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8일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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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붉은 시선] 하루살이와 반딧불이, 그리고 청년실업
현수  ㅣ  2015년 4월 8일

생계문제로 졸업을 미룬 채 민간 프로젝트 연구소에서 근무한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출근 시간이 조금 이르다는 점만 빼면 나쁘지 않은 환경이지만 프로젝트 특성상 6개월에 한 번씩 재계약을 하는 구조인지라 계약 연장 여부가 큰 골칫거리였다. 당장 내 경우에는 이제 막 인턴수습이 끝나 향후 6개월간의 계약을 갱신할 수 있었지만, 다른 동료 한 명은 재계약이 불발되어 사실상 해고가 된 상태이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 인턴 생활이었다는 동료는 당혹감과 허무함에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물론 프로젝트 성격상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거란 생각은 다들 했지만 정작 석 달 인턴만으로 끝나버리니 당혹스럽기도 하고 다시 취업준비생 처지가 되니 모든 게 허무하다 했다. 그나마 한 달 정도 유예기간을 받아 여기저기 신입사원 모집공고를 살피고 이력서를 쓰고 있는데, 정말 남일 같지가 않았다. 마치 하루 살고 죽는 하루살이와 2주 살고 죽는 반딧불이처럼 언제 잘릴 지 모를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 연명하며 사는 처지가 이 시대 청년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 와중에 뉴스를 보니 청년실업률(15~29세)이 IMF 구제금융 여파가 몰아치던 1999년 7월 11.5%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인 11.1%를 기록했다고 한다. 만일 여기에 현재 실업률 통계로는 잡히지 않는 실질적 실업자까지 포섭된다면 실제 청년실업률은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절망적인 소식을 전하는 언론의 코멘트들을 보면 어디를 막론하고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이미 조선일보는 지난 2월 한국의 청년실업 문제를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여 '달관세대'란 프레임으로 접근한 바 있어서인지 청년실업이 발생한 원인을 밝히기보다 ‘창업’이나 ‘도전’을 통해 자기 삶을 꾸려가는 청년들을 조명하여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었다. 다음으로 중앙일보 역시 “청년 ‘실신 시대(실업자+신용불량자)’ 손 놓은 노·사·정”이라는 제목으로 마치 청년실업 문제가 이미 취업한 노동자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청년실업의 문제가 이미 취업한 노동자들로 인해 발생한 것일까? ‘기업이 정년연장과 통상임금 상승으로 인해 신규채용을 줄이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손에 있는 것은 어느 하나 내어줄 수 없다는 자본가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더불어 박근혜 정부의 우유부단한 자세를 질타하며 종국에 노동시장의 개혁을 통해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시키고 임금피크제를 실현하여 청년실업을 줄여야 한다는 말에서 대부분의 언론과 지배계급이 청년실업을 바라보고 있는 관점을 깨닫게 된다. 즉 그들은 이 문제를 그들 자본가가 아닌 우리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과 배신을 부추기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과거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취업한 노동자와 취업하지 못한 실업자들, 산업예비군 사이의 인위적인 경쟁을 통해 보다 높은 노동강도와 장시간의 노동, 낮은 임금을 관철시키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본질적인 모습이라고 간파했었다. 그와 동시에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삶을 유지하고 나아가 노동자 스스로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자본가의 선의(善意)와 아량에 기댈 것이 아니라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여 살아가야만 하는 취업하지 못한 노동자들과 함께 해야 함을 강조했다. 바꿔 말해 하루살이와 반딧불이 같은 신세의 불안정 노동자 및 청년 역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저들의 논리처럼 노동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노동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고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면 돌아오는 것은 모든 노동자의 노예화뿐이다. 곧 연구소를 떠나는 동료가 “다음 번에는 반드시 정규직이 되어야겠다”고 읊조린 건, 결코 정규직이 과잉보호되어서도,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뺏어서도, 청년들이 직업을 갖기 위한 열정이 없거나 보는 눈이 높아서도 아니었다. 바로 “정규직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였다.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계급의 단결”이 청년실업의 올바른 해결책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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