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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반도 위기 몰고 온 북한 ‘핵 장난’의 의미
박남일  ㅣ  2013년4월19일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 지난 3월 20일, 종교지도자들과의 모임에서 박근혜가 한 말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한반도에 긴장 국면이 조성된데 대한 입장표명이었다.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핵무기 탑재용 미국 전략폭격기‘B-52’가 한반도 상공에 출 몰한 직후였고, 미 해군의 공격형 핵잠수함 ‘샤이엔’ 이 부산 앞바다에 정박한 날이었다. 그러므로 박근혜의 발언은 미국 핵무기의 그늘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북한 핵무기에 보내는 질타였다. 더불어 북미대립의 인질이 된 남북한 인민대중의 애달픈 처지를 보여주는 발언이기도 했다.

지난 2월.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더불어 북한은“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에 성공했다”고발표했다.게다가 북한은 핵억지력 차원을 넘어“핵선제타격권리를 행사하게 될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이어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반발하며 정전협정 백지화와 불가침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이처럼 북한이 미국과의 전면전을 불사하고 나서면서 한반도는 여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한 인민들의 반응은 예전같지 않다. 그런 위기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한반도 위기는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몸부림

정전협정이후 한반도에 최대전쟁위기가 몰아친 것은 1968년이었다. 그 무렵 북한은 농업의 기계화와 중공업의 성장 등 산업전반의 생산력발전으로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두 지지대를 잃은 북한은 국제적 고립과 체제의 위협을 받으며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는 한 편, 미국에 정식 국교 수립을 요구하며 대화를 청했다. 하지만 미국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러자 북한은 국가로서의 존재를 주목받기 위해 과감한 액션을 취했다. 바로‘1.21청와대습격사건’과‘푸에블로 호 납북사건’이었다.

1968년 1월. 북한은 먼저 남쪽 정권을 자극했다. 124부대 소속 요원 31명에게 청와대 습격과 정부요인 암살지령을 내린 것이다. 수류탄 및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휴전선을 넘은 이들은 서울 잠입에 성공했다. 그러나 세검정고개에서 경찰 불심검문에 걸려 대부분 사살당하는 바람에 청와대 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는 정전협정 이후 남북관계를 가장 강력하게 자극한 도발사건이었다.

한편, 청와대 습격사건 와중이던 1968년 1월 23일. 동해상에서 승무원 83명을 태우고 첩보활동을 벌이던 미국 정보선 ‘푸에블로 호’를 나포했다. 그것은, 남한정부에 이어 미국을 직접 자극하는 대담한 도발이었다. 이에 미국은 핵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동해에 띄워놓고 소련에 승무원 송환을 위한 외교교섭을 요청했다. 소련이 이를 거부했고, 한반도 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치달았다. 하지만 당시 베트남전쟁 중이던 미국은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결국 미국은 북한이 바라는 대로 판문점에서 북한과 마주 앉았다.

북한은 △푸에블로호의 북한 영해 침범 시인 △영해침범 사과 △이후 영해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다짐 등을 승무원 석방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반면 미국은 나포된 곳이 공해(公海)상이라며, 승무원 석방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팽팽한 협상이 무려 28차례나 열린 끝에 미국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리하여 1968년 12월23일.미국은 북한 영해침입과 첩보 행위를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 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북한의 완승이었다. 초강대국 미국에 대한 비장한 도전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세계에 각인시킨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북한핵장난의의미와,핵위기의패턴

푸에블로호 사건으로 북한은, 미국 과 대화하려면 먼저 한반도에 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역설적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에 따라 북한은 여러차례 테러를 벌였다. 예컨대 1969년 12월에는 대한항공 여객기를 납치하여 북한으로 끌고 갔다. 또 1976년 8월에는 판문점에서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함으로써, 1970 년대 전반에 잠깐 형성된 한반도 화해무드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로써 한반도에 다시 위기가 고조되었다. 김일성이 공식 사과함으로써 위기는 일단락되었지만 북한은 다시 테러 이미지를 덮어써야 했 다. 그뒤로도 북한은 1983년 아웅산묘역 테러사건, 1987년의 KAL858기 폭파 사건 등의 테러를 이어갔다.

한편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소련을 비롯한‘사회주의권’국가들의 몰락으로 북한은 체제유지에 극심한 불안을 느꼈다. 그러자 북한은 핵무기 개발로 눈을 돌렸다.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북한은 핵 연료봉 추출을 강행하며 ‘1차북핵위기’를 일으켰다. 이에 미국에서는 영변 핵시설에 대한 선제 타격론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이미 걸프전으로 힘을 뺀 미국은 북한과 직접협상에 임했다. 그리하여 핵동결과 경수로건설,양국관계정상화등 을 내용으로하는 ‘제네바합의’에 서명 했다. 북한이 핵을 이용한 북미협상에서 재미를 본 사건이었다.

하지만 미국 9.11테러 이후 합의는 흐지부지되었다. 부시 정부 는 북한을 적국으로 지명 했고, 이에 격분한 북한은 핵의 뚜껑을 다시 열겠다고했다. 대북 중유 공급도 중단되었다. 그렇게 야기된 ‘2차북핵위기’는 2003년 6자회담을 통해 ‘9·19 공동성명’이 채택되면서 진정됐다. 그러나 핵검증 체제 구축문제로 북한은 2008년에 다시 ‘핵 불능화 중단 성명’ 을 발표했다. 그리하여 북핵문제는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북한은 2006년과 2009 년에 각각 1,2차 핵실험을 한데이어, 지난2013년 2월12일 3차 핵실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지난 20여년동안 북핵 문제는 ‘위기- 제재-협상-파기’의 패턴을 되풀이해왔다. 북한이 핵 문제로 위기를 초래하면 미국 등 국제사회는 제재 조처를 취하는 척하다가 어느 순간 제재가 흐지부지되면서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대체로 합의는 파기되고 새로운 위기가 조성되었으며, 그에 따라 다시 제재와 협상이 이어졌다. 이번 3차 핵실험에 대한 국제 사회의 반응도 그런 패턴에서 크게 벗어 나지는 않고 있다.

북핵, 우리에겐 씁쓸한 웃음거리일 뿐

이번 3차 핵실험에 즈음하여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와 불가침합의 파기 등을 외치며, 한반도가 언제든 전쟁상태로 환원될 수 있음을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기관지인 중국청년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핵폭발과 핵운반 기술은 얻었지만 소형화,경량화,다종화 등 핵의 실용화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분석도 제기 되고 있다. 미의회 조사국의 최신 보고서에서도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현황은 아직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 졌다. 이처럼 3차 핵실험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어려운 조건에서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을 받기 위해 공갈을 치고 있다는 느낌이 짙다. 뒤집어보면 그것은 체제 유지를 위한 평화협정 체결을 미국에 요구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인지도 모 른다.

하지만 핵을 이용하여 평화를 얻을 수 는 없다. 핵은 핵을 부른다. 요컨대 이번에 한반도상공에 뜬 B-52기 한대에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보다 폭발력이 10배 이상인 핵미사일을 12발이나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략폭격기 몇 대만 뜨면 북한 전역을 핵폭탄으로 초토화시킬 수 있다. 따지고 보면 핵무기만큼 쓸모없는 무기도 없다. 핵전쟁의 결과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공멸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핵무기는 지난 2차 대전 말미에 일본에 투하된 뒤로 아직 실전에 사용된 적이 없다. 그처럼 살아 생전에는 쓸 수 없는 무기 때문에 줄곧 한반도가 시끄럽다.

그간 한반도에 위기가 조성될 때마다 남한 지배 세력은 전가의 보도처럼 반공의 칼날을 휘두르며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하지만 북한은 한반도 위기로 인하여 남한 민중이 고통당하는 현실은 줄곧 외면했다. 실제로 1.21청와대 습격사건과 푸에블로호 납북사건을 계기로 박정희 정권은 예비군을 창설하는 등 지독한 반공 이데올로기 전선을 구축하고, 인민의 자유를 혹독하게 탄압하면서 장기 집권을 위한 3선 개헌을 관철했다. 결국 한반도 위기로 인한 이득은 남북한 지배 권력자들 몫이었다.

한반도에 조성된 긴장감은 남북한 인민의 삶을 고단하게 만들 뿐이다. 남북의 통치 집단은 위기 때마다 국가주의 논리를 펼치며, 체제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적 착취를 은폐하는데 적절히 활용 해왔다. 따라서 남북한 노동자, 인민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핵이든 북한의 핵이든 모두 적이다. 어떤 명분을 갖다 붙이든,‘핵 장난’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먼저 핵 폐기를 행동으로 보여주 지 않는 자들이 말하는 평화는 사기일 뿐이다. 떠들썩한 북핵 위기가 우리에게는 씁쓸한 웃음거리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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