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9일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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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 사이비 좌파에서 새로운 우익으로
현수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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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철학자인가 사이비 좌파인가


지난 몇 년 동안 국내에서 소위 세계적 좌파 석학으로 이름을 날린 이들 중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란 인물이 있다. 헤겔과 마르크스, 자크 라캉 등을 두루 섭렵했다고 알려진 지젝은 9·11테러나 이라크전쟁, 그리고 월 스트리트 점거시위 등 현실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 강한 발언을 한 걸로 유명해졌다. 또한 정신분석학의 토대 위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침으로써 ‘위험한 철학자’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초 지젝이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유럽 난민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이후 그가 새로운 우익에 지나지 않는다는 날선 비판이 제기 되었다. 사실 이번만이 아니라 지난 해에도 지젝은 비슷한 입장을 제기하여 논란의 중심에 섰었고 그 이전부터 학문적으로나 실천적으로도 사이비 좌파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아왔었다. 물론 국내 언론들은 지젝을 둘러싼 여러 논쟁을 다루기보다 그의 새로운 책을 선전하기에 바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지젝의 무엇이 문제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난민을 대하는 지젝의 태도


지젝은 독일의 주간지인 슈피겔(Speigel)과 일간지 벨트(Welt)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1월 독일 쾰른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력 사건을 “약자들의 카니발”이라 칭하며 좌절한 젊은 하층 난민들에게 책임을 지웠다. 더 나아가 그는 “약한 동물과 여성에 대한 잔인성은 ‘하층 계급’의 전통적인 특징 중의 하나”라고까지 말했는데, 이를 근거로 유럽에 시기심을 갖고 있는 난민들에 대한 어설픈 동정과 시혜로 유럽의 국경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강변했다.


또한 지젝은 “유럽은 유럽으로 들어오는 무슬림에게 유럽적 가치를 존중하고 요구할 필요가 있다”며 “리비아와 시리아의 국경에 난민 관리 센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급기야 “자연재해를 해결하는 데 있어 유럽의 군대가 도움이 된다”고까지 주장했다. 즉 지젝은 리비아와 요르단, 레바논으로부터 넘어오는 난민을 관리하기 위해 유럽의 군대를 파병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 정도면 그를 제국주의자라 불러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심지어 그는 난민들로부터 야기된 혼란이 프랑스의 ‘국민전선’이나 독일의 ‘페기다’ 등 유럽 극우세력의 극단주의를 심화시킨다며 “계몽 보편주의와 자유와 연대, 사회적 시장 경제와 복지 국가”인 유럽의 가치를 보존해야 한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유럽 ‘자본주의’에 대한 또 다른 위협으로 “급진적 시장 근본주의인 미국모델”과 “중국에서 실험되고 있는 아시아적 권위주의 자본주의”를 언급하며, ‘유럽 자본주의’를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난민에 대한 인종차별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선동과 “하층 계급”에 대한 악마화, 국경 폐쇄와 유럽 자본주의에 대한 방어, 군사주의로의 회귀는 전형적인 우익들의 정책이다. 그리고 소위 세계적 석학이자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일컬어지는 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이를 지지하고 있다.


그 어떤 수사도 모순을 가릴 순 없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곳곳에서 사회적 대립이 첨예화되고 기존의 억압과 공존할 수 없는 민중들의 움직임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의 노동자 민중이 난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있으며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투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바로 이러한 상황들이 지젝과 그의 동류(同流)들로 하여금 자신의 진정한 색깔을 드러내게 하고 있다.


“나는 원론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지젝의 말을 곱씹어 보자. 현란한 수사와 어법이 바닥나자 지금껏 비판해온 자본주의 체제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그들의 진면목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사이비 좌파 이데올로그로부터 우파로의 지젝의 전향은 계급투쟁이 위협적인 수준으로 치닫고 있음을 드러내 보이는 징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어떤 수사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가릴 순 없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명사들의 현란한 수사가 아니라 억압받는 노동자의 현실이요, 본질을 꿰뚫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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