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8일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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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비극, 초라한 희극] 조세도피는 자본주의의 한 속성이다
박남일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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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의 조세도피 스캔들로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파나마 법률회사인 모색 폰세카에서 유출된 자료 때문이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입수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파나마의 그 법률 회사는 지난 40년간 조세도피를 원하는 자본가들에게 21만 개가 넘는 페이퍼컴퍼니, 즉 유령회사를 만들어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일명 ‘파나마 페이퍼스’로 불리는 이번 폭로로 몇몇 국가 정상의 입지마저 흔들리고 있다. 아이슬란드 총리는 이 일로 전격 사임했고, 아버지가 스캔들에 연루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사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더불어 연루된 한국인도 195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하여 아모레퍼시픽 창업주 일가의 이름과 국내 최대 카지노기업인 파라다이스 그룹, 그리고 노태우의 장남 노재헌과 배우 윤석화의 남편 김석기 등의 이름이 나돌고 있다.


조세도피,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한 요소


세계적 규모의 조세 스캔들에 대해 미국 대통령 오바마를 비롯하여 연일 분노의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이번 조세도피 스캔들이 갑자기 불거진 것은 아니다. 이미 3년 전인 2013년 봄에도 터져 나왔다. 당시에는 GE, 애플, 구글 등 주로 미국 대자본의 조세도피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GE(1080억 달러), 애플(826억 달러) 미국을 대표하는 대자본 집단이 83곳의 재산도피처에 무려 1조46000억 달러(약 1600조원)에 이르는 재산을 쌓아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영국 하원의원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구글은 2012년 한 해 동안 98억 달러의 수입을 조세도피처인 버뮤다로 이전하는 방법으로 20억 달러의 법인세를 탈세했다. 또 같은 기간에 영국에서 43억 파운드(약 7조원)의 매출을 올린 아마존은 그 0.1%에 해당하는 240만 파운드(약 4억 원)를 법인세로 내고 오히려 250만 파운드의 보조금을 영국정부에서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한국 대자본의 조세도피 의혹도 제기되었다.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 보고서는 한국 기업이 조세도피처로 이전한 자산의 누적 금액을 7790억 달러로 추정했다.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으로, 한국의 2년치 정부예산보다 많은 금액이다.


이처럼 조세도피 실태가 드러나면서 강력한 법 개정과 국가 간의 조세정보 공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리하여 이미 2013년 G20정상회의에서 승인된 다국적기업 조세회피(BEPS; 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방지프로젝트도 가동되고 있다. 하지만 자본의 조세도피가 근절되리라 믿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조세도피 자체가 불법이 아니어서 이를 제제할 방법이 마땅찮은 데다, 이를 규제할 법을 제정하는 일도 쉽지 않고, 설령 법이 제정되어도 자본가들은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그 빈틈을 쉽게 파고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의 조세도피 정황을 포착한 각국의 재정당국도 이에 대해 마땅한 압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언론플레이에 기대며 그저 ‘자진납세’를 읍소하는 실정이다.
이는 대자본가들의 조세회피가 자본주의 경제의 일탈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를 굴러가게 하는 한 요소임을 반증한다. 자본주의 경제활동의 본질이 사적 이윤 추구에 있다는 점에서 조세를 도피하고자 하는 자본가들의 시도는 한편으로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한 요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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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태동과 함께 이어져온 조세도피의 역사


사실 자본의 조세도피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역사는 1789년 프랑스 혁명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혁명을 맞아 재산을 지키려던 프랑스 귀족들이 일정한 수수료를 주고 스위스 은행에 비밀계좌를 열어 재산을 숨긴 것을 역외 조세도피의 원조로 볼 수 있다. 이어 1800년대 중반에는 모나코가, 1920년대에는 리히텐슈타인과 룩셈부르크, 그리고 1930년대에는 영국령 버뮤다 등이 조세도피처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특히 자본가들의 조세도피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영국의 법원이었다. 1920년대 영국 법원은 런던에 본사를 두었더라도 외국에서 벌어오는 수입에 대해서는 조세할 수 없다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았다. 자본주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 법원의 이런 판결은 자본가들에게 조세회피를 법적으로 보호해주는 결과를 낳았다. 더구나 이에 화답하듯 1934년 스위스는 은행 거래자의 신원 노출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을 제정하여 금융비밀주의를 도입했다. 자본가들의 재산 은닉을 합법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탄력을 받아 세계 곳곳에는 조세도피처가 늘어나게 되었다.


한편 190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자본과 검은 돈의 조세도피를 부추긴 것은 미국이었다. 이번 파나마 페이퍼로 유명해진 파나마 자체가 사실은 스탠더드오일 등 미국 정유자본의 수입 세탁소 역할을 해왔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미주리대 마이클 허드슨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미국의 스탠더드오일은 소득세가 없는 파나마에 선박회사를 등록한 뒤, 중동에서 수입한 석유를 이 위장계열사에 싼값으로 팔고, 이를 다시 미국이나 유럽의 하청업자에 비싸게 되팔아 수익을 냄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내왔다고 한다. 파나마에 붙은 ‘선박등록국’이라는 명칭도 이처럼 조세도피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이는 1903년 이후 실질적으로 파나마 운하지대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비호 또는 묵인 아래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조세도피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태동과 함께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을 따라 횡행해왔다. 이는 자본가국가들 자체가 자본가들의 조세도피 행위에 숙주 노릇을 해왔음을 보여준다. 사실 자본의 세계에서 국가는 자본가들의 이윤경쟁을 위한 임의적 경계에 지나지 않으며, 자본이 이른바 ‘절세’를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것도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조세당국은 이처럼 합법적 탈세가 이뤄지는 것을 뻔히 알지만 이들에게 납세를 강제하거나 법적 제제를 가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최근 몇 년 동안 조세 도피가 이슈로 떠오르게 된 것은, 한편으로는 세계 자본주의의 심각한 위기를 반영한다. 먼저 경제공황으로 성장과 축적이 둔화되고 낮은 금리와 위축된 투자 환경에서 조세피난처로 숨어드는 자금 액수가 급격히 커졌다는 사실이다. 반면 자본주의 공황을 맞아 재정위기에 처한 각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세수(稅收) 확대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처럼 다국적 자본과 각국 정부의 상반된 이해관계가 마주치는 지점에서 조세도피가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계급적 처지에 따른 조세의 이중적 성격


조세회피로 인한 법인세 손실액이 매년 1,000∼2,4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또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의 2012년 보고서에 의하면 2010년에 조세도피처로 유입된 금액이 21조 달러(약2경4200조원)이다. 조세회피 규모가 세계 총생산의 30%이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임금노동자들에게는 식욕을 잃게 하는 통계들이다. 게다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임금노동자들에게 조세제도는 이중적 수탈구조로 되어 있다. 요컨대 자본가들은 노동자들로부터 수탈한 결실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도록 되어 있지만, 대다수 임금노동자들은 이미 수탈당하고 난 뒤에 받은 임금, 즉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최소 생계비에서 다시 세금을 원천징수 당한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이중적 수탈이다. 게다가 임금노동자들에게 조세회피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이런 실상을 잘 보여주는 책이 있다.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던 시절에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로 맹위를 떨치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자기계발서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기업에 노동력을 바친 후 세금 공제한 급여로 만족하지 말고, 자신의 기업을 세워서 돈을 벌고 쓸 것 다 쓰고 남은 자금을 기준으로 세금을 내라”고 조언한다. 신자유주의 전도서라 할 수 있는 이 책의 메시지는 자본주의 체제의 조세제도가 계급에 따라 이중적이며,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 속성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한편 자본주의적 조세제도의 문제는 징수의 이중성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이미 걷은 세금을 지출할 때도 자본가 국가는 계급적 이해에 따른다. 예컨대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2014년 동안에 미국정부는 자국의 50대 기업에 11조 2,000억 달러의 자금을 투입했다. 그리고 같은 기간에 미국의 50대 기업은 26억 달러를 정부 로비 자금으로 썼다. 한국 정부의 예산 집행 방식도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와 다르지 않다. 이는 세금이 재분배를 통해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쓰일 것이라는 대중적 믿음을 비웃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 체제의 조세제도는 문제는 있지만 답은 없다. 유일한 답은 그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국가와 자본이 일심동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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