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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를 평가하다 ①] 투쟁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
김광호 (강원 비정규센터 소장)  ㅣ  2015년 12월 18일



민중총궐기란 이름으로 치러진 2번의 투쟁이 있었다. 물론 민주노총은 4월부터 매월 한차례 이상의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특히 9‧23 총파업 결의대회를 허망하게 마무리한 민주노총은 수많은 비판을 받았고 11‧14투쟁을 전투적으로 준비했다.

11‧14투쟁은 경찰의 차벽과 물대포에 맞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박근혜정권의 탄압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그러나 그날 투쟁에서 농민인 백남기씨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고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생사의 기로에 있다.

13만에 달하는 대중이 투쟁에 나서서 싸웠다.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 등 대중조직이 적극적으로 조직했다고 하지만 노동자, 농민 등이 삶의 현장에서 느끼고 있는 이 정권과 체제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박근혜정권이 갑호비상령을 동원하면서 막아서고자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11‧14투쟁으로 백남기씨가 사경을 헤매면서 박근혜정권은 민주노총에 대한 압수수색과 박근혜의 IS발언 등으로 투쟁을 ‘폭력과 비폭력’의 프레임에 가두는 것에 성공했다. 실제로 2차 민중총궐기는 참가자가 눈에 띄게 줄었고, 경찰이 허용한 폴리스라인 안에서 행진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2차 민중총궐기에 대해서 많은 평가가 있다. 차벽과 물대포가 없었기 때문에 평화적인 시위가 가능했다고도 하고, 가두리집회였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제대로 평가되고 논쟁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것과 우리가 투쟁하고자했던 그 목표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우리의 운명과 미래는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투쟁의 목표와 그 방법에 대해서도 우리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경찰청장의 파면을 요구하던, 박근혜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던, 자본주의체제의 전복을 요구하던 그건 우리가 결정한다. 청와대로 진출하던, 4대문 안에서 놀던, 얌전하게 행진만 할 수도 있고, 차벽을 넘어서기 위한 실천을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그러나 12‧5 투쟁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 그날의 투쟁이 합법이냐 불법이나, 폭력이냐 비폭력이냐의 문제로 무엇이 더 효율적이냐 논쟁을 했지만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정권의 폭력/비폭력 프레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참가자들은 복면을 쓰고 조롱했지만 스스로 경찰의 안내에 충실했다. 그래서 12‧5투쟁은 실패한 투쟁이다.

내용적인 면에서 각 부문의 이해와 요구를 한군데 모아 놓은 것에 불과했다. 결정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문제로 접근하기 보다는 현상에 대한 분노에 그치고 말았다. 대표적으로 ‘민주주의 회복’을 외쳤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생산하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의 주인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민주주의는 역사에서 한 번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외쳐진 민주주의는 누구의 민주주의란 말인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했지만 역사교과서에서 생산의 주인인 노동자대중의 이야기는 한 줄도 나오지 않았던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의 역사기술에 대해서 문제의식 가진 적이 있었던가? 노동악법에 대해 반대했지만 만성적인 공황으로 위기에 처한 자본가계급이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계급전쟁을 벌인 것이라는 문제의식, 그래서 자본주의체제를 끝장내지 않고는 노동자들의 일상의 평온함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가? 그냥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을 뿐이다.

물론 모든 파업의 배후에는 혁명이라는 히드라가 숨어있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투쟁이 혁명으로 저절로 상승하는 것은 또한 아니다. 우리의 투쟁이 여전히 근본적인 지향을 가지지 못하고 현재의 생존권적 투쟁에 머물러 있는 한 불가능하다. 우리가 민주노총의 2015년 투쟁에서 교훈으로 얻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분노를 조직하지만 그것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이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으로 투쟁을 모아내는 것이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그동안 우리 스스로 갇혀있던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스스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투쟁은 이 자본주의 체제를 영구화하는 한 축으로 작동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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