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8일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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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로 협공하는 자본가계급에 맞서 반자본주의 노동자투쟁을 만들어가자
황정규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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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심판은 했는데 이긴 것 같지 않은...


4월 13일 20대 총선은 새누리당의 선거 참패로 마무리되었다. 선거 전까지만 해도 개헌선을 넘어설 정도로 압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횡행했으나, 이것은 여름날 개꿈에 불과한 것임이 드러났다. 이러한 선거 결과가 나오자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어찌되었든 이번 선거에서 분명한 점은 새누리당, 박근혜 정권이 심판당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집권 3년 동안 무능과 비정상으로 일관하였지만, 이제껏 매번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열린 지방선거에서조차 박근혜 정권은 새정치민주연합을 누르고 승리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의 보궐선거에서도 여당의 승리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제 민심은 돌아서고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으로 ‘선거혁명’이 일어났다. 선거로 새누리당을 개박살낸 것이다. 새누리당‧박근혜 심판을 핵심 정치방침으로 삼은 민주노총이나 여타의 진보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승리한 선거인 셈이다. 그러나 이상하다. 승리해도 승리한 것 같지 않은 이 느낌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반박근혜, 반새누리당을 내걸고 싸웠는데, 이 개운치 않은 느낌은 무엇이란 말인가!


중도 정치와 ‘협치’의 계급성


이제껏 주요 정치세력들은 모두 중도성향 부동층을 장악하기 위한 레이스를 전개했다. 각자 진보, 보수 양쪽에서 견고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지층을 돌보기보다는 중도층을 자기 쪽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런 판단 속에서 더민주, 국민의당은 중도층 공략에 나섰다. 심지어 정의당조차 태극기와 군복을 앞세워 이 대열에 온 몸을 던졌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따라서 급진화하는 세계정치의 흐름과 상반되게 한국 정치는 우경화하는 모습을 띠었고, 이런 계속된 우경화 속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새누리당과 별반 다르지 않는 정당으로 변하였다. 한땐 정당을 바꿔 출마하면 철새 정치인이라는 욕을 들었지만 이제는 서로 주전 멤버들을 ‘트레이드’하다 보니 오히려 이런 행태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20대 총선 결과는 이러한 우경화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 결과는 단지 새누리당과 박근혜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어 다른 정당들로 표가 간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야당들이 중도를 내걸고 총선에 승리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득표 감소, 국민의당의 약진은 이런 해석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사실 이러한 중도 정치는 지배계급이 바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대공황으로 삶의 조건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도 정치는 노동자민중의 급진화를 막는 안전핀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선거가 끝나자마자 주류언론들은 중도정치를 찬양하고 나섰다. 그리고 스멀스멀 ‘협치’라는 말이 등장하였다. 각 정당들이 반목과 대결만 하지 말고 함께 공동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다. 이 ‘협치’라는 말은 서로 차이가 없어진 마당에 괜히 위선 떨지 말고 지배계급 역할을 함께 제대로 하자는 노골적 표현이다.
이렇다보니 ‘선거혁명’을 통해 새누리당, 박근혜를 심판했는데, 오히려 노동자들은 새누리당, 더민주, 국민의당에게 에워싸여 협공당하는 기이한 형국에 놓이게 되었다. 새누리당, 박근혜에게 계속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새누리당, 박근혜가 만악의 근원이고,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는 최고의 적인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게 아니었다. 더민주, 국민의당 모두 노동자민중보다 새누리당, 박근혜에 더 가까운 세력이었다. 아니 이름만 다를 뿐 모두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대 총선은 이 본질을 까놓고 정치하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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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오는 구조조정,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돌파하자


총선 이후 정치 쟁점이 된 구조조정은 ‘협치’의 민낯을 보여준다. 조선업, 해운업 등 한국 핵심 산업부문이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이미 3년 전부터 이 위기는 계속되었고 올해부터 재점화 한 세계대공황은 이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런데 이것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지금까지 정부정책의 기조가 돈을 풀고 금리를 내리고 부채를 증가시켜 경기둔화를 저지하는 것이었고, 이렇다 보니 언론을 통해 심각한 경제상황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거철이 겹치면서 안 좋은 경제상황이 집권여당에 불리하기 때문에 잠시 감춰져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선거 이후 자본은 더 이상 구조조정을 미룰 수 없었던 것이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더민주, 국민의당은 자본에게 자신의 유능함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너나 할 것 없이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들고 나왔다. 이제 노동4법 처리는 부차적 쟁점이 된 정도이다. 이들은 구조조정으로 피해를 보는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조치들을 운운하고 있지만 이것이 눈 가리고 아웅하기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이들의 정치가 노동자 죽이는 구조조정이란 민낯을 띠게 되는 것은 전세계 자본주의가 끝을 모를 위기로 치닫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이 위기 속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은 사라지고, 각각의 계급은 자기 계급의 위치에 따라 양극화된다. 따라서 이들이 말하는 중도 정치는 허상에 불과하고 실상은 자본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만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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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가? 노동자 역시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더욱 분명히 하고, 자신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의식과 투쟁을 더욱 급진화시켜야 한다. 그중에서도 노동자들을 노예의 사슬에 놓이게 만드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급진적 운동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매년 노동절에서 함께 부르는 인터내셔널가는 “우리 것을 되찾는 것은 강철 같은 우리 손”이라고 이야기한다. 노동자 자신의 손으로 노예의 사슬을 끊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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