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4일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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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할 수 없는 끔찍한 재앙의 대문이 열린다.
김광호 (강원 비정규센터 소장)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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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부패는 계급사회의 본질”, 『어용사전』(저자 박남일)에 나오는 말이다. 그리고 노래패 꽃다지의 노래 ‘주문’에는 이런 노랫말이 있다. “저들이 말하는 국민 중엔 너와 나는 간데없고, 저들의 계획 속에 너와 나의 미랜 없지”   


설악산 케이블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태계의 파괴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자연을 지키자는 것만은 아니다. 그 관점은 자본주의체제를 계급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착한 생각일 뿐이다. 물론 그 착한 생각은 현재의 상태에서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 오지 않은 우리의 민주주의와 노동하는 대중의 생존권에 대해서, 그리고 자본주의의 끔찍한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니, 그렇게 해야지만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투쟁의 진실을 볼 수 있다.


2015년 8월 28일. 두 번이나 반려되었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승인됐다. 설악산이 심각하게 훼손되었거나 관련 규정이 개정된 것도 아니다. 과정에서 불법과 탈법이 지적되었지만 주무관청인 원주지방환경청은 환경영향평가 초안의 반려가 아니라 보완을 하라며 사업자인 양양군에게 면죄부를 줬다. 박근혜정권이 직접 나서서 챙기고, 보수야당인 더불어 민주당이 합심해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단순한 표 계산만은 아니다. 위기에 처한 자본가계급을 살려주기 위해 나선 것이다. ‘이미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백을 상기하자. 이 말은 권력은 본래 시장(자본)의 것이라는 의미이다. 자본가계급이 보수정당으로 상징되는 정치권력을 이미 장악한 것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과 관련해서 박근혜 정권과 최문순 도정이 썩었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 본질은 아니다.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이윤이 최고의 가치인 자본주의의 본래 모습이 그렇다. 자본주의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수탈과 착취로 굴러가는 체제이다. 모든 상품의 원료는 자연으로부터 나오고, 그 상품은 인간의 노동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왜 자본가계급은 설악산 케이블카에 눈독을 들이고 있을까? 4대강 사업을 보면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노동자의 피와 땀인 22조가 자본가계급의 주머니로 들었다. 그들은 지금도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4대강이 썩어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기로 결정되면 22조보다 더 많은 이윤이 그들에게 또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웠듯이 대규모 토건사업은 위기에 처한 자본가계급을 구하기 위한 전통적인 정책이다. 그런 자본가계급에게 자연생태계가,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건설과 파괴 모두 자본주의체제에서는 자본가계급의 이윤의 원천일 뿐인데.


마르크스가 국가란 자본가계급의 위원회에 불과하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자본가계급과 권력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말이다. 이 관계에서 합리적 이성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끊이지 않는 부패한 스캔들이 그 증거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도 그렇다. 설악산을 시작으로 전국의 산지 곳곳을 개발하는 총사업비는 4대강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것으로 이 자본주의 사회가 누구를 위해 굴러가는 체제인지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을까? 자본가계급에게 이윤이 한 푼이라도 돌아가지 않는다면 저들이 과연 이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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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가 이렇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는 권력에게 거추장스러운 치장물에 지나지 않다. 우린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아주 합리적인 것처럼 배웠지만,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고 하는 영국에서도 최초의 투표권은 일정한 세금을 낼 수 있던 자본가에게만 주어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런 허접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이성적으로 작동하는 합리적인 시스템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진실을 볼 수 있다. 박근혜씨가 케이블카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 환경을 지켜야 할 환경부가 앞장서서 양양군, 강원도, 국토부 등 관련부처와 TF를 꾸려 사업승인을 사전에 모의한 것은 자본가계급과 권력의 관계, 즉 계급지배라는 국가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유린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싸움이 올바른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이다. 설악산을 비롯한 자연에 대한 사회적 관리, 나아가 이윤을 위해 자연과 인간을 수탈할 수밖에 없는 자본을 통제할 권리를 갖는 것이 민주주의다. 의회나 투표로만 상징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우리 삶의 현장 곳곳, 우리의 생존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결정하고 관리하는 싸움을 하자는 것이다. 물론 수십조에 달하는 세금의 사용처를 결정한 권리도 포함해서, 그 싸움의 방식조차도 우리 스스로가 결정하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말이다.


아직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에 큰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 농민운동에게 한 마디 하자면, 설악산을 시작으로 파괴되는 생태계는 심각한 기후변화를 불러오고, 기후변화는 자연으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얻고 있는 인간사회도 변화를 강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생산물들은 예외 없이 자연으로부터 얻는다. 그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입고 먹고 하는 것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소비자로써 슈퍼마켓과 인터넷으로 쉽게 필요한 물건(상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평상시에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자연은 인간에게 의식주를 제공하지 못한다. 언제까지 이런 파괴행위에 무관심하고 또는 생존권이란 이유로 침묵으로 동참할 것인가?


최근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에서도 탄소배출권거래로 호들갑을 떨고 있는 자본가권력을 보라. 이미 인간사회를 포함하는 생태계의 파괴가 심각하다는 반증이 아닌가? 그 파괴의 결과가 가져오는 고통은 바로 노동하는 노동자, 농민에게 집중된다. 자본가들은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를 돈으로 살 수 있지만, 매일 노동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노동자, 농민들은 어떤가? 당장 냉난방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목숨까지 잃고 있다. 혹서기, 혹한기에 노동해야만 하는 노동자, 농민들이 일하다 쓰러지고 있다. 바로 생태계의 파괴에 침묵하고 동참한 결과에 따른 고통을 사회적 약자들인 노동자, 농민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위협만으로는 아직도 이 투쟁에 함께하는 것이 어려운가? 사고의 전환을 촉구한다.


많은 사람들이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투쟁에서 등장하는 산양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거 봐, 고작 산양을 살리자고? 그런 환경운동을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마음으로 지지를 보내니 열심히 싸워 달라. 나에게는 노동자의 생존권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것은 자연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그 자연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산양은 바로 인간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동물이 살 수 없다면 인간도 살 수 없다. 자연의 파괴는 직접적으로 동물에게 그 피해가 전가되는데 그 다음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투쟁에서 산양으로 상징되는 동물권은 단순하게 애완용 동물의 권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과 인간은 서로 공존할 수밖에 없는 자연에, 사회에 묶여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산양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승인되면서 전국 30여 곳에서 케이블카 사업이 봇물처럼 진행되고 있다. 설악산이 뚫리면 모든 산하가 자본가계급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한 사업장으로 바뀔 것이다. 설악산 대청봉에 호텔을 짓는 것은 케이블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케이블카는 호텔로 들어가는 도로를 닦는 것이다. 자본가계급은 케이블카 이후의 개발을 기획하고 있다.


노동하는 대중의 피와 땀인 세금으로 자본가계급은 엄청난 이윤을 얻겠지만 우리는 앙상한 복지조차 후퇴하는 방식으로, 개발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주거권의 박탈과 기후변화에 따른 노동조건의 악화와 같은 방식으로 생존권 자체를 박탈당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온 몸을 던져서라도 반드시 막겠다는 각오를 하고 이 투쟁을 시작했다. ‘산으로 간 4대강 사업’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전국의 산하를 파헤치는 대문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와 최문순이 아니라 바로 자본가계급이 자행하는 민주주의의 유린, 생존권의 박탈. 그 대문이 열리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이 싸움을 함께 하자. 이 싸움은 자본주의 체제를 뛰어 넘어 새로운 세상은 건설하는 싸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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