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8일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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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본은 여성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피터 커스터스 저, 박소현·장희은 역, 그린비
김정훈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  ㅣ  2015년 9월 5일

 




헬조선.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모순에 가득 찬 한국 사회를 자조적으로 지칭하는 유행어이다. 그런데 그 지옥마저도 한국에서는 평등하지 않고 지옥에서 받는 억압과 착취의 정도에도 순서가 있다. 그리고 그 순서의 밑바닥에는 한국의 여성노동자가 있다. 한국에서 여성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OECD 1위에 빛나는 남녀임금격차를 견뎌야 하며, 매일 100여건에 달하는 가정폭력의 잠재적인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때로는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성추행도 감수해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매일 온오프라인으로 쏟아지는 여성혐오를 일상적으로 견뎌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헬조선에서 가장 뜨거운 연옥은 여성노동자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피터 커스터스의 『자본은 여성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읽어보면 이게 다만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인도 서벵골에서 옷의 장식을 꿰매는 사부다나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일고여덟 시간 동안 일하고, 하루 네다섯 시간은 가사노동을 수행해야 한다. 임금노동과 가사노동에 이중적으로 시달리는 것이다. 또 방글라데시에서 여성노동자들은 결혼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지참금을 신랑 측에 바쳐야 한다. 커스터스에 따르면 “부를 쌓을 수 없는 다른 방법이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땅에서 쫓겨날 위협에 시달리는 곳에서, 채무가 일상인 곳에서, 농민은 많은 지참금을 요구해 자원을 확보”하려 하기 때문이다. 지참금 제도는 방글라데시 농민계급의 몰락에서 오는 고통이 여성에게 집중적으로 전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많은 수의 일본여성은 ‘파트타임’ 노동자로서 ‘풀타임’ 노동자와 거의 비슷한 시간을 일하지만 임금은 정규직에 비해 3분의 2에 불과하다. 많은 ‘파트타임’ 여성노동자들이 값싸게 쓰이고 버려지고 있다. 이처럼 커스터스의 얘기를  듣다보면 여기가 한국인지 인도, 방글라데시, 일본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자체 내에서 여성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여성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더 많은 억압과 착취를 겪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자본축적에 있어서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본질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영어원제가 “아시아에서의 자본축적과 여성노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축적과 여성억압의 연관을 커스터스는 다양한 국가의 상세한 사례연구를 통해 재구성하고 있다. 커스터스는 방글라데시에서는 공유재 성격의 수자원이 세계은행과 농촌지배계급의 원조 속에서 사유화 되는 ‘20세기 인클로저’의 결과, 여성들은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임금노동자로 재탄생하고 있다고 상세한 사례연구를 통해 주장한다. 그러고 ‘20세기 인클로저’에 따른 농촌의 몰락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지참금제의 확산을 가져왔고 이는 여성지위의 급격한 몰락을 의미한다. 이 밖에도 커스터스는 출산과 양육과 같은 재생산노동 때문에, 정규적으로 임금노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대규모의 산업예비군 역할을 하게 되며 저임금 ‘파트타임’ 노동자의 저수지가 되는 일본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본은 이러한 저임금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성의 본질적 지위는 가정주부이기 때문에 여성의 임금노동을 ‘반찬값’ 또는 ‘시간이나 때우려고’하는 노동으로 격하한다. 이러한 ‘가정주부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자본의 축적에 복무하는지 여성주의 학자 마리아 미스의 인도의 나르사푸르 레이스 산업에 대한 구체적 사례 조사를 소개하면서 입증하고 있다.

이렇게 자본축적이 여성억압과 뒤엉켜있다면 자본주의부터의 해방은 여성의 해방이 되어야하고, 여성의 해방은 자본주의부터의 해방이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변혁을 위해 여성해방과 노동해방이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닌 하나의 과업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의 철폐와 사회주의의 실현은 억압과 착취로부터 모든 인간이 해방되는 운동이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인간해방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이는 “자본은 여성을 어떻게 이용하는가”가 던지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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