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4일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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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새로운 자본 읽기(미하엘 하인리히, 꾸리에)
현수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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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할 것 없이 경제위기를 이야기하는 지금,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에 대체 무엇이 자본주의인지, 왜 자본주의가 무엇이 문제인지를 말하기 위한 책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그 중 미하엘 하인리히의 『새로운 자본 읽기』는 저자가 밝혔듯이 마르크스의 “『자본(론)』 읽기를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목적으로 쓰인 책이다.

 

얼마나 새로운 자본읽기일까?


하인리히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정치 및 사회구조를 규정한다는 ‘경제결정론’이나 자본주의의 종말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소위 ‘역사결정론’을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라 규정하며 이러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이 마르크스의 이론으로부터 멀어져 있다고 비판한다. 그렇기에 하인리히는 『자본(론)』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설명과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오류 및 『자본(론)』의 잘못된 해석에 대한 비판을 함께 이야기한다.


이는 한편에 자본주의의 분석을, 다른 한편에는 기존 정치경제학의 범주를 비판했던 마르크스의 작업과 유사해 보이지만 이런 방식이 과연 그가 비판하려는 ‘지나친’ 도식화를 효과적으로 지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자본(론)』의 “고유한 독해를 돕고 얼마간 더 용이하게 만”드는 데 있어 그의 비판적 도식화가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지도 모른다.

 

눈 여겨 볼만한 물신성 비판 설명 -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혁명성의 부정으로 이어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인리히가 지적하는 인식비판의 부분, 물신성에 대한 부분은 눈 여겨 볼만 하다. 그가 말했듯이 “마르크스는 물신숭배를 인식 가능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의식비판과 학문비판의 토대를 마련”했고 “사회적 관계가 결코 그것이 보여지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밝혔다. 상품과 화폐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는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니며 특정한 행동이 낳은 결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대로 “상품과 화폐가 없는 사회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사회는 “상품물신과 화폐물신에 종속되어 있”기에 “그들의 합리성은 언제나 상품생산에 의해 설정된 틀 안에서의 합리성”에 갇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노동자이기에 바로 노동계급으로서 계급적 의식을 갖고 자본주의의 물신성을 깨닫고 꿰뚫는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노동계급이란 특수한 사회적 계급이 계급적 위치에 존재함으로써 사회적 모순을 깨닫고 그 사회의 혁명적 역할을 담당한다는 건 하인리히의 입장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결론이 된다. 오히려 그는 『자본(론)』이 혁명적 발전이 드물고, 저항이 자본주의를 향한 투쟁으로 직결되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준다고 말한다. 바로 그 물신성 때문에 말이다. 물론 그 역시 지금의 자본주의를 폐지하거나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그게 필연적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말하며 자본주의의 구조를 살피면 오히려 자본주의는 의식적으로나 조건적으로나 체제를 유지하는 토대 내에서 노동자와 자본을 재생산한다 읊조린다.

 

하인리히와 다른 마르크스 자신의 사상


분명 마르크스는 『자본(론)』의 서문에서 자신이 연구하는 대상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그 양식에 상응하는 생산관계 및 교환관계라 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내적 구성을 평균적으로 보이는 것이 주목적이라 말했다. 이건 사실이다. 그런 그가 『자본(론)』 중간중간에서 자본주의의 종말과 노동계급의 혁명적 의식 및 역할이 증대될 거라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인리히의 말처럼 “혁명적 열광주의가 냉정한 학자에게 승리를 거두고 있는” 건가? 또는 일정 시기까지 그가 사용했던 개념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청산됐거나 의식적 단절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건 경제주의로 축소된 마르크스를 피하다가 문헌학에 갖힌 마르크스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자본(론)』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마르크스가 만들어온 사상의 역사성이다. 마르크스 역시 자신의 사상을 삶 속에서, 실천과 투쟁, 학습과 교육의 과정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켜왔다. 마르크스의 주장은 분명하다. 즉 비록 물신(物神)이 가득하여 혼탁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노동계급은 자신을 착취하는 체제를 확인하고 이에 맞섬으로써 자신의 모순을 극복해가며, 동시에 인간을 옥죄는 모든 억압에 대항하여 궁극적으로 인간해방을 향해 전진할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부단히 학습과 실천을 병행하는 인간의 행동 결과로써만 세상은 바뀔 수 있다. 무엇보다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 자신의 삶이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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