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3일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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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왜 분노해야 하는가?(장하성, 헤이북스)
김광수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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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는 올해 청년들을 위한 총선참여 홍보책자에 가깝다. 말과 논리는 장황한데 결론은 젊은이들에게 일단 투표부터 해보자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기승전“투표” 뭐 이런 식이다. 장하성은 혁명은 가당치 않으니 투표라도 하고, 투표했는데 배신하면 또 투표로 심판하고 그래도 안되면 또 투표하고, 이런 정치참여가 21세기 대한민국의 끈기와 인내의 화신인 젊은이들의 좌표라고 제시되고 있다.

 

임금격차가 빈부격차의 원인이라는 대발견


장하성은 빈부격차의 원인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버느냐에 달려 있다는 주장을 한다. 장하성의 구별법은 소득전체를 근로소득과 자산소득으로 구별을 하여, 실제 근로소득이 압도적이므로 버는 것의 차이가 가진 것의 차이보다 빈부격차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참 어마어마한 발견이다. 재벌들도 소득을 월급으로 가져가는 게 일반적인 나라에서 있는 놈이 더 버는 게 당연지사인데 그걸 발견했다고 책까지 썼다.


장하성 교수가 지적하는 그리고 그 분노의 대상은 일단 재벌이다. 강성노조라고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재벌이 문제인 것은 임금불평등의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재벌을 때려잡자고 하는 게 아니고 앞서 밝혔듯이 청년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청년들이 정치 참여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이는 오랫동안 소위 사민주의자들이 해왔던 주장이다. 즉 정치가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거다. 자본주의체제가 그대로 유지되더라도 정치만 잘하면 분배도 복지도 사회정의도 만족할 수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이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 정당들이 “제 3의길”이니, 신중도니 하며 헛짓 하는 사이 2008년 대규모 공황이 발생하면서 정치가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경제위기를 부추기는 정치위기라는 말로 바뀌면서 날아갔다. 유럽이 그 정도인데 초록이 동색인 보수정당이 주도하는 나라에서 도대체 어떤 정치참여를 해야 하는가? 청년들에게 유리한 공약을 제시하는 정당들에 투표해서 정당들이 청년을 위한 정책경쟁을 일으켜서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꿈은 접는 게 좋다. 따지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이니까.

 

21세기, 당파성을 다시 되새긴다


장하성은 한국사회에 불평등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고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에 대해 폭로도 곧잘 하면서도, 한가지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전 세계 젊은이들의 각성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이 사회, 혹은 사회운동, 그리고 젊은이들의 의식이다. 2008년 이후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문제는 자본주의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점거운동이 벌어지고 칠레에서는 학생들이 대통령궁 주변을 뛰어다니며 대학등록금을 없애고, 스페인에서는 수십만이 행진을 하면서 빼앗긴 삶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던 운동 대한 언급이 없다. 그 이유는 그가 뱉은 말, “혁명은 가당치 않다”는 고백에 놓여 있다고 보여진다. 젊은이들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결국 가장 절실한 각성,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회의하고 대안을 상상하는 것은 봉쇄하고 있다.       


현상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본질을 밝히는 것은 용기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왜 최고 지성이란 사람들이 진실 앞에서 입을 다물까? 이것은 말 그대로 당파성의 문제다. 당파성이란 보통 어떤 행동이나 말이 어느 편을 위한 것인지 알아내는 분별력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매우 민감한 문제에 봉착해서는 진정한 용기이자 진실에 대한 믿음을 대신한다. 자본주의를 대신 할 새로운 사회의 주인이 될 노동자계급의 당파성만이 진리를 향한 문을 열어놓았다.

 

어려워 보이지만 진실한 길 자본주의 체제 분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이익규모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고, 종업원의 임금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독점으로 나가는 자본주의에서 당연한 일이다. 이를 완화시켜주고 분배를 강화할 국가나 노동조합은 자본가들에 의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약화되어왔다. 감세니, 작은 정부니 하는 주장이 소득분배자로서 국가의 힘을 약화시켜왔다면 귀족노조니 필수공익사업장이니 하는 말들이 임금결정에서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을 약화시켜온 것이다. 분배주체가 그로기가 된 상태인데 도대체 누가 분배를 개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우리로서는 주체도 없고 방법도 마땅치 않다. 그건 망하기 직전의 모든 체제들이 다 그렇듯이 자본주의 체제가 모든 해결책을 봉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체제를 바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즉 반체제 운동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 이게 떨떠름해도 진리인 걸 어찌한단 말인가? 그러니 진리를 이야기하고 진리에 입각한 실천을 해야 한다.


임금격차든 소득격차든 빈부격차든 자본주의의 문제다. 청년실업이든 노년빈곤이든 가계부채든 모두 자본주의의 문제다. 저출산율, 청소년 자살율, 이혼율 모두 자본주의의 문제다. 그러니 자본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핵심인 임금노동을 철폐하는 것, 소수에 집중된 사회적 부를 사회적 소유로 바꾸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그러한 운동에 청년이 참여하는 것이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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