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8일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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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의 친숙한 구호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황정규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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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어김없이 노동절은 찾아 왔다. 올해로 126주년을 맞는 노동절은 1886년 5월 1일 일어난 시카고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유래한다. 이 파업은 8시간 노동제의 쟁취를 목표로 하였으나 잔인한 경찰은 파업 중인 노동자에게 발포를 하고 잔학한 탄압을 자행하였다. 또한 5월4일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일어난 정체불명의 폭탄공격을 빌미로 8면의 무정부주의 지도자를 체포하여 사형을 언도하였다.


이 사건은 국제적 관심과 저항을 야기하였다. 때마침 1889년 창립한 노동자들의 국제조직 제2인터내셔널은 창립대회에서 1890년 5월 1일을 ‘국제적인 대투쟁의 날’로 잡고 국제적 투쟁을 전개하자고 결의하였다. 이로써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대와 투쟁을 도모하는 노동절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뜻 깊은 역사를 지닌 노동절에서 가장 많이 외쳐지는 구호가 바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Workers of all countries, unite)”이다. 이 구호의 출처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저 유명한 맑스,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의 최종 결어였다. 『공산당 선언』은 독일 공산주의자동맹의 강령으로 작성된 글이었다. 그러나 이 구호는 단지 『공산당 선언』이라는 강령에 들어간 수사적 표현이 아니었다. 이 구호는 이전의 노동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노동운동의 개시를 알리는 보다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과 계급조화의 구호 “모든 인류는 형제다”


이제 이 구호가 등장하게 된 역사적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근대 노동운동은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다고 이야기된다. 자본주의의 등장은 근대 노동자 계급을 출현시켰다.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된 자유로운 임금노동자의 등장이 바로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노동자계급의식의 형성과 노동자계급의 운동의 등장에 큰 영향을 끼친 데에는 다른 여러 요인도 존재했다. 그중 큰 영향을 끼친 것이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자유, 평등, 박애의 인간해방을 주창한 프랑스 혁명은 결국 새로운 계급지배인 부르주아 사회를 낳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혁명 속에서 출현한 사상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모든 인간이 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낳았다. 이는 피지배계급인 노동자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노동자 투쟁의 사상적 저변이 되었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은 프랑스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바다 건너 영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 노동자계급에 대한 프랑스 혁명의 영향은 토마스 페인을 통해 전파되었고, 영국 노동운동에서 자주 등장하는 “convention”(공회)이라는 조직형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영향에서 나온 당시 노동운동의 대표적 구호가 “모든 인류는 형제다(all men are brothers)”라는 것이었다. 이 구호는 모두가 한 인류로 동등한데, 지주나 부르주아지 같은 일부 세력이 이를 망각하고 우리를 착취하고 억압하고 있다는 저항적 인식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구호는 본질적으로 노동자와 민중의 착취, 억압이 계급지배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계급지배 자체의 철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아니라, 각 계급들이 너무 지나치게 자기 이해만을 추구하지 않고 서로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계급조화의 인식을 담고 있었다.


맑스의 등장과 공산주의자동맹의 결성


맑스가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1843년에서 44년 즈음으로 추정된다. 라인신문의 폐간으로 독일 내에서 유의미한 정치활동이 불가능해지자, 맑스는 급진적 민주주의자 루게와 함께 프랑스에서 프랑스의 혁명가들을 포함하는 잡지 『독불연보』를 창간하고 이를 독일로 반입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를 위해 프랑스 파리로 넘어간다. 맑스는 이곳에서 프랑스 노동운동, 사회주의 운동과 본격적인 접촉을 하게 되고, 점차 공산주의 사상을 확립한다. 이 시기 엥겔스와의 평생 교류가 시작되는데, 그는 엥겔스의 주선으로 영국을 방문하여 노동자의 실상을 접하고 차티스트 활동가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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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봄 프로이센 정부의 압력에 굴복한 프랑스 정부는 맑스를 프랑스에서 추방하는데, 맑스는 여러 가지 지리적, 정치적 조건을 고려하여 브뤼셀로 이주한다. 이 브뤼셀에서 맑스는 본격적인 조직활동을 시작하여, 브뤼셀교신위원회를 결성한다. 이 당시 편지는 가장 보편적인 통신수단이었고, 지역 간의 서신왕래로 조직을 형성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브뤼셀교신위원회가 중요한 정치세력이 되고 사회주의 운동에서 맑스와 엥겔스의 비중이 커지자, 1847년 봄 영국 런던에 있던 “의인동맹”의 지도자, 요제프 몰, 칼 샤퍼, 하인리히 바우어가 맑스와 엥겔스에게 의인동맹의 가입을 권유하는 단계까지 이른다.


“의인동맹(the league of the just)”은 1834년 파리에 추방된 독일인 망명자로 구성된 비밀 결사 “법외자동맹(the league of outlaws)”에서 갈라져 나온 조직이었다. 의인동맹은 프랑스의 유명한 혁명가 루이 블랑키가 지도하던 “계절단”를 추종하여 1839년 5월 무의미한 봉기에 동참하였다. 이 봉기가 황당하게 실패한 후 국외로 추방된 칼 샤퍼, 하인리히 바우어와 요제프 몰은 런던으로 옮겨가 조직을 다시 세운다. 칼 샤퍼는 임학 학생이었던 반면 하인리히 바우어는 제하공, 오제프 몰은 식자공이었다.


이들의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 노동운동에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알아야 한다. 우선 이런 노동자결사에 참여하였던 노동자들은 대개 직인신분이었다는 점이다. 중세 길드제도에서부터 내려온 당시의 직인은 도제생활을 마치고 여러 해 동안 다른 지역과 나라를 방랑하며 일을 하는 관습이 있었다. ‘직인’을 뜻하는 영어 단어, ‘Journeyman’ 자체에 이러한 관습이 담겨 있습니다(journey는 ‘여행’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러한 직인의 관습은 초창기 노동운동에서 노동자국제주의가 발전하는 토양이 되었다.


두 번째로 당시 상당수의 노동자 조직이 비밀결사의 형태를 띠었다는 점이다. 이는 중세 길드체제로부터 내려오는 비밀결사의 전통과 당시 자본가, 국가의 탄압으로 공개적 조직을 만들 수 없던 상황이 결합되어 나온 것이었다. 가령 영국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국내 정정이 불안해지자 1799년 단결금지법을 제정, 노동조합의 결성을 금지하였다. 이렇다보니 노동자들은 비밀결사 형태로 조직을 만들었고, 독특한 비밀결사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런 조직형태는 노동자 대중운동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분명하였다.


이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가 1834년의 “탈퍼들의 순교자들”입니다. 탈퍼들의 농업노동자들은 임금과 생활수준이 하락하자 비밀결사 형태로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그들은 해골이 새겨진 깃발을 만들고 그 앞에서 비밀선서를 하였다. 이에 대해 영국 정부는 주동자 6명에 대해 또 다른 악법으로 1797년 만들어진 개인들 간에 비밀 선서를 금지하는 법률을 적용하여 오스트레일리아로 유형을 보냈다. 탈퍼들 노동자의 투쟁과 탄압 이야기는 빌 더들라스 감독의 영화 <동지들>(1986년 작)에서 상세히 묘사되었다. 런던에서 자리를 잡은 의인동맹도 예외는 아니라 당시 지배적이던 노동자 비밀결사의 형태를 따랐다.


의인동맹의 가입권유에 대해 맑스와 엥겔스는 의인동맹의 구호인 “모든 인류는 형제다”와 그들이 취한 낡은 비밀결사적 조직형태(비밀선서와 교리문답식 강령, 그리고 비밀결사 특유의 조직구성)를 바꿀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더해 앞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블랑키식의 음모적 투쟁방식도 버려야할 대상이었다. 이젠 낡은 운동형태를 버리고 역사발전 속에서 제기된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를 보다 명확하게 표현하는 운동형태(이론, 강령, 조직, 투쟁 등)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 결과 1847년 여름 1차 총회를 통해 의인동맹과 브뤼셀교신위원회는 조직을 통합하여, 조직명칭을 “의인동맹”에서 “공산주의자동맹(the Communist league)”로, 조직의 목표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평등, 정의에 기반을 둔 신의 왕국을 지상에 수립하는 것”에서 “부르주아지의 타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 계급 대립에 기반한 낡은 부르주아 사회의 폐지, 그리고 계급들도 없고 사적 소유도 없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조직의 구호가 “모든 인류는 형제다”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바뀌게 된다.


새로 건설된 조직, 공산주의자동맹은 1847년 12월의 2차 총회는 강령의 작성을 맑스와 엥겔스에게 일임하였다. 맑스는 교리문답식 강령형태를 버리고 많은 사회주의 정당의 표준적 강령이 된 형태로 새로운 강령을 작성하였다. 이로써 1848년 2월, 『공산당 선언』이 등장하였다.


전세계 노동자의 구호가 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새로운 구호의 등장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것이었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비과학적 인식과 전망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인식과 전망으로 대체되었다. 노동자들은 프랑스혁명에서 유래한 낡은 언어를 버리고 자신들만의 언어를 갖게 되었다. 낡은 계급조화의 사회가 아니라, 착취와 억압을 일소하고 계급지배 자체를 철폐하는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이 노동자계급의 전망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구호는 최초의 노동자 국제조직인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시기부터 자연스레 전세계 노동자들의 대표적 구호가 되었다.


비록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운동이 많은 굴곡을 겪어 왔고, 현재에는 잠시 침체되어 있지만,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피할 수 없는 인류의 미래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 한 구호에는 노동자들의 거대한 미래가 담겨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구호에 맞는 노동자계급의 운동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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