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3일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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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질서 은폐하는 ‘인물정치’의 적폐
박남일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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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만 되면 야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야권 연대’의 목소리도 이번 20대 총선에서는 힘을 얻지 못할 것 같다. 선거를 석 달여 앞두고 그 슬로건에 불을 지펴야 할 시기에 오히려 야권이 문재인, 안철수 두 세력으로 양분되고 만 까닭이다. 그에 따라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새누리당을 이길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처럼 패배가 자명함에도 야권 인사들의 얼굴에 별로 긴장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막판에 선거를 뒤집을 비장의 무기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사실 문재인과 안철수로 대표되는 야권은 이미 패배를 예견해왔다. 애초에 새누리당과 정면승부를 벌일 의도 자체가 없었다. 대신 이들은 다가오는 총선을 야권 내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기회로 삼고서 각기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벌여 왔다. 그 결과 기존 야당은 토막 나고, 국민의당이니 국민회의니 하는 낯선 신당 이름들이 난무하는 분열상을 연출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야권은 서로에게는 전투적이지만 여당과의 대결에는 온건한 태도로 일관하며, 최소한의 야성마저 사라진 ‘작은 여당’으로 변모한지 오래이다.
이쯤 되면 야권이 연대해도 소용없다. 뒤늦게 하나로 힘을 모은다 해도 ‘뭉치면 같이 죽고 흩어지면 따로 죽을’ 운명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야권의 맹주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야당은 죽어도 야권 인사들은 죽지 않을 터이므로.
 
‘인재영입’ 퍼포먼스에 집착하는 허약한 야당들 


지금 사분오열된 야당은 당장 여의도에서 살아남는 게 목적이다. 따라서 문재인이나 국민의당 안철수 등 야권 맹주들은 스스로의 허약함을 ‘인재 영입’으로 막으려 애쓰는 모양새다. 물론 인재영입 퍼포먼스는 부르주아 정당들의 흔해 빠진 선거 전략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지금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벌이는 인재영입 경쟁은 어느 때보다 유별나 보인다. 요컨대 더민주당은 대중적 인기가 높은 인사들을 영입하여 이미지 회복에 상당한 효과를 봤다. 반면 안철수 측은 야심차게 영입한 인사가 ‘이승만 국부’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켜 지지율을 크게 깎아먹기도 했다. 이처럼 영입 인사의 면면에 따라 지지율이 오르내리고, 그 결과에 따라 당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흔들리는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다.


야권의 허약함은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야심차게 영입한 간판급 얼굴들의 실체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이 더민주당 ‘혁신’을 내세우며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한 김종인은 신군부의 쿠데타 기구였던 국보위에서 활동하고 민정당 국회의원과 노태우 정권의 경제수석을 지내는 등 군부독재에 부역한 인물이다. 지난 대선에서는 새누리당 대선 공동선대위원장을 역임한, 박근혜 당선의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안철수가 국민의당 ‘창당’의 주역으로 영입한 윤여준 또한 전두환, 노태우 정권 치하에서 각각 대통령 공보비서관과 대통령 정무비서관을 지냈으며, 그 후 한나라당 국회의원, 중앙선대위 위원, 여의도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양대 야권 세력이 이처럼 수구 권력과 호흡을 맞춰 온 칠순 중후반의 노인들을 선거 캠프의 원톱으로 영입한 이유는 자명하다. 김종인과 윤여준이 각각 새누리당과 그 전신 한나라당의 창업을 주도하며 선거 캠프를 이끈 정략가들이기 때문이다. 그간 여당과 차별되는 이슈나 정책을 생산하지도 못하고, 정권교체의 뚜렷한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박근혜 정권과의 정면승부 대신 야권 내 헤게모니 싸움에 전력해야 하는 야권으로서는 선거공학과 정략에 능한 기술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아가 문재인과 안철수로 대표되는 지금의 야권 세력이 새누리당을 롤 모델로 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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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착취 은폐하는 ‘인물정치’의 적폐


물론 야권에서 인재영입 퍼포먼스를 벌이는 대상이 모두 수구권력에 봉사해온 인사들은 아니다. 그중에는 아직 정치의 때가 묻지 않은 인사들도 제법 있다. 흔한 말로 ‘좋은 인재’를 영입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점이 인재영입 퍼포먼스에 긍정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라는 끈끈한 시스템이 고착된 시대에는 인물이 시스템을 바꾸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인물을 바꾼다. 제법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인물이 현실정치에 뛰어드는 순간 어리눅은 바보가 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아 왔다. 자본가가 자본의 통제를 받는 것처럼, 현실의 정치가는 현실 정치의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제도권 정당은 인재들의 무덤인 셈이다.


그럼에도 정치뉴스는 끊임없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정당이 구축한 정치적 지향점이나 정책을 제쳐둔 채 ‘얼굴’을 보고 투표하는 유권자 대중의 행태가 지속되는 한 인물정치는 심화될 것이다. 이념과 정책을 내세울 형편이 못 되는 지배 정치세력이 지속적으로 인물 대결을 부추기는 선거 전략을 구사해온 까닭이다. 다가오는 20대 총선 또한 여야를 막론하고 이른바 ‘인물 대결’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일찍부터 대중적 인기인을 선거에 호출해온 수구 여당은 말할 것 없고, 야권 정당들도 이번 선거만큼은 인물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인물정치가 왜 문제인가. 우선 그것이 민주주의와 모순된다는 것이다. 일찍이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아테네 민주정치를 우민에 의한 중우정치라 여겼다. 그리하여 오늘날 인물정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철인정치를 주창했다. 하지만 노예제 유지를 전제로 한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공염불이었다. 이데아를 실현할 철인은 지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뛰어난 철인이 등장해도 당시 인구의 다수였던 노예들을 해방시키지는 못했다. 그 허망한 철인정치 사상은 21세기에도 인물정치로 계승되고 있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특정인물에 열광하는 모순된 풍경을 빚고 있다. 


한편 대중적 인기와 선호도에 밑절미를 둔 정치는 동시에 다른 특정 인물에 대한 혐오를 동반한다. 한쪽에서 열렬히 선호하는 인물을 다른 쪽에서는 극도로 혐오하는 일이 흔하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혐오로 이어져, 사회적 의제에 대한 대중의 진지한 고찰을 가로막는다. 그리하여 우매한 대중을 양산하는데 기여한다. 플라톤은 알지 못했다. 민주정치가 중우정치화 하는 이유가 철인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계급착취의 은폐 때문임을. 지금의 민주주의가 허울뿐인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유능한 인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실정치가 자본주의적 계급착취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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