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8일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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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야권연대 늪에 빠진 민주노동당을 건진 걸까? 시신을 수습한 걸까?
김광수  ㅣ  2011년10월21일(금)

진보가 처신하기 쉬운 야권연대 시대


김규항은 이명박 시대 들어 진보하기가 편해졌다고 한다. 진보의 조건이 이명박을 반대하는 것만으로 필요조건에, 충분조건까지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노무현시절에는 민주진보세력이니 하는 억지조어까지 해야 할 만큼 진보로 처신하기가 어려웠단다. 김규항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노무현정권이 좌파신자유주의라는 해괴한 용어까지 만들어내며 재벌 천지를 만들었던 시절에 친정부이며 진보연하기는 꽤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친노가 진보연하기 어려웠다는 시절에 민주노동당이 가장 많이들은 소리가 민주당 2중대, 나중에는 열우당 2중대였다. 그러니 민주노동당도 진보정당으로 행세하기 아주 편한 시절이 온 것이다. 반MB 야권연대로 여기저기 진보연하는 자유주의자들과 어울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연대인가? 이중대가 무언가? 본부중대로 들어갔는데...


제대로 사고 친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이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선거구 나눠먹기에 점점 재미가 들어가자 사람들은 그럴 바에는 민주당하고 합당을 하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말과 실제는 늘 다른 법, 막상 국민참여당과 합당문제가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 안건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어이없어하고 당황했다. 그 중에서 제일 허둥거린 건 민주노총이었다.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 전 중집위에서 새통추에게 국민참여당과의 통합문제를 떠넘기는, 즉 합당여부에 대한 판단을 사실상 포기한 결의안을 10여명의 중집위원이 퇴장한 가운데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노동당이 감히(?) 민주노총의 고뇌에 찬 결정을 뒤로 한 채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추진하려 하자,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지지 철회를 운운하며, 반협박을 동원해 이를 간신히 막아냈다. 참으로 역동적이고 생물적인 진보정치다. 강기갑, 권영길의원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대회장 앞자리에 앉아 대회장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반대하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한 때는 스스로들 우측으로 계속 자리를 옮기는데 선두에 섰는데, 눈치 빠른 사람들이 재빨리 오른쪽 한구석으로 몰려가 본인들이 좌파가 되었다. 권영길의원은 민주노총 창립멤버로서 산하노동조합마다 걸려 있는 민주노총의 3대 목표 중 정치세력화란 말의 최소한의 선은 지키고 싶었던 게다. 하지만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고 중요한 수식어는 그 자신도 버렸다.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의 독자성은 권영길 대표 때부터 흐려져 지금은 시야에서 아예 사라졌다. 


민주노총의 이중적 태도


민주노총은 이번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막아냈다고 하지만, 겨우 12명 대의원표차로 2/3를 막아낸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민주노동당에서 민주노총은 군식구가 되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이런 꼴사나운 모습은 스스로 야권연대의 중심축으로 역할을 해온 지난 시기에 대한 자업자득이라 볼 수 있다. 지금 이미 민주노총은 선거조직화되었다. 지역으로 내려가면 더 심한 경우도 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주당의 까페 역할을 민주노총이 하고 있는 양상이다. 전국단위 집회에서 정동영, 손학규는 이미 고정출연자다. 집회에 나선 민주노총 연사들은 말끝마다 내년 선거에서 표로 심판하자는 이야기, 진보통합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달고 산다. 이 정도면 중앙선관위에게 표창장이라도 받을 기세다. 결국 대중투쟁을 선도하는 역할도,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 집단으로도 기능하지 못하는 민주노총은 이번 국민참여당 합당 이벤트로 인해 스스로 파놓은 무덤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확인한 셈이 되었다.     


민주노동당 구하기에 나선 사람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집회장에서 낯선 모습을 보게 된다. 민주노총이 참여당과 합당하는 것을 막는 서명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주축이고, 서명지 앞자리에 이미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민주노총 간부들이 다수였다. 그러나 이들은 진보대통합에 열심인 사람들이었고, 야권연대도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런가하면 진보대통합에 개입하자고 주장하는 세력과 개인들도 있다. 이들도 이번 민주노동당 구하기에 한 몫을 단단히 했으리라 보인다. “해방”지는 여러 번 지면을 통해 진보대통합이 야권연대를 전제로 하고 있는 사실상의 은폐된 민주대연합이라는 사실을 폭로해왔다. 진보대통합을 주장하는 본인들도 야권연대가 문제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야권연대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하지도 않는다. 이들의 느긋한 태도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는 구조대원이 아니라 시신을 수습하려 나온 동사무소 직원에 어울린다. 그렇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정당으로서 이미 숨을 거둔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 야권연대의 축을 분질러 버리는 호기를 부리기에는 사태가 너무 늦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막아낸 그들의 노력은 결국 민주노동당을 구한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사망을 확인한 셈이 되었다. 2/3에서 12표 모자라는 결의가 무엇을 뜻하는가? 민주노동당은 이제 장기이식이나 각막이식을 준비할 때다. 


민주노동당의 유통기간은 이미 지났다. 사회주의 정당만이 해답이다.


민주노동당은 왜 노동자 정당으로서 자신의 역사적 가능성을 소진했는가? 그것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세계적 차원의 자본주의 체제위기와 이에 저항하는 민중의 투쟁이 왜 남한에서 지지부진한 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한다. 반값등록금 투쟁은 등록금 무상화나 사학재단의 사회화나 실업, 비정규직 문제로 확산되지 못하고 중간에 반토막이 났다. 반값이상으로 나가지 않는 이들의 자제력은 민주당과의 공조의 이유에서, 혹은 스스로의 의식의 불분명에 의해서 솟아오르던 대중투쟁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것이 야권연대가 보여주는 반동성이오, 시대정신에 뒤쳐진 꽁무니주의의 모습이다. 민주노동당은 자본주의 위기가 본격화되는 시기에 야권연대, 즉 자유주의자들과의 연대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한줌 남았던 역사적 가능성을 한방에 털어먹었다. 순천에서 야권연대로 30%대의 당선자가 나온 순간, 이제 진보정치는 욕망의 정치가 되었다. 누구나 기대할 수 있는 선거구 분할의 로또에 가슴이 설렌 순간, 이들은 대의의 추종자가 아니라 욕망의 신도들이 된 것이다.

이제 그들이 다시 반자본주의 대중행동의 주체가 될 일은 없게 되었다. 너무 멀리 나아간 덕분이다. 이제 그들의 빈 공간은 새롭게 채워져야 한다. 어설픈 순수 진보정당운동으로는 어림없다. 21세기 초엽을 장식했던 진보정당운동에서 늘 부족했던 것, 노동자계급, 청년들의 자기해방의 선도자가 되는 역할은 사회주의자들의 몫이다. 사회주의 정당이 미래를 수탈당한 젊은이들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각성이다. 스스로 모이고, 서로 마주하며 깨닫는 것, 젊으니까 아픈 것이 아니라, 젊음이 왜 아파야 하는 지, 회의하고 각성하는 젊은이의 난장이 되는 사회주의 정당만이 미래를 젊은이에게 돌려 줄 것이다. 이제 행동하는 젊음, 욕망의 포로가 아닌 대의를 위해 자기희생을 마다않는 활동가들이 연대할 때다. 그날을 위해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과 함께 스스로 자리를 내주고 있다. 악취는 좀 나지만 그 자리를 우리는 기꺼이 점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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