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8일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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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은 진보의 퇴행
박남일  ㅣ  2015년 10월 8일



지난 6월 4일, 정의당과 국민모임, 노동당, 노동정치연대 등 4개 정치단위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진보결집과 진보혁신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4자가 통합하여 이른바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혼란을 겪고 있던 이른바 진보진영의 난맥을 반영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4자 선언의 한 단위인 노동당 내에서는 이념과 성격이 모호한 정의당과의 결집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따라서 노동당은 진보결집 안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였고, 이 때문에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추진은 한동안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마침내 노동당 내 결집 찬성파는 ‘진보결집+’으로 갈라져 나왔다. 그리고 9월 2일에는 기존 정의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등 3자에 노동당의 반쪽 세력인 ‘진보결집+’가 참여한 새로운 4자 대표자들의 새로운 공동선언이 나왔다. 여기에는 10월 중에 4자간 협상을 마무리 짓고 11월까지 통합을 완료하여 신당을 결성한다는 일정도 포함되었다. 더불어 ‘진보혁신과 결집을 위한 연석회의(약칭 진보혁신회의)’가 구성되어, 통합을 위한 구체적 협상이 진행되었다. 서울, 대전, 광주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결성된 진보혁신회의 지역별 모임의 지지 선언도 이어졌다.

그러나 통합 이후 신당의 당명과 당 지도체제를 놓고 정의당과 나머지 3자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바람에 통합 협상은 다시 고착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명과 관련하여 정의당 쪽은 적어도 내년 총선까지는 인지도가 높은 자신들의 당명을 써야 한다는 입장이고, 나머지 3자는 정의당이 아닌 새로운 당명으로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도체제에 대해서도 정의당 쪽은 단일 지도체제를, 나머지 3자는 집단지도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고착 상황은 결국 통합에 대한 요구가 좀 더 절실한 쪽의 양보로 봉합될 수 있을 것이다.

통합 협상 주체들의 자기모순과 한계

그러나 이처럼 당명과 지도체제를 둘러싼 논란은 통합의 4주체가 안고 있는 자기모순과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민주노동당 이후 거듭 퇴행해온, 자칭 ‘진보세력’의 현주소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진보 통합의 4주체가 가진 모순과 한계는 무엇일까. 먼저 5석의 의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국회 내 제3당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이유로 통합 과정에서 은연중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는 정의당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정의당은 지난 2012년 19대 총선 이후에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국민참여당 계승자들과 새진보통합연대, 인천연합 계열이 모여 결성했다. 창당 때 당명은 ‘진보정의당’이었다. 그러나 2013년 7월 전당대회에서 ‘진보’를 떼어 내고 지금의 정의당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정의당은 탈계급, 탈이념을 추구해왔다. 정의당 지지자의 상당수는 신자유주의의 완결자인 노무현의 향수에 젖어 있다. 심지어 당시 정부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부역한 인사들이 당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 때문에 정의당 강령에는 시중에 흔해빠진 신자유주의 비판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정의당은 존재 자체가 진보와는 거리가 먼 자유주의 소수야당이다.

정의당과 통합 협상을 벌이고 있는 국민모임 또한 진보를 논할 만한 처지는 아니다. 국민모임은 보수 야당 민주당의 대선 후보를 지낸 정동영 계 정치세력을 기반으로 삼아, 김세균, 손호철 등 학계, 문화예술계 명망가들이 가담하여 야권 신당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정치세력이다. 이들의 당면 목표는 ‘야권교체’이다. 식물야당으로 전락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대안세력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진보라는 이름으로 보수야당 지지자들을 흡수하는 자유주의적 선거 전략을 구사할 따름이다. 

이밖에 진보 통합 현상의 한 주체인 진보결집+는, 노동당이라는 원외 정당 하나도 추스르지 못함으로써 명백한 자기 한계를 드러낸 바 있다. 그렇듯 분열로 형성된 세력이 통합의 구심에 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노동정치연대는 통합 추진 4주체 가운데 유일하게 형식적으로나마 현장을 중심으로 결성된 정치조직이다. 그러나 그 범위는 공공노조의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실정이다. 이들이 자유주의의 극단적 노동착취의 위험에 내몰린 한국 노동자계급의 보편적 처지를 대변하지는 못할 것이다.

직업 정치인들의 선전용어가 되어버린 진보

당명과 지도체제가 어떻게 결정이 되든지 이들 4주체는 우여곡절 끝에 통합을 이루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총선에 임하게 될지도 모른다. 의회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정치세력들의 행보에 딴죽을 거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다만 ‘진보’라는 이름을 앞세운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역사 진보의 주체인 노동자계급 입장에서 낱낱이 따져보아야 한다. 게다가 ‘새로운 진보’니 ‘대중적 진보’니 하는 수사적 언어로 부르주아 선거에 임하는 자칭 ‘진보정당’의 출현에 대해서는 그 진위를 샅샅이 살펴보고, 필요에 따라서 냉철한 비판을 가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정치무대의 일각에서 추진되는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그 속뜻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진보란 무엇인가. 노예제 시대에 몇몇 노예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은 착한 일이긴 하지만, 진보는 아니었다. 그 시대의 진보는 노예의 사슬을 끊은 것이었다. 조선사회에서 마음씨 좋은 양반이 몇몇 머슴이나 소작인을 인격적으로 대한 것 또한 착한 일이긴 하지만, 진보는 아니었다. 그 시대의 진보는 신분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인민에게 약간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일부 노동자의 임금을 약간 인상해주는 개량 정책을 진보라 할 수 없다. 자본주의 시대 진보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제도 자체를 철폐하는 것이다.

이처럼 진보란 계급의식을 밑절미에 두고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진보의 본질적 의미는 계급착취 시스템을 해체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자칭 진보세력, 특히 이른바 ‘진보정당’을 표방한 세력은 진보정치에서 계급의식을 분리하는 데 많은 공을 들여왔다. 그로써 자유주의에 진보라는 탈을 뒤집어씌운 채 몰 계급적인 인민대중의 표심과 야합해왔다. 그것은 진보로 포장된 퇴보였다. 진보의 퇴행을 이끌어 온 것이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또한 진보의 이념을 벗어던지는 것을 ‘새로운 진보’로 위장하고, 노동자계급과 멀어지는 것을 ‘대중적 진보’로 사칭하고 있는 건 아닌지 톺아볼 일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적 계급적’ 진보

물론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당장은 진보정당이 대중적 지지를 받아 제도권으로 약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대중의식이 보수적으로 왜곡된 까닭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라는 프레임 자체를 대중적 수준에 맞추어 제멋대로 이동하는 것은 대중에 대한 기만이다. 진보를 기치로 세운 정치세력은 인민 대중의 현재적 요구를 따라가며 표를 구걸할 것이 아니라, 왜곡된 대중적 의식과 먼저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입으로만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엄격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작금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긴 침체의 터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20세기 초반에도, 그 전에도 공황은 있었다. 그때마다 자본주의 체제는 온갖 물리력을 동원하여 새로운 시장을 확장하고, 그에 대한 약탈을 강화하면서 출구를 마련해왔다. 하지만 성장의 여력이 고갈된 이 시대의 공황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윤 확장 수단이 막힌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국가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점점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사회보장 축소, 정규직 고용 파괴, 임금 삭감, 자유로운 해고 등 노동자 대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한국 자본가 정권의 횡포 또한 이런 배경에서 나온 필연적 산물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외면한 채 자본주의 프레임에 갇혀서 ‘신자유주의 반대’나 ‘복지국가 건설’만 외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이 시대에 진보정치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에 대한 거시적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단지 인민대중의 즉흥적 요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소리 낼 힘조차 없는 다수의 노동자대중에게 계급적 언어를 선사해야 한다. 요컨대  노동자계급의 정당은 ‘새로운 진보정당’이 아니라 ‘역사적 진보’의 당이어야 하고, ‘대중적 진보정당’이 아니라 ‘계급적 진보’의 당이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입으로 진보를 외치는 몇몇 직업 정치인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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