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3일 96
해방 > 96호 > 이슈

당신들이 말하지 않는 단 한 가지, 자본주의
김광수  ㅣ  


말하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


작년에 “헬조선”과 “죽창앞에 평등하다”는 말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청년문제와 관련해서 말만큼은 끝자락까지 왔다고 반응했다. 지옥이라고 하는데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으며 죽창을 들자는데 누가 말리냐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쯤 되면 체제문제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도 지옥문 앞에 죽창을 든 청년의 입에서조차 자본주의는 언급되지 않았다. 올해도 연초부터 논객이라고 자처하는 자들, 혹은 언론사의 기획기사에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가 경제위기와 총선을 주제로 참으로 많이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역시 나와야 할 체제에 대한 회의와 분노는 나오질 않는다. 


요즘 제일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수저타령부터 시작해 불평등이니, 소득격차니 임금격차니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격차의 원인과 대책을 논하면서 대기업 강성노조가 나라 망쳤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부터 청년이 정치에 나서야 한다는 광야의 선지자 같은 말씀도 난무한다. 그러나 죽어도 말하지 않는 것은 이 모든 게 자본주의 탓이라는 말이다. 
 


분노하자는 책을 쓴 장하성 교수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이 모든 것이 개인 탓이 아니라 세상 탓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그게 다 자본주의 때문이라는 말은 아낀다. 장하성은 우리에게 산업화나 민주화같은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시대정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 청년들이 자신의 구체적 문제, 즉 비정규직이나 임금격차 해결의 주체로 나서자고 조언한다.

 
그러나 산업화가 언제 시대정신이었는지 알 길이 없고, 민주화가 시대정신이라고 말하지만 당시의 대학생으로 그 시대정신을 얼마나 누렸는지 생각해보면, 별 기억이 없다. 하지만 비정규직이고 임금격차고 전부 다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시대정신이 열릴 수 있다는 당연한 생각은 든다. 시대정신이 없다고? 당신들이 말하지 않을 뿐이다.  

 

헛 다리만 집고 있는 시대정신


진보연하는 사람들이 시대정신이 없다고 강변을 하는 사이,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시대정신을 파악한다고 분주했다. 새누리당은 작년 12월에 ‘2016년 총선 시대정신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사회격차 해소가 시대정신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넘는다. 사회 격차 해소 방안으로는 ‘일자리 창출’이 63%, ‘조세 및 복지 확대를 통한 소득 재분배’가 32.6%였다. 새누리당다운 여론조사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불철주야 노동개혁에 매달리고 있으니, 여론에 충실하고 언행이 일치하는 정치세력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의 희망은 절망의 근거가 될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경기침체에 일자리창출은 커녕 구조조정이 코앞에 닥쳐 있으니 사회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수출은 10%가 넘게 줄어들었고, 경기선행지수도 바닥이다. 성장우선주의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성장이 멈추었는데 분배는 언감생심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을 내놓고 진보의 성장전략이라 자화자찬하던 야당 또한 똑 같은 늪에 빠졌다. 소득주도든 임금주도든 경기가 뒷받침이 되어야 가능한 것인데, 부르주아 야당이 수출이 줄고 내수가 엉망인데 임금을 높이라, 사람을 늘리라고 이야기할리 만무하다. 소득이 늘어 성장이 된다고 하지만, 성장이 예상되어야 소득을 늘릴 방책을 필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떤 방책도 자본주의 경제의 견실한 성장을 전세로 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동일하다. 보수정당들은 2008년 위기 이후에 성장 없는 경제, 이자 없는 경제, 돈 풀어 버티는 경제를 10여년 가까이 봤으면서도 철이 들지 않았다. 시대정신이 격차해소라 하지만 격차가 있어야 돌아가는 자본주의 경제, 그것도 잘 돌지도 모르는 자본주의경제에서 격차해소라는 시대정신은 있으나 실천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자본독재 반대가 아니라 자본주의 철폐


보수정당이 시대정신을 운운하는 사이 소위 진보란 사람들은 말조차 불분명하고 애매하게 하기 일쑤다. 노동개혁을 한답시고 자본가들의 천국을 만든 정권에게 민주노총이 지르는 야유가 겨우 ‘자본독재’다. 이처럼 뜻도 불분명한 욕을 만들어 분노의 대상을 애매하게 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멀쩡한 노동자라면 자본독재라는 애매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게 자본주의 때문이고 우리는 더 이상 이를 용납할 수 없으니, 자본가들의 독재를 타도하고 노동자 국가를 세우겠다고 말하는 것이 마땅하다. 초점이 맞아야 사진이 선명한 것처럼 생각과 주장이 명료해야 세상 사람들이 우리 행동을 이해하고 같이 할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은 선거연합정당이라는 미봉책을 내놓았다가 거두어들이는 촌극을 벌였다. 한 때 보수정당 판을 엎겠다고 자처하던 진보정당 세력이었던 정의당은 대놓고 야권연대의 중심이 되겠다고 선언을 하고 있고 이제는 그걸 넘어 더불어민주당과 통합을 밀실에서 도모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들은 자본주의에 맞서는 세력이 아니라 자본의 품안으로 뛰어든 세력임이 이로서 분명해졌다.  


우리사회가 격차를 언급하고 불평등을 말할 때 마다 자본주의는 움찔거리다 못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막상 자본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언급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이 땅의 권력자, 재벌, 언론, 교수, 진보정당이라 하는 자, 모두가 사기를 쳐도 정직한 노동으로 사는 사람들은 진실해야 한다. 돌리지 않고 대 놓고 진실을 말할 줄 아는 노동자계급의 기개로 총선정국이라는 혼돈의 시기에 세상에 외치자. 우리 고통의 주범은 자본주의이고, 노동자는 그 자본주의의 숨통을 끊으려 한다고, 이를 막으려 하는 모든 것과 투쟁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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