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9일 99
해방 > 99호 > 생태

[책소개] 마르크스의 생태학(존 벨라미 포스터, 인간사랑)
이기범 대학생  ㅣ  

마르크스가 죽은 지 133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에게 지워지지 않은 오해가 있다. 바로 경제와 정치 문제를 제외한 다른 모든 쟁점을 부차시했다는 혐의다. 마르크스가 문화, 민족, 생태, 여성, 인종 등의 문제를 모두 경제적 관계만으로 국한시켰다는 황당한 곡해는 그의 사상에 경제환원론이라는 오명을 씌웠다. 이러한 곡해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계승하고자 했던 20세기 사상가들에게도 나타났는데, 한편에서는 경제환원론의 허상을 강화시킨 생산력주의를, 다른 한편에서는 환원론을 피한답시고 ‘구조’와 ‘철학’에만 몰두한 서구마르크스주의를 낳았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이와 같은 지적 질곡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협소하게 만들고 이론과 실천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야기하였다. 이는 마르크스가 정초한 사회주의 사상을 확산 및 발전시키는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오해가 완전히 제거되지 못한 채 아직까지도 사회주의 운동의 토대를 침식시키며,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처럼 마르크스주의에 관련된 이론의 토대가 부실한 곳에서는, 여전히 알튀세르를 추종하는 유사맑스주의자들이 득세하는 행태까지 볼 수 있다.


뿌리가 약한 나무는 쉽게 쓰려지기 마련이다. 빈곤한 이론적 토대위에서는 운동이 무기력해질 뿐만 아니라, 어설픈 기회주의와 개량주의가 운동을 좀먹기 시작한다. 지금이 바로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운동은 불가능하다”는 레닌의 격언이 필요한 순간이다. 여기에서 당장 요구되는 작업은 여전히 마르크스에게 붙어있는 오해의 딱지들을 깨끗이 제거하고 그의 사상을 보다 풍부하게 전개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의 지적생애를 보다 치밀하면서도 총괄적으로 검토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존 벨라미 포스터의 역작 『마르크스의 생태학』이 재출간되었다는 소식은 매우 고무적이다. 포스터는 이 책을 통해 마르크스의 사상이 처음부터 생태학적 사유를 중심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자연과 사회의 “물질대사”와 “공진화”를 사상의 핵심으로 돌려놓는다. 무엇보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마르크스의 지적 생애를 원전 중심으로 검토하면서도,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끼친 방대한 유물론적 사유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점이다. 이론의 토대를 뿌리부터 다시 세워야하는 현 시점에서 매우 유용한 지침서가 주어진 셈이다.


홀로세의 빙기를 지나 ‘인류세’의 생태위기를 맞이한 오늘날 마르크스의 생태학을 재발견한다는 것은, 어떠한 해답조차 내놓지 못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여 사회주의적 이론과 실천이 세련된 수준으로 성장할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성이 생태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생태학적 사유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사상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포스터가 정리한 유물론의 발전적 연대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마르크스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고수했던 비기계론적 비결정론적 태도를 접하게 된다. 100년이 넘도록 그를 괴롭혔던 ‘경제결정론’ 따위의 딱지는 쉽게 벗겨진다.


포스터는 마르크스가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언급한 “실천적 유물론”에 주목한다. 여기에는 마르크스가 집대성한 유물론적 자연관과 유물론적 역사관이 모두 포괄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인간과 자연의 사이의 물질대사와 더불어 인간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포괄적 의미에서 파악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생산력은 자연과 인간 사의의 긴밀성을 초점에 두고 있으며, 자연의 생산력과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이라는 이중의 의미 모두 포괄한다. 또한 생산관계는 넓은 의미에서 생산력이 인간들 사이에서 제어되는 방식을 일컫는다.


만약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말한다면, 여기에는 자연에 대한 전유 방식, 재화의 생산과 분배, 재생산의 통제 방식 등등 사회 시스템의 여러 계기들까지 논의되어야 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실천적 유물론은 경제위기, 노동소외, 생태위기, 여성억압 등 개별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세계의 문제들을 ‘생산’이라는 총체적인 관점에서 함께 파악한다. 또한 마르크스는 “생산 도구들 중 가장 강력한 생산력은 혁명적 계급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 즉, 생산관계의 모순을 극복하고 생산력의 ‘생산적’인 통제를 가능케 하는 것은 결국 피억압 계급의 스스로의 자기해방 투쟁이라는 것이다. 실천적 유물론의 진면목은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이러한 논의들을 통해 우리는 <마르크스의 생태학>에 담긴 마르크스의 사상의 풍부함과 그것에 내포된 혁명성을 재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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