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8일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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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주의, 그 길을 묻다(4)] <해방>이 묻고, 양효식 동지가 답하다
해방  ㅣ  2015년 9월 5일
편집자주 ㅣ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자본주의가 노동자 민중의 인간다운 삶과 더 이상 양립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는 사회주의의 오랜 구호가 절심함을 얻고 있는 엄중한 역사적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미력한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활발한 토론과 소통 역시 드물어진지 오래이다. 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은 이러한 상태를 타개하고 사회주의자들의 다양한 고민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지면을 마련하였다. 이 지면은 조직에 속해 있든 개인으로 활동하고 있든 상관없이 “한국 사회주의, 그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다양한 사회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전)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에서 활동한 양효식 동지와의 인터뷰를 지면에 싣는다.



해방 : 최근 그리스에서는 국민투표에서 승리를 바탕으로 재협상에 나선 그리스가 어이없게도 굴욕적인 협상안을 제시하는 배신행위가 벌어져서 유럽좌파정치에 대한 일말의 기대라도 걸었던 사람들로서는 실망감이 큰 것 같다. 치프라스 수상의 갈지(地)자 행보에 대한 평가나 사태의 근본원인에 대한 진단을 통해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고 싶다.

양효식 : 비록 그리스가 수차례의 총파업을 거치면서 노동자 대중권력기관의 맹아들이 산발적으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예를 들어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고 할 때 그 소비에트 같은 전 국가적인 노동자권력 기관과 이 소비에트를 봉기와 정치권력 획득으로 이끌 볼세비키 같은 혁명당이 부재한 조건에서 그러한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현재의 그리스는 혁명가들이 이러한 두 가지를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 충분조건이 존재하는 상황 아닌가. 국내에서는 유로존 탈퇴여부가 쟁점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실제로는 협상안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길을 갈 때 그에 따라 취해야 할 재벌 및 금융자본의 몰수 ․ 국유화와 노동자통제 등 혁명 프로그램이 없었던 시리자에게 선택할 길은 많지 않았다.



해방 : 젊은 세대에서 사회주의가 유행하는 것이 왜 이리 안되는 걸까요? 지난번 “안녕들하십니까”대자보 열풍때 대학가 집회에 한두 번 참여해봤는데, 운동권학생들은 투쟁현장을 자주 방문하니까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풀어내는 데 너무 상투적이라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경험이 있다. 사회주의가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해야 매력적인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양효식 : 젊은 세대는 고사하고 당장 투쟁하는 노동자들도 사회주의운동이 조직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예를 들어 사회주의자로서 활동하기 위해 1년여 정도의 집중적인 정치학습과 조직 활동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런 흐름을 우리가 조직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탓도 있다. 투쟁에 바쁘고 실무에 바쁘다는 핑계로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는 동지들조차 학습과 함께 총체적인 정세 흐름을 파악하고 대중 속에서 이에 대한 정치적 대응을 조직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 아닌가 한다. 그런 흐름, 그런 운동 작풍을 만들고 이끌지 못한 데 대해 사회주의자의 한사람으로서 많은 고민과 반성이 있다.



해방 :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을 열광시킨 건 그 엄청난 어플들이 보여주는 경이로움이었다. 사회주의는 사실 많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을 터인데, 그런 콘텐츠를 개발하는데 우리가 나태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양효식 : 사실 그러한 콘텐츠를 개발할 만큼 우리 스스로 연구하고 새로운 지식과 동향을 알아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본다.



해방 : 사회주의 정당건설과 관련해 사노위 결성과 실험의 중심에 있었고 사노위 대표도 하셨는데 그 때 경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 지 궁금하다.

양효식 : 사노련이 사노준(및 노투련)과 공동실천을 통해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을 시도했다.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는 그러한 시도를 위한 한시적인 공동기구였다. 이 공동실천기구를 통해 전체 성원들이 강령 상의 통일을 이루고 하나의 당으로서 단일한 사회주의 실천활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을 거치는 시도이기도 했다. 결국 1년 내에 강령 상의 통일을 이루어내지 못해 소수파가 ‘사노위 정치적 해산 선언’을 하고 갈라섰다. 강령 논쟁 상에서 다수파와 소수파 간의 투쟁은 한 마디로 “강령에 입각하여 노동자투쟁을 조직하는 사회주의 정치활동인가, ‘강령 따로, 실천 따로’ 식의 조합주의 · 경제주의 활동인가” 라고 요약할 수 있다. 사노위 투쟁의 이 본질적인 주제는 이후 그 어떤 당 건설 투쟁에서도 결코 비껴갈 수 없는 과제로 사회주의자들 앞에 가로놓여 있을 것이라고 본다. 사노위 투쟁에서 사회주의자들이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성과와 유산이 있다면 바로 이 투쟁의 의미와 교훈을 당 건설 운동의 새로운 지형 위에서 정확히 되새기는 데서 나올 것이다.



해방 : 솔직히 검증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주변에서 냉소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특히 똥인지 된장인지 꼭 맛을 봐야 하는 것이냐는 이야기가 많았다. 사실 사노준과 같이 못하는 이유는 민투위 문제도 있었지만 해방연대 사람들 중 일부는 이미 98년도 정치연대시절에 같이 공동실천을 모색했던 경험이 있어서 사노준이 사회주의 정당건설 주역으로 나서기에는 자격미달이 아니냐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양효식 : 사노위 결성은 정치조직 간의 통합만이 아니라 당시 선진노동자들, 투쟁하는 노동자들, 전투적 현장활동가들을 사회주의 운동의 흐름으로 인입하고 정치투쟁 대오로 발전시켜보자는 목적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는 해방연대를 비롯해 여타 사회주의 정치조직들과도 함께 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알다시피 결국은 세 조직으로 축소되었다. 애초에 사노준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검증되었다고 하지만, 사노위 시도를 통해 명확히 당 강령 상의 문제로 사노준이 검증된 것은 다른 차원이라고 본다.



해방 : 피티독재를 내세우면 감옥간다는 이야기는 해방연대 재판투쟁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탓이다. 해방연대는 법정에서 당당하게 우리의 강령 중 노동자 국가가 피티독재와 동일한 의미라는 것을 주장했고, 그렇게 해서 무죄를 받은 것이다. 내 판단으로는 피티독재와 관련해서는 실용주의적 접근이라기 보다는 피티독재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양효식 : 해방연대 재판투쟁에서 피티독재를 주장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과 다르다는 걸 여기서 확인한다. 다만 노동자국가와 피티독재가 동일하다고 하면서 대중적 이유로 피티독재를 내걸지 않는다고 하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기회주의자들에 맞서 혁명주의자들은 피티독재라는 강령 조항을 양보하지 않았다. 피티독재는 기회주의자들과 부르주아 반동에 맞서는 유력한 노동자계급의 무기다.



해방 : 민주노총 한상균 집행부가 최초로 직선제를 통해 당선되었는데, 이 선거에 적극 개입을 했고, 그리고 그 개입을 계기로 조직이 해산하는 아픔도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양효식 : 당시 한상균 선본의 중요한 과제들은 상급단체의 반동적 작태로 고통받고 있는 투쟁사업장들을 묶어세우고 그러한 상급단체들의 어용 행각을 단죄하는 것, 그리고 야권연대를 통해 만신창이가 된 민주노총의 정치적 자주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이 사업장 문제들에 대해 선본의 분명한 비판 성명부터 낼 것을 계속 요구했고, 또한 사실상 야권연대에 동조해왔던 구 다함께(노동자연대)가 선대본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거다. 그러나 노혁추에서 파견한 인자를 포함하여 다수의 선대본 관계자들은 대사업장 조직노동자 ‘표’를 의식하여 이를 거부했고, 또한 실무역량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러한 야권연대 지지세력까지 감싸 안았다고 본다. 이 문제는 올해 2월에 발표한 노혁추 해산성명서를 통해 이미 밝힌 바이다.



해방 : 오랫동안 사회주의 운동을 해오셨다. 젊은 세대가 많지 않은 가운데 10여 년 전에 일본 사회주의 운동을 보며 노인들만 모였다고 동정하던 일이 이제 우리에게 닥치고 있다. 새로운 세대는 모이지 않고 나이들이 들어가고 있다. 어떤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보시는지.

양효식 : 10여 년 전 비정규직 운동의 주역들이 30대 초반이었다. 지금 그 동지들이 40대 중반이 되었는데, 그중 사회주의자로 성장한 동지는 많지 않다. 극소수다. 사회주의 운동진영 모두가 다 달려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결과가 이렇다. 한 5년 정도 지나면 말 그대로 운동의 노령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자기운동의 전통을 잃지 않고 꿋꿋이 실천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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