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4일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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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레스의 죽음과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환경투쟁
황정규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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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일 저녁, 온두라스의 지도적 환경운동가인 베르타 카세레스(Berta Cáceres)가 자택에서 괴한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녀의 사망 소식은 전세계 언론을 통해 곧장 알려지게 되었고, 사실상 그녀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온두라스 정부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보도에서 좀처럼 이야기되지 않은 내용들이 있다. 바로 그녀의 비극적 죽음을 가져온 환경투쟁의 내용,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온두라스 쿠데타 정부의 성격, 그리고 온두라스 정부를 후견하고 있는 미국의 존재이다.

 

베르타 카세레스의 투쟁과 죽음

 

그녀는 온두라스에서 소수 원주민인 렌카족으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폭력으로 점철된 1970년대 중앙아메리카에서 엘살바도르의 난민들을 보호하는 사회운동가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카세레스는 학생운동가로 활동하던 1993년, ‘민중‧원주민단체평의회’(COPINH)를 건설하여 활동하였다. 이 조직은 불법벌목, 플랜테이션 농장주, 미군기지 반대 등의 활동을 하였다.

 

2006년 리오 블랑코 지역에 갑자기 건설장비들이 자기 지역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렌카족 원주민들은 카세레스에게 이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였다. 즉시 조사에 착수한 카세레스는 이것이 원주민들이 신성시 하는 괄카르케(Gualcarque)강에 네 개의 댐을 건설하는 공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댐들의 건설은 원주민의 터전과 삶의 조건을 파괴할 것이 명백하였고, 이런 대규모 건설사업의 경우 원주민과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의 원주민 권리 관련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었다. 민중‧원주민단체평의회와 지역 원주민 공동체는 곧장 투쟁에 돌입하였다.

 

쿠데타 이후 친기업정책을 추진하는 온두라스 정권에 의해 환경을 파괴하는 대규모 공사가 급증하였다. 국토의 30%가 광산 이권을 위해 불하되었고, 이 광산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값싼 전력공급이 절실하였다. 민중과 원주민이 사용할 전기가 아니라 광산에 공급할 전기를 위해서 대규모 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온두라스 정권은 수백 개나 되는 수력 댐 건설을 허가하였고, 이를 위해 강과 토지를 사유화하고 원주민 공동체를 그들이 살던 곳에서 강제추방 하였다. 

 

2013년 한 해 동안 본격적인 투쟁이 벌어졌다. 민중‧원주민단체평의회와 원주민 공동체는 건설부지를 점거하고 아구아 자르카 댐 건설을 막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이 와중에 건설자본의 사설 경비와 군대의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부상을 입었다. 2013년 7월 15일에는 군대의 발포로 1명이 사명하였고, 2014년 4월에는 의문의 공격으로 2명이 사망하였다. 원주민과 환경운동가들의 투쟁으로 합자하고 있던 중국기업과 세계은행은 철수하였다. 그러나 초국적 자본의 투자를 받는 DESA는 공사를 계속하였고 카세레스와 다른 두 명의 주요 활동가를 폭력, 재산 손괴 등의 이유로 고발하는 등 탄압을 지속하였다. 2015년 카세레스가 골드먼 환경상을 받게 된 것은 이런 투쟁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초국적 자본과 온두라스 정부의 눈 밖에 난 것이 그녀를 비극적 죽음으로 인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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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로 집권한 온두라스 정권의 친자본 정책과 국가테러


2006년 집권한 온두라스의 대통령 마누엘 셀라야는 독특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면, 그에겐 딱히 진보적일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집안 출신이었고 그 자신도 지주이자 자본가였다. 대학에 들어가 도시공학을 전공했는데, 대학을 끝마치지 못하였다. 대학시절 아버지가 끔찍한 학살사건의 주동자로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로스 오르코네스 학살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진보적 신부 및 농민들과 대토지소유자 사이의 갈등이 신부 및 농민에 대한 대토지소유자들의 집단학살로 비화된 사건이었고, ‘로스 오르코네스’는 셀라야 집안의 농장이었다. 또한 그는 보수적 강령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집권 이후 셀라야는 좌선회하기 시작하였고 민중적 정책을 시행하였다. 무상교육 실시, 소농에 대한 보조금 지급, 은행 금리 인하, 최저임금 80% 인상, 빈민 아동에 대한 무료 학교급식 실시, 가사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 도입, 사후피임약 합법화 등이 그의 주요 정책이었고, 이를 통해 집권 2년 만에 빈곤률을 10%까지 감소시켰다. 그리고 2008년부터 헌법을 변경하기 위한 시도에 들어갔다.

 

이러한 셀라야의 전향(!)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고, 헌법 변경을 시도하는 셀라야의 행보가 제헌의회를 통해 신헌법 제정하여 정치‧경제구조를 개조하였던 베네수엘라의 선례를 따르는 것으로 보이자, 지배계급과 구 국가기구가 셀라야를 분쇄하기 위해 일어섰다. 대법원은 헌법 개정 시도를 위법행위라고 판결하여 쿠데타 세력에게 정당성을 부여하였고,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예정되어 있던 2009년 6월 28일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켜 셀라야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했다.

 

이후 수립된 정부는 온두라스 민중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과 테러를 통해 체제를 유지하였다. 쿠데타 이후 두 번의 대통령 선거를 통해 극우세력이 집권하였지만, 선거는 폭력과 부정, 협박으로 점철되었다. 신정부는 군대, 경찰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암살단 운영을 허용했다. 쿠데타 이후 온두라스 정권은 무법천지가 되었다. 쿠데타 세력이 처음 시작한 것은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탄압이었다. 사후피임약이 불법화되고, 쿠데타 이후 168명의 LGBT 활동가가 살해당했다. 2013년 11월에는 운동가‧언론인‧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비밀 암살리스트가 폭로되었다.

 

환경운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5년 ‘글로벌 위트니스 리포트’에 따르면, 온두라스는 환경운동가가 활동하기에 가장 위험한 국가이다. 2010년부터 2014년 사이 101명의 환경‧원주민 운동가가 살해당했다. 이렇게 민중들을 억압한 상태에서 광산개발, 댐건설, 대규모 농장 등 대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댐건설 반대투쟁의 전면에 선 카세레스는 정권의 첫 번째 암살 대상이었다.

 

온두라스 정부를 후견하는 미국

 

2009년 쿠데타 당시, 미국 정계와 언론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축출한 쿠데타 세력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사실상 온두라스 정부를 지원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 오바마 행정부의 국무부장관을 맡고 있던 힐러리 클린턴의 역할은 지대하였다. 힐러리 클린턴의 자서전, “힘든 선택들”과 최근 공개된 힐러리의 이메일에는 온두라스 쿠데타에서 힐러리의 역할이 상세하게 드러난다.

 

쿠데타가 발생하자, 모든 나라들과 국제기구들은 축출된 셀라야의 원상복귀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힐러리는 셀라야의 복귀가 아니라 조속한 민주적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재선출하는 것으로 의제를 바꾸었다. 이는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가장하지만, 사실상 온두라스의 쿠데타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친한 로비스트 래니 데이비스를 통해 쿠데타 지도자 로베르토 미켈레티와 비밀리에 접촉하여 쿠데타 세력을 인정하였다. 마지막으로 미주기구(OAS)가 석 달 후 진행한 대통령 선거를 인정하지 않는 결의문을 채택하려 하자, 이것의 채택을 봉쇄하였다.   

 

카세레스의 죽음은 환경문제, 자본주의, 제국주의가 어떻게 복잡하게 얽혀있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최소한의 진보적 개혁조차 용납할 수 없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윤을 추구하려는 자본주의와 국내외의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드리웠던 것이다. 리오 블랑코의 원주민들과 카세레스의 투쟁은 환경을 파괴하고 삶의 터전을 붕괴시키는 댐건설에 맞서 싸웠지만, 이 싸움은 결국 자본 그 자체와 자본을 대변하는 국가, 그리고 제국주의에 맞선 거대한 싸움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환경투쟁은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새로운 삶의 원리를 꿈꾸는 투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녀의 친구인 호세 프리스턴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를 기렸다. “베르타는 과거에 뿌리를 두면서도, 이와 다른 미래, 즉 식민상태에서 벗어나고 평소 그녀가 자신의 진짜 적이라고 생각했던 세 가지 체제 세력인 자본주의, 인종주의, 가부장제로부터 자유로운 미래를 꿈꿨던 인물이었다.”

 

이제 고인이 남긴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미 살해 위협을 받고 있던 2015년, 카세레스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군대는 18명의 인권 투사에 대한 암살리스트를 가지고 있고, 내 이름이 그 중 가장 위에 올라가 있다. 나는 살길 원한다. 여전히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한 번도 우리의 터전을 위한 투쟁, 존엄한 삶을 위한 투쟁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우리의 투쟁은 정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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