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5일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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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민족주의, 친일, 자본주의
박남일  ㅣ  2015년 5월 28일



모든 게 불안한 세상이다. 이웃나라에서 핵 재앙이 진행 중임에도 수명이 끝난 노후 원전을 재가동한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에 새 원전을 줄줄이 지을 야심찬 꿈을 드러낸다. 아직 꽃 피지 못한 청소년들 수백 명이 낡은 배와 함께 침몰해도 국가는 손을 놓고 구경만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책임을 따지는 목소리는 불순세력의 책동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힘 있는 가해자는 피해자의 깊은 상처를 들쑤셔도 건재하다. 권력 뒤편에서 벌어진 더러운 금전거래가 드러나도 법의 심판을 받기는커녕 법이 오히려 그것을 덮어준다.  

불안은 일상이 되었다. 단지 먹고 자는데 들어갈 돈은 나날이 느는데, 들어오는 돈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제대로 된 일자리 찾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근근이 일을 하던 사람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처지이다. 정리해고의 칼바람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그 칼날에 베여 밥줄이 끊긴 노동자들은 땅바닥에 절을 하고, 굴뚝 위에서 하늘을 우러르지만 답이 보이지 않는다. 마침내 절망이 극에 이른 사람들은 줄줄이 목을 맨다. 그것만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는 듯.  

한 마디로 나라가 개판이다. 아니 개판도 못 된다. 많은 이들은 그 이유를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는 수구권력 탓으로 돌린다. 더불어 수구 기득권 세력의 뿌리를 일제식민지 시대 친일파들에게서 찾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친일파 척결을 못해서 지금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는 것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한국 근현대사에서는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다. 1948년 제헌의회에서 설치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친일파 청산을 시도했으나 이승만 정권의 폭력적 방해로 무산되었다. 그로써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오늘날 한국 사회 기득권 세력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일제 식민지시대 친일 인사들 면면을 보면 대부분 지주, 관료, 자산가, 지식인 등 지배엘리트들이다. 여기에 가난한 농민이나 하층 노동자의 이름은 없었다. 또한 친일파 가운데는 일제 식민지 초기에는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나중에 친일 부역의 길로 돌아선 민족주의자들도 많다. 예컨대 친일파로 분류되어 1948년 반민특위 법정에 선 최린, 최남선, 이갑성 등은 1919년 3.1독립선언의 주역이었다가 나중에 친일 행적을 보인 사람들이다. 상하이 임시정부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민족운동을 벌이던 이광수도 친일로 돌아섰다. 친일 금융자본가 현준호도 시작은 이른바 ‘민족 자본가’였다. 만민공동회 회장에서 일진회 회장으로 변신한 윤시병도 있다.

일제 식민지 침략의 본질은 자본주의 팽창


이처럼 일제식민지 시절 민족주의 운동가들 상당수가 항일과 친일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하지만 이처럼 오락가락한 행태를 단순히 개인의 변절로만 파악하면 역사의 본질에 이를 수 없다. 그것은 일제 식민지 침략의 본질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당시 일본은 자본주의의 급격한 발전 단계를 걷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의 독점 자본가들은,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여러 자본주의 제국이 이미 그런 것처럼, 아시아 지역에 대한 침략을 통해 이윤을 수탈하고자 했다. 실제로 당시 일본 독점자본은 전쟁 특수로 크게 호황을 누렸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도쿄의 주식시장은 날마다 상한가를 기록했다. 한쪽에서는 피를 흘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로 인해 막대한 이윤을 축적하는 제국주의 전쟁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일제의 식민지 침략도 그런 맥락에서 일어났다. 사실 일본이 아니었더라도 20세기 초반의 한반도는 세계 제국주의 질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정세에서 일제 식민지시대 민족운동 주류는 대부분 일본이나 미국 등 신흥 자본주의 나라에 유학하여 자유주의 사상을 접하고 돌아온 지식인들이었다. 자유주의는 곧 자본주의의 정치적 이념이다. 따라서 당시 자유주의자들은 민족주의라는 명분 아래,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 자본주의 국가를 세워 지배 권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스스로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날 힘을 가지지 못했으므로 이들은 서양 제국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승전국들은 종전 이후 세계 질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여러 식민지 약소국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전후 처리 결과에 주목했다. 의미 있는 목소리는 연합국의 일원인 러시아 쪽에서 먼저 들려왔다. 1917년 4월에 러시아 혁명 임시정부가 “민족자결권에 근거하여 영구적인 평화를 구축할 것”이라 천명한 것이다. 또 10월 혁명을 완수한 뒤에 레닌은 ‘러시아 제민족의 권리선언’에서 약소민족에 대한 민족자결권을 재천명했다. 그것은 아시아 식민지 약소국 민중에게도 복음이었다. 그러자 1918년 1월에는 미국 대통령 윌슨도 평화원칙14개조에서 ‘피지배자의 동의’ 또는 ‘대중적지지’에 따라 패전국의 식민지 문제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방침을 전후 질서로 제시했고, 2월에는 ‘4개 조항’을 통하여 식민지 약소국에 대한 ‘민족자결’ 원칙을 선언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레닌의 그것과 내용이 달랐다. 레닌의 민족자결주의가 식민지 약소민족에 대한 보편적 원리로써 완전 독립을 지향한 것이라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유렵지역과 패전국의 식민지에 국한된 것이었다. 그나마 윌슨의 자결주의는 완전 독립이 아닌 ‘위임통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패전국의 식민지를 분리하여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두려는 의도였다. 그 때문에 러시아 혁명가들은 이를 ‘전리품 협정’이라 비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식민지 한반도 사람들에게 반향을 일으킨 것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였다. 신흥강국 미국과 서구 열강이 적극적으로 지지해준다면 한반도 독립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던 1919년 초 프랑스에서 27개 승전국 대표가 모여 전후 처리에 관한 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른바 ‘파리강화회의’였다. 이는 한국인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물론 일본이 패전국이 아닌 까닭에 일제 식민지 한반도는 종전 협상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다수 민족주의자들은 파리강화회의를 승전국 대표들에게 식민지 한국의 실상을 알리고 독립청원서를 제출할 기회라 여겼다. 예컨대 미국에 있던 이승만은 위임통치청원서를 미국대통령에게 전달했고, 상하이에서는 독립청원을 위해 김규식을 파리에 파견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열강은 일제 식민지에서 날아온 독립청원서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결국 한반도 독립은 물거품이 되었다.

친일(親日) 청산을 넘어 자본주의 청산으로!

외교 방략에 따른 독립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남은 독립운동 방략은 무장투쟁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기득권은 물론이고 목숨까지도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게다가 항일무장투쟁은 대부분 국외의 사회주의 계열이 주도하고 있었다. 따라서 국내의 자유주의자들은 민족개량이니, 실력양성이니 하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독립을 유예하는 길을 택했다. 그것은 일제 식민지 체제를 사실상 인정함과 동시에 일제의 내선일체(內鮮一體) 전략에 동조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변절이 줄을 이었고, 다수의 민족주의자는 친일행각을 이어가며 일제 권력의 떡고물을 챙겼다. 또한 이들은 8.15 해방 뒤에는 미군정과 결탁하여 강력한 친미반공 지배체제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여기에 반민특위를 내세운 일부 양심적 민족주의자들의 역사 청산 작업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말았다.

친일파들의 행적과 관계없이 20세기 한반도는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될 처지였다. 다만 친일파들은 일본 독점 자본이 유난히 폭력적인 방법으로 한반도에 자본주의를 이식하는 과정에 기여했다. 그 점에서 친일파는 우리 근현대사의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들이다. 그 가시를 제거하지 않으면 밥을 삼키는 일도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친일파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이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그들의 행적이 한국 민중에 대한 일제의 가혹한 수탈을 도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해방 후에는 그들이 직접 지배 권력의 중심에서 계급 착취의 주체로 행세했다는 점에서 친일파는 타도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한 행적은 반민족적 행위를 넘어 반사회적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는 몸통 전체가 깊이 병들었다. 그 병인(病因)은 바로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그러므로 목에 걸린 가시 하나를 제거한다고 해서 몸 전체가 살아날 수는 없다. 친일파를 척결해도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유지되는 한 지금의 사회경제적 위기는 해결되지 않는다. 막연한 민족주의 관점이나 친일파에 대한 혐오감만으로는 우리 사회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지금 한국 사회 병폐는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한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해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친일파 청산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를 통째로 청산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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