀 드리려는 것은 이렇습니다. 정파의 불건전한 투쟁, 자리싸움, 정상적이지 않는 방식으로 지구당을 접수한다든지 하는 식의 싸움들이 있었는데, 그 뿌리가 뭐냐 하면 우경화와 관련 있다고 봅니다. 비슷하게 개량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혁명적, 변혁적 전망을 상실했을 때, 자기 정파의 세력을 다른 세력을 희생해서 키우려는 것밖에는 관심이 남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두현 저는 기본적으로 정치노선을 봐야 되고, 정치노선이라는 것은 그 집단이 결정적으로 어느 계급의 이해에 서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전형적으로 민주노동당 내의 당권파, 비당권파 대부분이 노동자계급에 기반한 정치를 할 의지가 없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박남일 진보정치 몰락의 원인에 대해서 허교수님은 종파주의를 중요하게 짚어주셨고, 성두현 지도위원은 내용적인 면에서 우경화를 주요 원인으로 짚어주셨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가 어느 것이 더 큰 원인이다 딱 잘라서 이야기하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우리가 대안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할 때, 진보운동의 방향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원인을 짚어보는 자료를 가졌습니다. 이제 두 가지 요인을 조금 더 면밀히 들어다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우경화와 관련하여 진보정치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좀 더 자세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해방 100호_3_특집_4(성두현 해방연대 지도위원).jpg

성두현 민주노동당 창당되었을 때 정권이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이었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볼 때는 한계가 엄청 많은 정권이지만, 대중들이 볼 때는 그래도 어떻게든 민주화 투쟁을 해서 당장은 아니지만 민주세력이 집권한 것으로 된 것에요. 하지만 당시 민주세력이 집권해서 대중들에게 보여준 것은 낙제점이었던 거예요. 당시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에 엄청 두들겨 맞았거든요. 그리고 신자유주의 개혁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굉장히 힘들어지고, 뭔가 민주세력이라는 쪽이 집권하고 해서 살기가 너무 팍팍하다는 생각을 준 것이에요. 이것은 일개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당시 자본주의가 가고 있던 흐름의 문제였죠. 그러면 거기에서 만일 오른쪽으로 가면서 자기 이미지를 약화시키면, 집권당과 비슷하게 가는 겁니다. 그러면 집권도 안한 세력이 집권한 세력과 똑같이 취급되는 것이죠. 이런 의식이 당 내에 너무 취약했고, 이것은 생각이 못 미쳤다기보다 계급적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추세가 그 후에 교정이 되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당이 깨지면서 두 당으로 갈라졌습니다. 민주노동당은 2011년 6월 19일에 우경화의 결과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표현을 강령에서 삭제했습니다. 그리고 진보신당은 제가 볼 때 자신의 모습이 불분명했고 가장 대표적인 차이는 ‘나는 종북주의는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독자적으로 당이 원내 진출하는 것은 양당 모두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복잡한 과정이 있었지만 야권연대를 통해서 다음 기회를 본다고 생각하고 복잡한 통합논의를 했습니다. 저는 여기부터는 우경화라고 볼 수 없다고 봅니다. 우경화는 같은 진보정당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갈 때 우경화라고 하는데, 통합진보당 창당으로 가는 시점에서는 우경화가 아니라 이를 넘어섰고, 진보정치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세력과 진보정당을 창당함으로써 진보정치를 배신했다는 것입니다.


허석렬 민주노동당 창당 때의 한계, 약점들, 모순들이 심화되어서 결국에는 통합진보당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그 한계, 약점, 모순이란 것이 무엇인가 하는 건데요. 민주노동당 만들어질 때 대중운동과 정당운동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 제가 봤을 때는 잘못된 생각들이 있었다고 보입니다. 물론 창당 됐을 당시에는 굉장히 희망을 가지고 의미를 찾았지만 결국에는 대리주의가 판을 쳤죠. 그러니까 계급투쟁의 기본 조건인 대중운동을 더욱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런 건 방기하고, 국회의원 나오는 정당 만들어서 그 국회의원이 국회에 나가는 방식으로 싸우는, 대중운동보다 쉬운 방법을 택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대중투쟁이 기반이 되지 않는 정당운동은 허약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결국은 정파 간의 대립과 우경화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그 기원은 민주노동당 창당 시기부터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적인 투쟁, 그리고 대중들을 강화해나가는 그런 조건 아래서 우리가 진보정당을 만들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시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박남일 진보정치 운동의 몰락 원인 중에서 우경화에 대한 이야기를 두 분 토론자께서 해주셨습니다. 이와 더불어서 종파주의에 대해서도 아까 말씀을 주셨는데, 사실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동안에 종북몰이가 굉장히 횡행했었죠. 이와 관련해서 종북이란 개념 자체도 종파투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는데, 이 종북몰이와 관련해서 종파주의의 폐해에 대해서 한 번 정리하는 차원에서 짚어봤으면 하거든요.


성두현 아까 허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아주 불건전한 종파투쟁이라는 데 저도 동의합니다. 비당권파는 초기에 당을 창당했을 때 자기들이 당권파였는데 밀려서 이건 도저히 감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나갔고, 대선평가는 종북주의 때문에 대선에서 참패했다는 식으로 그냥 선동방식으로 한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정치가 다 계급관계가 있는 건데, 당시 자료를 보면 조승수씨가 한 말이 “친북세력과 결별해야 민노당에 미래 있어”란 제목으로 조선일보에서 기사가 되기까지 한 거죠. 이때부터 종북이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진보신당이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때문에 당을 나갔으면 나중에 통합진보당으로 합쳐질 때 상대방이 종북주의를 청산해야 한다고 하거나 옛날에 우리가 종북주의라고 비판한 건 과도했다고 이야기 하고 정리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그냥 얼버무려졌습니다. 옛날에 했던 말들이 자기들의 이해를 위해 썼던 용어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버린 거에요. 그래서 통합진보당 창당으로 가면서 물론 같이 안 한 분들도 있지만, 옛날에 뭘 갖고 싸웠는지도 없이 다시 만난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극단적인 종파주의가 터진 것이 통합진보당 창당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역사적으로 정리가 안 된 부분이에요. 통합진보당 창당 자체가 종파주의의 산물이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종파주의와 관련해서 사례를 또 들자면, 제가 2012년 5월 12일에 봤던 동영상을 다시 검색을 해서 봤습니다. 당시에는 무슨 사건이 발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모든 언론이 몰려왔어요. 이렇게 생중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다 알려져 있는데 거기서 사회를 보고 있는 조준호 위원장한테 위해를 가하고 하는 모습이 방송될 때, 전 진보정치에 사망선고가 내려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자기의 이해만을 위해 앞뒤를 전혀 생각을 안 하는 겁니다. 회복되기가 상당히 어려운 자해 행위를 한 거죠.


“종북몰이는 범죄적 행위다”라고 조희연 교수가 말했는데, 종북몰이는 범죄적 행위입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창당에 함께 한 세력들이 이걸 대충 넘기고 있습니다. 제가 아까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봤고 이걸 빨리 역사적으로 정리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그 후로 자기 반성을 하는 세력이 한 명도 없다는 점입니다. 당시에 통합진보당의 창당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 이 창당자체가 잘못됐다라고 자기비판하는 세력이 하나도 없다는 거죠. 정의당 쪽도 종북세력이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같이 한 사람도 똑같이 되는 거거든요. “우리는 몰랐다”, “우리는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곤란하죠.


종파주의가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냐 하면 스스로의 어떤 극단적인 자기의 이해를 위해 행동하다 보니, 지배계급이 쳐놓은 틀에 빠져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됐습니다. 저는 이런 것을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종북주의로 진보세력이 몇 년 동안 계속 공격을 받았는데, 정말 한심하게 된 건, 그 공격의 처음 단초를 진보 쪽에서 만들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방어하기도 어렵게 된 겁니다.


허석렬 애초부터 민주노동당의 당 강령과 동의하지 않는 그룹이 들어왔다는 겁니다. 저는 이게 굉장히 심각하다 봅니다. 아니 들어왔으면 당 강령에 최소한도의 동의를 하고 힘을 합쳐서 같이 하든지 해야 하는데, 창당후 얼마 안되어 당의 기본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 정파가 들어와서 자기 목표는 사회주의가 아니고 민족민주당이 목표라는 식으로 간 것이 비극을 잉태시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만, 당 활동을 하고 같이 했는데, 어떤 형태의 진보냐는 데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진보를 지향하는 그룹에게 그런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한다는 건 진보정치는 물론이고 민주주의자조차 할 일이 아니라 봅니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같은 민주주의적 과제조차도 부정하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제가 봤을 때는 진보정치가 완전히 파탄 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통진당 해산할 때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에 찬성했던 심상정 의원의 행위 등은 민주주의자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건 현상적으로 보이는 거고 그 뿌리가 어디 있는가 하면 여기서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한 마디로 제국주의적 모순에 대해서 과연 진보, 좌파라고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반북주의가 굉장히 뿌리깊게 박혀 있습니다. 반북을 하면서 그것이 마치 좌파인 것처럼 하고, 반북 아니면 친북이란 이분법에 갇혀 있는 실정입니다. 반면 한국의 진보정치 세력은 북한 체제하고 상관없이 자기들의 과제가 있고 자신들의 과제는 그 나라에 살고 있는 민중의 힘으로 해나가야 하는데 그런 전망에 입각하지 않은 쪽도 있는 거죠. 이런 양 극단, 한 쪽은 제국주의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고, 또 다른 한 쪽은 제국주의는 제대로 비판하지 않으면서 친북이 진보운동인 것처럼 한 것이 진보운동 전체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 원인이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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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일 마지막으로 조금 더 안목을 넓혀서 진보운동의 역사적 한계와 전망에 관련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진보정치의 토대가 매우 부족했다는 내용 등이 자료에 나오는 데요. 그런 어떤 사회적 토대와 결부해서 진보정치 운동이 큰 사이클을 그려왔고 어떻게 몰락하게 된 것인지 짚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허석렬 제가 생각할 때는 한국 전쟁 이후의 우리가 진보정치를 복원해 나가는 과정에서 특수한 역사적 조건에서 활동해왔는데요. 새롭게 우리가 대중투쟁이 올라왔고 그런 과정에서 진보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 가의 모델로 현실 사회주의, 소련 등 국가의 모델들이 있었고, 또 어떤 일부는 민족해방을 강조하면서 북한을 모델로 한 그룹들도 있었죠.


그런데 그런 모델들이 실패 혹은 붕괴하는 과정에서, 특히 소련이 붕괴하면서, 그런 국가들을 모델로 했던 흐름들이 청산주의로 빠졌죠. 운동을 청산하고 떠나기도 하고 남아있던 그룹들도 사실상 민주노동당을 만들 때 일부 사회주의가 강령으로 들어갔을 지라도 사회민주주의적 정서가 쭉 전면화되어왔던 과정이었다고 봅니다. 또 일부는 사회민주주의도 아닌 급진 민주주의로 과제를 축소하기도 했고 또 어떤 그룹은 민족해방이란 과제를 내걸고 운동을 방기하고 침묵하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그런 역사적 경험이 우리가 진보운동을 해나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왔다 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또 하나는 잘못된 대립관계, NL/PD의 구분 등이 이미 역사적으로 시효가 끝났고, 이제는 그야말로 지금까지의 운동을 심각하게 반성하고 새로운 전망을 함께 그려가야 합니다. 특히 사회주의 전망에 대한 확고한 현실 인식이 필요합니다. 자본주의에서는 답이 안 보인다, 오히려 사회주의적 전망이 인류의 미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에 우리가 함께 해서 전망을 구성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봅니다.


또 하나는 대중운동과의 관계죠. 대중과 괴리된 운동은 이제 전망이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항상 대중들과 함께하고 대중들을 획득하는 운동을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이 대중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바로 교육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러한 기반 위에 우리가 섰을 때 기존에 우리 운동이 보여 왔던 종파주의라든지 전망의 부재라든지 그런 약점들을 극복하고 다시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성두현 80년대 학생운동과 민중운동이 군사독재에 반대해서 폭발적으로 투쟁을 했죠. 그런데 당시 NL/PD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어떻든지간에 명분은 다 사회주의 혁명을 어떻게 할거냐였습니다. 당시에는 군사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 투쟁이나 외세에 대한 투쟁이 굉장히 핵심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다 사회주의자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외형적으로는 그렇게 갔던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랬던 운동이 87년 이후 민주화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하면서 자기들의 위치로 돌아갔던 측면이 많죠. 그 다음에 노동운동은 그 이후로 더 나갔는데, 실제로 사상적으로 운동에 결합한 부위는 90년대에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상이나 자본주의의 체제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계속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게 90년대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IMF 사태도 오고 자본주의 위기도 오면서, 그런 수준으로 해왔던 운동은 한계에 부딪히고 자유주의 수준으로 후퇴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70~80년대 역사적으로 진출했던 흐름들이 성과도 나름대로 있었지만 그 성과가 다시 재배치되어 전진할 수 있는 시기는 마무리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기존 체제의 틀에서 맞춰서 하는 운동은 무력화된다고 봅니다. 우리가 싸우고 있는 자본주의와 외세에 대해 자기의 사상과 정치노선을 분명하게 하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없이 계속 가면, 옛날에는 버텼지만 계급모순이나 전세계적으로 위기가 강화되는 지금 시기에는 무력화된다는 거죠.


지금처럼 사상, 정치노선이 불분명한 운동을 하다 보면 5~6년 지나고, 그 후 무슨 운동을 하는 건지도 모르는 운동이 되어 있을 거라 봅니다. 이미 지금까지 경험으로 충분히 겪었는데, 그런 것들을 몇 년을 더 겪으면서 더욱 더 심한 침체로 가는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저는 그 운동이 지금부터 새로 하는 운동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운동이 이미 있고, 이 운동이 확산되어야 합니다.


결정적인 부분은 노동 대중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의 지배  하에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걸 깨야 대중들의 힘이 고양될 것입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부분이 뭘까 생각하면, 저는 운동의 가장 기본이라고 하는 의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또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더라도 모든 대중들이 운동에 나서는 출발점은 의식의 각성이에요. 그런데 운동이 그동안에 그런 걸 거의 안 했다는 거죠. 그런 걸 안 하는 데 운동이 고양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농사를 안 짓고도 소출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걸 10년 동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운동을 했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 철저히 각오를 다져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정말 의식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노동자계급의 의식이 각성되고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운동을 해야 운동이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박남일 마무리 말씀을 해주시죠.


허석렬 결국에는 전망의 부재,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정당이라고 하면 대중운동의 정치적 표현이 되어야 하는데 그 지점에서 계속 실패했습니다. 대중운동이 없이 정파들끼리 모여서 만들고 그런 식의 운동은 제가 보기에는 이제는 지양해야 한다 봅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고 천천히 가더라도 대중운동을 활성화 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그 대중운동에서 정치조직이 나타나서 전망을 얻고 나아가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두현 우리나라에서 운동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하면, 정말 큰 문제점은 운동하는 사람들이 돼버렸단 거죠. 그래서 제가 이런 걸 극복하는 부분도 저는 뭔가를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는 앞으로 할 때가 올 것이라고 보고, 어떤 순간에는 이 겹겹이 쌓은 막을 뚫어버릴 효과적인 전술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때가 올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 걸 어떻게 할까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활동가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계속 되풀이 된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를 또 하나 싶을 수 있지만 그 ‘뻔한 이야기’가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는 걸 말씀 드리고, 또 이런 생각이 많은 분들한테도 자극을 줬으면 좋겠어요.


박남일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밤이 많이 깊었습니다. 세계자본주의 모순은 그보다 더 깊습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은 그보다 더욱 더욱 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련한 오늘 좌담회였고요. 이 자리가 새로운 진보정치운동을 펼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늦은 밤까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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