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9일 99
해방 > 99호 > 이슈

‘근로자이사제’의 실제 이름은 ‘자본의 하위파트너’
이근행  ㅣ  

노동이사제.jpg

서울시는 올해, 5월 10일, 15개 투자·출연기관에 ‘근로자이사제’를 10월중에 실시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미 서울지하철에서 추진되고 있던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14년 12월,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와,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통합 계획을 발표할 때 이 ‘계획’을 밝힌 적이 있다. 서울시 노사정협의가 본격화되었던 올해 2월 초가 되자 이 ‘계획’은 돌연 통합에 관련한 서울지하철-도시철도 노동조합의 ‘공동요구안’으로 요구의 주체가 바뀌어 등장하였다. 이어 내년 1월 양사 통합 출범을 골자로 하는 노사정협의서 잠정합의가 3월 20일 조합원의 손에 의해 부결되었는데, 이 합의 안에는 노동이사제를 포함한 인력감축 구조조정이 포함되었다. 2014년 후반 서울시가 1·2기 지하철 통합계획에 대해 전혀 논의된 바 없다며 치고 빠지기 식의 언론 플레이를 할 때부터 ‘근로자이사제’의 ‘저작권’은 서울시(장)에 있었던 것이다.

서울시가 산하 공기업 노동조합과의 절차와 형식을 갖춰가면서 ‘서울형 노동이사제’ 모델을 구축하려했던 계획이 지하철조합원 총회에 의해 무산되었다. 그러자 수년간 가동되지 않고 있던 서울모델 노사정협의회 본회의를 소집하여 산하 투자·출연기관 노동조합 대표자들의 동의를 얻고 정관, 조례를 손보아 10월부터 ‘서울형’ 근로자이사제를 출발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한겨레나 한국일보와 같은 자유주의 언론은 서울시가 도입하려는 독일형 공동결정제도인 근로자이사제나 경영협의회를 노사관계의 상생적 협조 관계와 기업의 이윤율 제고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포장하였다. 반면 경총의 경우 “서울시는 지방공기업의 경영권을 포기한 것이다”라며 ‘경영대권’을 견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자유주의 우파라 할 수 있는 ‘바른사회시민회의’와 같은 단체나 언론들은 독일과 한국의 다름을 주장하면서 “한국은 아직 경영협의회에서 노동자 대표가 노동측의 요구를 조정(양보)해가면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검토할 가치도 없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사실, 독일의 경영협의회법은 두 번의 세계제국주의전쟁에서 패한 독일이 1920년대와 1952년에 법적으로 다듬은 제도이다. 당시 자본가계급은 ‘혁명’과 혼란으로 동요하는 노동자계급을 체제내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서울시장의 ‘근로자이사제’에 대한 한국의 우파단체, 언론의 조바심이나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의 노동계급의 상태는 1990년대 말을 정점으로 하여 패배를 거듭하면서 체제의 논리에 편입된 협조주의적 노동조합활동이 우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정부나 자본의 지침을 해마다 수용하고 있고 단체행동에 대한 법적인 권리마저 대부분 칼질을 당한 상태다.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 하에서 노사협의회에 ‘신의 성실’하게 결합하고, ‘우리사주’와 같은 배당 증서가 중요한 노동조합의 요구안 중의 하나가 되었고, 생산성 향상 운동에 노사가 함께하고 있는 실정인데, ‘우물 밖의 소총수들’은 너무나도 한가한 걱정들을 하고 있는 듯하다. 오히려 ‘작은 잔치’를 크게 소문내주는 이런 정치적인 호들갑들이 박원순 시장의 권력독점을 향한 항해에 순풍을 제공하는 모양새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근로자이사제’가 문제인가? 우선, 박원순 시장이 제시하는 ‘근로자’이사제는 표현에서부터 본질이 드러난다. ‘노동자’가 아니라 ‘근로자’인 것이다. 둘째, 박시장의 ‘근로자이사제’는 상임(상근)이사 4~5명 외 1명 정도의 비상임이사 자격으로 구색맞추기에 머물며, 자격 또한 노동조합에 가입된 인사는 2배수 추천위서 배제된다. 하다못해 독일의 공동결정제의 경우 경영이사회의 결정을 승인하는 감사회(감독이사회)의 노동이사 비율은 전체 이사수의 1/2이다. 이에 비하면 ‘근로자이사제’는 아무런 힘도 없는 것이다. 셋째, (3년의 비상임 이사직 임기를 마치면) 그야말로 등기이사로 영전될 수 있는 ‘스펙 이사’인데 뭘 그리 큰 근심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것은 기우가 아니다. 99년 파업을 이끈 위원장에서 도시철도 기술이사, 그리고 9호선주식회사 부사장으로 변신해간 석치순의 경우에서처럼 이미 서울 지하철 안에서는 이런 일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근로자이사제의 실제 이름은 ‘자본의 하위파트너’인 것이다.
관련기사

기사평쓰기
번호 제목 평점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등록된 게시물이 없습니다.

HTML코드 복사하기 (블로그나 카페에 바로 붙여넣기 하실 수 있습니다)


‘여성혐오’ 범죄에 함께 분노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기
남성들이 여성혐오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