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8일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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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가난을 팝니다 (라미아 카림, 오월의봄)
박준규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 회원)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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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신들은 약자들을 돕는 사회공헌 사업을 하고 있다는 식의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기업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보자. 노동계급에게서 잉여가치를 착취하여 이윤을 뽑아내야만 작동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기업이 과연 ‘착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해 이렇게 말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거대자본은 몰라도, 적어도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곳에서는 민중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가난을 팝니다』의 저자 라미아 카림은 그것마저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를 강화시키는 ‘그림자국가’로서의 NGO


저자인 라미아 카림은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초국적 자본들이 NGO를 앞세워 자신의 고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착취 및 시장화의 민낯을 자신의 책에서 낱낱이 드러낸다. 특히 그녀는 노벨상 수상자 유누스가 빈민들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설립한 그라민 은행을 중심으로, 이른바 ‘마이크로 파이낸스’의 실상에 대해 폭로한다. 생생한 현지조사를 통해 완성된 이 책은, 남한에 사는 사람들이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여성들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녀들에 의해, ‘개발도상국가의 가난한 여성들이 쉽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착한 자본’이라는 마이크로 파이낸스의 이미지는 산산조각난다.


방글라데시는 불안정한 정치 및 사회구조로 인해, 원래 국가 또는 사회가 담당해야 할 복지, 교육, 인프라 등의 사업을 서구의 지원을 받는 NGO들이 담당해왔다. 이 과정을 통해 NGO들은 비정부기구(Non-government organization)라는 이름과 달리 해당 국가에서 사실상의 통치기구 역할을 해 왔다. 이렇게 ‘그림자국가’가 된 NGO들은 농촌을 비롯한 지역사회 민중들에 대해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을 지원해 준 서구 자본의 이익을 위한 포석을 깔아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빈민들에게 대출을 해 주면서 초국적 자본의 상품을 끼워팔기 하거나, 아예 자신들을 후원하는 자본이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 및 지역사회에 압력을 행사하여 관련 법령을 바꾸게 하는 로비활동도 서슴지 않는다. 또한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진보연하는 사람들이 멋모르고 찬양하는)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도 마찬가지이다.


‘신용’이라고 쓰고 ‘부채’라고 읽는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빈민 여성들에 대해 ‘여러분도 신용의 대상입니다’라고 하며 이루어진 NGO들의 대출이 실제 그녀들의 삶을 전혀 개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라민은행을 비롯한 NGO들은 대출금을 회수하는 데에만 관심을 두며, 실제로 그 자본금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관리나 교육은 전무하다. 그렇기에 대출금을 받은 빈민들의 절반 이상이 더욱 더 빈곤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만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NGO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폭로한다. 모욕을 동반한 추심, 집을 강제로 허물어 그 자재를 상환금 대신 가져가는 모습들은 여느 사채업자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나는 신용이라는 개념을 부채로 대체한다”(38쪽)라고 못 박은 것은, 정곡을 찌르는 매우 적확한 표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착한 자본주의란 없다. 그저 자본주의일 뿐


노동계급을 재생산 및 착취하지 않고서는 지탱될 수 없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은폐하고 모두가 ‘사업가’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설파하는 사회적 경제란, 절대다수 대중의 빈곤화를 더욱 가중시키고 자본의 착취영역을 더 넓혀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 의미도 갖고 있지 않다. 더 이상 사회적경제니 착한 자본주의니 하는 말에 박수를 보낼 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이크로 파이낸스 대출을 받아 여는 작은 사업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이다” “민주적인 토론과 논쟁을 통해 인민들 스스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328쪽)는 저자의 지적을 새겨들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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