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8일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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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당신들 추락의 이유
문창호  ㅣ  2012년6월15일

우리는 진보정치의 죽음을 보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부정부실선거와 폭력사태, 극단으로 치달은 내홍까지 정당화할 수 있는 진보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이 자기모순에 가장 책임이 있는 자들만이 죽음의 사실을 거부하거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통진당 사태의 너머에서 진보의 재구성에 대한 서로 다른 상들을 보고 있다. 어떤 이들은 통진당 혁신, 진보 시즌2를 바라본다. 또 어떤 이들은 새로운 진보정당을 바라본다. 후자에 속한 이들 중 김세균 교수,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모임’ 같은 경우는 노동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을 주장한다. 또 총선 이전부터 진보좌파정당 건설을 주장해온 진보신당 내부에서는 노동 녹색 정당을 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새로운 진보정치 논의에서 대세는 노동중심성 회복인 듯하다.


계급대표성의 위기에서 계급을 버렸던 선택


다시 노동이 부각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과정에서 노동정치를 의도적으로 실종시켰던 패거리들의 자기반성이라 생각한다면 좋은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진보정치라는 틀 안에서 노동을 말한다.

한국 변혁운동의 역사에서 ‘진보’라는 용어가 주류화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80년대에는 NL, PD같은 혁명론이 사고와 실천에서 중핵이었고, 90년대 이후에는 민주노총 정치강령, 민노당 창당에 구현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 같은 계급정치의 전통이 외피마저 완전히 허물어진 게 2008년 분당 이후부터였다. 종북과 패권주의를 명분으로 진보신당으로 분열한 세력이나 국참당과 합당하며 통합진보당으로 변모한 세력이나 진보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는 단지 말의 변화가 아니었다. 계급과 반자본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 그러나 비워둘 수 없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요구가 진보를 불러냈다.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진보’라는 말에는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면서 그 근본원인에는 손대지 않겠다는 혼란이 응축돼 있다. 변혁운동이 경계하고 투쟁했던 개량주의, 그러나 변혁운동의 폐허에서 소생한 개량주의. 이게 현 진보정치의 실체이다.

지난 호의 기사(“노동자지구에서 통진당 패배는 새로운 노동자정치의 기회인가?”)에서 밝혔듯이, 개량주의의 주요 사회적 지지기반은 대공장 노조이며, 대공장 노조는 비정규직의 희생 위에서 자신들을 재생산해왔고, 이로 인해 소외된 비정규직들 사이로 보수의 영향력이 파고들었으며, 결과적으로 민주노조운동과 함께 그 정치적 대변자도 비정규직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애초 민노당은 노동자정치세력화 열망에 의해 창당됐으나, 민주노총의 주요 구성원인 대공장 노조가 점차 자본에 포획되면서 함께 계급대표성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05년 울산북구 국회의원 재선거 패배). 이 위기의 기로에서 민노당의 정파들은 기존 지지기반은 유지하면서 이와 대립하는 비정규직은 사실상 버리고 ‘국민’ 사이로 지지기반을 새롭게 넓혀가는 선택을 했다. 그러면서 당은 국민정신과 화합하기 위해 우경화되고 ‘진보’화됐다. 자본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주적으로 삼고, 계급적 적대심이 아니라 시민의식에 호소하며, 비정규직과 빈민이 아니라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을 아군으로 삼았다. 체제에 의해 가장 고통받는 계급을 조직하며 자본주의와 정면으로 싸워가자는 사회주의자의 제안은 소위 자주파와 평등파 모두에게 무시당했다. 새 전략을 극단적으로 실행에 옮긴이들이 ‘탈민주노총당’, ‘탈데모당’ 외치며 진보신당을 만든 자들이며, 그러고도 선거에서 살아남지 못해 노심조처럼 복당하거나 옛 지지기반을 기웃거리는 게 그들의 안타까운 수준이다. 물론 야권연대와 묻지마 통합, 부정선거로 국회의원 늘리기에 미쳐버린 자들보다는 덜 참혹해 보인다.


그 선택을 다시 하자고?


정리하면, ‘진보’란 말은 노동운동과 노동정치가 위기에 처한 기로에서 더한 파국으로 이끈 잘못된 역사적 선택과 그 변명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고쳐 쓰자든, 새로 짓자든 진보정당 운운은 죽은 선택의 반복이고 재생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초라한 실패는 슬펐지만, 지금의 파국과 종말에까지 이른 이유를 보지 못하고 다시 진보정당 운운은 웃기는 일이다. 진짜 문제는 자본주의라고 외치지 못하는 비겁함, 두려움, 사회주의에 대한 끝 모를 거부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웃기는 헛소리는 제발 꺼져주라. 이제는 사회주의를 욕망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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