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2일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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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선전, 선동의 길에 백번의 담금질을 견디고 단단해졌습니다
- 해방 지령 100호를 맞이하여 -
김광수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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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도 7월 7일 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이하 “해방”) 창간호가 나온 지 10년을 넘어서야 지령 100호가 나오게 되었다. 사회주의 정치신문은 민주노동당에서 최초로 공개적인 의견그룹을 표방한 평등연대가 해방연대로 개편되고 난 이후 선진노동자와 당원에 제한받지 않고 당내 의견그룹의 위상을 넘어 사회주의 조직으로서 대중에게 사회주의를 직접 호소하겠다는 목표를 걸고 발간한 격주 신문이었다. 격주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으나, 연간 9회 꼴로 신문은 지속적으로 발간되었다. 2008년도 민주노동당에서 해방연대가 탈당한 이후에도 신문발간은 계속되었다. 사회주의 조직의 기관지로서 대중들에게 사회주의를 직접 호소하겠다는 다짐은 지켜진 셈이다.


당내 의견그룹의 기관지로서 민주노동당의 퇴보를 막기 위한 해방의 노력


민주노동당에서 해방은 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 정당화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해방연대가 탈당한 2008년을 앞두고는 당의 퇴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이 기사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민중의 고단한 삶을 경감하기는커녕, 더욱 심화시킨 김대중, 노무현 같은 허약한 자유주의 정권하에서 집권당의 2중대 소리를 듣던 민주노동당을 질타하는 기사들의 수는 증가했다. 민주노동당 안에서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강령은 갈수록 장식 수준에서 발휘되었고, 대의를 향한 정치에서 탐욕을 추구하는 정치로 재빨리 변신한 기회주의자들의 타락 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음을 절박한 기사들의 호흡에서 읽혀질 수 있다.


탈당을 앞두고 당의 혁신을 요구하는 해방의 격양된 목소리는 해방연대가 당내 투쟁에서 타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지만 그 혁신 노력이 점점 좌절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2008년 세계 대공황이라는 미증유의 자본주의 위기 국면이 도래했을 때 해방에게는 고양된 대중의 정치의식에 부응하는 사자후를 터트리는 것과 함께 기회주의자들의 발호에 호통을 치는 역할이 부여되었다.


사회주의 선전, 선동 매체로서 자리매김하다


해방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혹은 집필 역량의 부족으로 발간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중에서도 2012년 5월에 있었던 해방연대에 대한 공안탄압으로 가장 큰 어려움에 닥쳤다. 다행히 영장심사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관련 연행자들은 모두 석방되었지만 이어진 재판투쟁은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해방연대의 활동은 불법화되고, 해방의 발간여부도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해수로 3년을 끈 재판이 1심과, 2심에서 연이어 무죄판결이 나면서 해방은 사회주의 조직의 기관지로서 역할을 계속 할 수 있게 되었다.


해방은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선동을 강력하게 수행하였다. 이러한 사회주의 선동은 일상투쟁에서 사회주의라는 말을 발음하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후진적인 조합주의적 활동과의 투쟁이었다. 해방이 견지했던 정치선동 원칙은 과도강령의 실천이었다. 과도강령은 현재 민중의 절박한 요구를 사회주의에 대한 전망과 결합시키기 위한 의식화 방도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민주노동당이 주장하여 한 때 민중의 관심을 끌었던 무상교육이나 무상의료 요구의 경우도, 대중이 이 주장에 솔깃하는 현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요구가 실현되기 위해 필요한 소유와 통제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것이 사회주의 사회건설, 노동자 국가수립의 전망과 밀접히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의 축적과 지속은 온갖 기회주의와 퇴보, 배신이 횡횡하는 지난 10년의 세월에도 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이 사회주의운동의 사상과 실천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해방은 계획경제와 관련된 연재, 사민주의 비판과 관련된 연재, 그리고 공장위원회 등 노동자 통제에 대한 기획연재를 통해 사회주의 선전, 선동의 구체적 재료와 논리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이후 소책자 발간으로 이어져 사회주의 운동의 이론적 자산을 풍부히 하는데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사회주의 운동 도약을 위한 해방의 역할에 묵묵히 복무할 터


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이 1900년대 러시아처럼 당조직을 건설하는 조직가로서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당을 우리가 지을 건물에 비교하자면, 당장 손에 쥐어진 벽돌의 개수가 굴뚝하나 세울 만큼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방은 사회주의 정당을 지을 벽돌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고 필요한 벽돌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 지를 사회주의 운동진영에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는 사이, 크기도 쓰임새도 제각각인 벽돌을 모아서(정파연합) 집을 짓다가 인부들 끼리 갈라서는 모습도 폭로되었고, 집 짓는 벽돌과 무관한 강도와 모양으로는 아무리 벽돌수가 많아도 집을 지을 수 없고 지어도 바로 무너진다는 것도(이른바 진보정당들) 폭로되었다.


해방 100호 발간까지를 되돌아보면 긍정적 의의도 많았지만 여전히 노동자계급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중적 미디어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향후 노동자들의 의식을 발전시키는, 말 그대로 벽돌을 양산하는 역할을 할 미디어의 창출이 우리에게 더 큰 과제로 다가온다. 학습과 투쟁으로 단단하고 반듯하게 성장한 선진 노동자들의 굳건한 단결로 사회주의 정당이 건설되는 길에 해방은 겸허히 자기역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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