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8일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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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주의, 그 길을 묻다 (1)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정인 사회주의노동자신문 회원  ㅣ  2015년 4월 29일
편집자주 ㅣ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자본주의가 노동자 민중의 인간다운 삶과 더 이상 양립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는 사회주의의 오랜 구호가 절심함을 얻고 있는 엄중한 역사적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미력한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활발한 토론과 소통 역시 드물어진지 오래이다. 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은 이러한 상태를 타개하고 사회주의자들의 다양한 고민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지면을 마련하였다. 이 지면은 조직에 속해 있든 개인으로 활동하고 있든 상관없이 “한국 사회주의, 그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다양한 사회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우리의 시도가 사회주의 운동의 일보 전진을 위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총파업이 목전에 다가왔다. 당연하게도 많은 활동가들이 총파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총파업을 공약으로 걸고 당선된 신임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전 지도부들과 달리 총파업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전망이 밝아 보이진 않는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 조직노동운동이 직면한 문제가 단순히 총파업을 선언하지 않는 지도부, 투쟁하지 않는 관료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민중운동의 부활

민주노총의 총파업 선언이 급격히 줄어든 것은 2006년 비정규직 법 개악 국면 이후이다. 당시 민주노총은 한 해 동안 열 네 차례나 총파업을 선언했으나 갈수록 참여율은 떨어졌고 법안 통과를 막아내지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조합원들의 관심을 확대하지도 못했다. 그 이후 뻥 파업을 남발해선 안 된다며 아예 총파업 선언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민주노총의 총파업 참여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전투적 노동운동 진영은 총파업 때마다 현장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현안을 들고 참여하자고 호소했지만 금속대공장과 대형공기업을 중심으로 한 조직노동의 주류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2008년 촛불투쟁 때도, 작년 철도파업 때도 조직노동운동은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전투적 노동운동은 장기투쟁사업장에 고립되어 촛불투쟁 이후 활성화된 다양한 개인들의 연대운동에 기대 명맥을 유지했다.
조직노동의 현장 투쟁이 사멸된 반면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민주주의를 내세운 반정부 투쟁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속에서 8·90년대 전투적 민중운동에서처럼 정권퇴진을 위한 전투적 행동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나아가 가두투쟁에 참여한 급진적 개인들이 새로운 주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혁명적 사회주의는 틀렸나

가두투쟁을 강화하여 정권퇴진 투쟁으로 나가는 것이 경제투쟁에서 정치투쟁으로 발전이라는 논리는 사실 8·90년대 전투적 민중운동에서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96년 총파업 당시에도 <혁명적사회주의자(RS)>라는 명의가 발행한 <활화산>이라는 유인물은 “가자, 청와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권타도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선동했다.

이에 대해 <강철노동자>라는 이름의 유인물은 <활화산> 류의 선동은 현장 동력의 소실을 갖고 올 것이며 수요파업 등으로 투쟁을 통제하려는 민주노총 관료들에게 놀아나는 전술이라고 비판하며 무작정 가두시위를 외칠 것이 아니라 정치투쟁과 현장투쟁이 결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철노동자>의 주장은 스탈린주의에서 막 벗어나고 있던 전투적 사회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 진영은 노동자들의 투쟁요구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선동을 결합시켜야한다는 속류 레닌주의에서 벗어나 차츰 현장 노동자들의 절박한 자기 이해를 조직하고자 하는 초기 코민테른의 “계급 대 계급” 전술로 이동해 왔다.

하지만 구조조정 분쇄 투쟁 이후, 혁명적 사회주의 그룹들의 선동은 현장노동자들로부터 거의 반향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지나친 현장 사안의 강조는 조합주의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렇다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그러한 노선이 근본적으로 틀렸었던가? 아니,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여전히 옳다고 본다. 문제는 우리가 당연하게 혁명적이 될 수 있다고 상정해온 바로 그 집단이 과연 지금도 혁명적 계급인가 하는 점에 있다.

계급은 해체 되었나

지난 십 수 년 동안 한국의 조직노동운동을 이끌어 온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은 급속히 탈계급화의 길을 걸어왔다. 최근 현대차·기아차 정규직의 평균연봉은 1억을 돌파했다. 철강·조선 등 다른 금속대공장 정규직의 평균 임금도 거의 그에 육박하며, 대형공기업 정규직 역시 그 정도는 아니지만 사회평균보다 높은 임금과 고용안정을 누리고 있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번다는 문제가 아니라 조직노동 핵심부에서 계급의식의 탈각은 심각하다. 높은 임금은 부동산, 주식 등 자산 축적 기회를 만들고 그들의 의식을 소소유자의 의식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이미 일찍부터 그런 현상이 나타난 서구에서 80년대 이후 등장한 여러 탈계급적 담론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조직노동자들의 탈계급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니엘 벨이나 앙드레 고르 같은 저자들은 탈산업화와 함께 계급도 해체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계급은 정말 해체된 것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으로 단속적인 임금노동과 사회복지에 전적으로 의존해 불안한 삶을 영위하는 사회계급이 대다수 자본주의 나라에서 광범위하게 등장하고 있다. 단지 다양한 부류의 빈곤계층과 뒤섞인 무정형의 상태에 있으며 아직 동질적인 계급으로 등장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위기의 반복

지난 몇 년 간 유럽과 북미에서 중동과 홍콩에 이르기까지 표면상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투쟁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자본주의의 핵심부위에서도 소외된 빈곤계층의 비조직적인 폭동과 봉기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투쟁들은 한국의 촛불투쟁이 그랬듯이 대개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는 양상을 보여 왔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국가권력의 권위주의적 성격이 강해지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80년대 이후 소위 선진민주주의 국가라는 곳에서도 “법과 질서”의 명목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기본 권리들이 후퇴하는 양상이 뚜렷하다. 자본의 거대화·세계화로 인해 국민국가 내부의 합의 체계가 무력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만에 차 있으나 자신의 이해를 대표 받지 못하고 있는 빈곤계층은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군중(mob)으로 화하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역사가 군중을 제도적으로 포섭해온 역사라고 할 때, 최근의 현상들은 분명 이 체제가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반정부 투쟁들은 체제 자체를 넘어서는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 중동이나 우크라이나처럼 대중투쟁으로 정권을 타도하는 데까지 나아간 곳도 있다. 하지만 혁명적 계급의 독자적인 이해를 조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체제를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가 혁명적 계급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집단은 이미 변질되었는데 여전히 그것에 미련을 두고 새로운 혁명적 주체를 조직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이것이 지금의 위기들이 더 이상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비슷하게 반복되는 원인이 아닐까.

문제는 계급을 재조직하는 것

기존의 노동운동 조직은 지난 수 십 년 간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자 조직에 실패해왔다. 그들의 이해를 받아 안는데 소극적일 뿐 아니라, 이미 조직된 부위의 이해를 위해 그들을 희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노조질서로 조직된 비정규직·불안정노동자들도 조직노동 속에서 여전히 주변부 취급을 당하며 왜소하게 억눌려져 있는 형국이다.

총파업을 추동하고 민주주의 투쟁을 더욱 급진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 속에서 새로운 노동자층들이 스스로의 조직적·정치적 이해를 자각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의 중심 과제는 무엇보다 이 새로운 노동자층을 혁명적 계급으로 조직해 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당건설과 혁명의 전망은 기존 조직노동운동과 함께 조직적·정치적으로 퇴락하고 있는 정파들의 이합집산이 아니라 혁명적이고 정치적인 주체로 계급을 재조직해내는 과정 자체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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