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8일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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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이민자 : 제임스 그레이 감독, 마리옹 꼬띠아르 주연
이근행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  ㅣ  2015년 12월 18일



최근 이민 문제가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민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인류 역사는 끊임없는 인구이동의 역사이기도 했거니와 자본주의에 들어서는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인구이동이 일어났다.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이민자의 나라임은 두말나위없다. 영화「이민자」는 바로 이 이민의 역사를 다룬다.

감독, 제임스 그레이는 조부모가 폴란드 이민자 출신이다. 그는 폴란드 이민자들의 미국 이민의 첫 번째 관문이었던 ‘앨리스’ 섬을 조부모와 함께 찾았던 게 동기가 되어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는 이민자들과 선이주민들 간의 관계를 과장도 여과도 없이 잔잔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어둡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과 수많은 이민자들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여인까지도 비열하게 이용하는 브루노(호아킨 피닉스 분)의 뒷모습을 한 컷에 잡고 영화는 시작된다.

1919년 2월부터 1921년 3월까지 전개된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에서 탈출한 에바(마리옹 꼬띠아르 분)와 동생 마그다(앤젤라 사라피안 분)가 미국으로 이주하기 위하여 배를 탔다. 1921년 1월, 앨리스 섬의 입국 심사장에서 동생은 폐질환 판정을 받고 6개월 동안 치료 처분을 받는다. 에바는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항해하는 선내에서 ‘저속한 행위’를 하였고 거주지가 불안정하고 미혼에 돈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구호대상자로 분류되어 입국이 보류된다. 이러한 판정과 입국보류는 먼저 이주해서 ‘정착’한 브루노 와이즈(호아킨 피닉스 분)가 에바를 취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이민국 직원과 만들어 낸 상황이었음이 후에 드러난다.

재심사를 기다리고 있던 에바는 ‘이민자 지원 협회’의 브루노를 따라 뉴욕으로 가는 마지막 페리에 몸을 싣는다. 뉴욕에서 에바는 부르노의 과도한 집착애욕에 항상 불편했으며, 그의 통제에 따라 자유의 여신상을 본 뜬 소품(왕관)을 쓰고 낯설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무대에 오르거나 강제된 매춘을 하게 된다. 앨리스 섬에 갇혀 있는 동생, 마그다를 데리고 오기 위해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에바는 어느 날 “브루노, 당신도 싫고 나도 싫어요.”라 말하며 브루노의 집에서 벗어나 어렵게 브루클린의 이모집을 찾아 지쳐서 잠이 든다. 고향, 폴란드의 실레지아, 카토비치에서 있었던 동생과의 즐거웠던 일상의 한 날을 꿈꾸게 되는데 이 부분만이 유일하게 영화에서 하얗게 밝은 장면이다. 그 꿈이 끝날 즈음 러시아 기병(코사크 기병은 내전 후 1920년에 해산됨)으로 보이는 군인이 등장하면서 스크린의 빛은 다시 어둡게 이어진다. 그 꿈이 계속 이어졌다면 그 기병이 그녀의 부모님의 목을 자르는 장면이 이어졌을 것이다. 에바가 브루노에게 그러한 사연을 말하였듯이 말이다.

가끔 ‘사랑도 가지고 노는 마술사’, 올란도(제레미 레너 분)와 에바가 만나는 장면이나 나와야 내내 이어지는 눅진함이 거둬질 정도이다. 그렇게 영화는 내내 어둡다.

이주‧이민이 생기는 이유는 생산력의 발달로 인해 생산관계가 변화하거나, 주거하고 있는 사회가 불안하거나 그 사회의 노동력을 수용할 수 없을 만큼 노동수단과 노동대상이 결여되어 노동인구가 과잉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배계급이 주거지역의 인민들을 먹고 살 수 없게 만들거나 먹고 살 방법이 뾰족하게 없기 때문에 이민을 하게 된다.

돈을 싸 짊어지고 물 좋고 산 좋고 하늘 좋은 낙원을 찾는 부유계급이 아닌 경우라면, 대개의 이민의 이유는 노동력의 유지나 생활과정의 재생산에 있다. 거주지를 떠난다는 것은 응당 낯설고 고단한 여정이다.

마그다와 에바는 브루노가 준 캘리포니아로 가는 티켓을 손에 쥐고 엘리스 섬에서 육지로 나아간다. 그리고 브루노는 난민 수용소 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이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제 선이민자가 된 에바는 다른 기회를 찾으러 떠나고, 브루노는 자신의 존재를 딱히 규정할 수 없는 ‘익숙한’ 갈등의 진원지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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