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8일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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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2015년 지방선거
반국민전선에 갇힌 좌파정치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황정규  ㅣ  2015년 12월 18일



테러로 경직된 분위기에서 치러진 프랑스 지방선거

11월 13일과 14일 밤사이 프랑스 파리에서는 일반인에 대해 총격과 자폭 공격이 발생하였다. 이번 테러는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13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11월 13-14일 테러가 발생한 후 테러 용의자를 쫓는 과정에서 시리아 난민의 여권이 발견되어 난민들의 소행으로 추정하는 언론 소동이 잠시 있었지만, 결국 벨기에와 프랑스 국적자들로 밝혀졌다. 지난 1월의 테러사건 역시 ‘방리유’라 불리는 프랑스 파리 교외지역에 사는 젊은이들의 범행이었다. 이것은 일련의 테러사건이 프랑스 사회 내부의 심각한 모순에 의해 발생하였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테러사건 이후 프랑스 정부의 대응은 이슬람 극단주의, 특히 IS에 대한 비난에 집중되었다. 올랭드가 대통령으로 있는 사회당 정부 뿐 아니라 사르코지가 이끄는 공화당(인민운동연합은 최근 당명을 바꾸었다)까지 모두 합심하여 “테러주의와 맞선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특히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영장없는 체포, 의심스러운 가택수색, 국경폐쇄, 학교 및 공공기관 폐쇄 등 시민의 권리를 제약하는 조치들을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후변화 파리총회를 앞두고 테러발생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프랑스 정부가 24명의 환경운동가를 가택연금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직된 정치 분위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지난 12월 6일에 프랑스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약진, 주류 양당의 우경화

이번 지방선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득표 1위였다. 국민전선은 29.88%, 공화당과 우파연합은 26.48% 그리고 사회당은 22.89%를 득표하였다.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에 대해, 테러 이후 반이슬람 정서의 강화, 이민 문제, 사회당과 공화당 모두에 대한 실망감 등이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으로, 국민전선이 이른바 ‘극우’이미지를 벗기 위해 그동안 상당히 노력해왔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전선은 당을 창당하여 오랜 세월 지도해온 장 마리 르펜이 물러나고 그의 막내딸 마린느 르펜이 당권을 물려받은 이후 당을 악마시하는 이미지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가령 올해 들어 반유태주의 주장을 지속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부역한 페탱주의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아버지 장 마리 르 펜을 당에서 제명하였다. 그 결과 많은 프랑스인에게 국민전선은 이제 여느 당과 다를 바 없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획득해가고 있다.

그렇다고 국민전선이 인종주의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다만 방식이 변하였을 뿐이다. 국민전선의 인종주의는 이제 공화주의라는 탈을 쓰고, 세속주의의 입장에서 이슬람을 비난하는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국민전선은 종교와 국가의 분리라는 공화국의 세속주의를 옹호하는 책임있는 정치세력으로 이미지화하고자 하였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역설적으로 공화당과 사회당의 행태였다. 공화당과 사회당 모두 계속 우경화해왔고 그들의 주장과 국민전선의 주장은 수렴해갔다.

원래 종교와 국가의 분리라는 세속주의는 천년 이상 지속된 카톨릭의 봉건적 지배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투쟁 속에서 등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해방적 의미는 사라지고, 프랑스 사회에서 타자로 존재하는 무슬림을 차별하기 위한 근거로 변질되었다. 가령 2004년 프랑스 정부는 무슬림 여성이 히잡을 공립학교에서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이를 어긴 여학생을 학교에서 퇴학시키는 일이 발생하였다.

더 나아가 최근 올랭드 대통령은 “인종 상 프랑스인”이라는 발언을 하고, 한 사회당 정치인은 이민문제와 관련하여 사회당, 공화당, 국민전선 사이에는 “합의”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더욱이 이번 테러 이후 드러낸 사회당의 모습은 국민전선의 주장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주류 양당의 행태가 국민전선의 약진을 위한 비옥한 토대가 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반국민전선에 갇힌 정치지형

과반 득표자가 없는 경우 10% 이상 득표자들 간의 결선투표가 진행되는 프랑스 선거제도의 특징 상, 12월 13일 2차 결선투표가 진행되었다.

프랑스의 결선투표제는 프랑스의 지배체제가 유지되는 고유한 매커니즘을 잘 드러낸다. 절대다수제 선거원칙에 따른 결선투표의 존재는 기존 주류 양당을 제외한 다른 어떤 정치세력의 범접도 불허하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선거는 결국 1차 선거에서의 1, 2위 사이의 양자 대결 구도로 전개되기 때문에, 유권자와 3위 이하의 정치세력은 사표를 방지하기 위해 1, 2위 중 한 쪽을 지지하도록 강제되지 않을 수 없다. 선거제도 자체가 가령 자연스레 사회당보다 왼쪽에 있는 정치세력을 사회당의 위성정당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극우 국민전선이 약진하면서 이러한 구도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1차 선거에서 국민전선이 압도적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게 되자, 결선투표는 주류 양당 대결 구도에서 국민전선 대 반국민전선의 구도로 변화하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1차 선거에서 국민전선이 석권하자 몇몇 지역구에서 3위를 한 사회당 후보가 국민전선의 당선을 막기 위해 사퇴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이런 지경이다 보니 좌파정당은 이 구도 앞에 명함조차 내밀 수 없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번 선거에서도 1차 선거의 결과가 나오자 좌파전선은 반국민전선 후보 지지를 선언하였다. 결국 1차 선거에서 1위 한 국민전선이 13일 결선투표에서는 사회당-공화당 연합 앞에 완패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구도 변화는 프랑스 정치체제의 본질을 오히려 더욱 폭로하는 의미를 갖는다. 즉 반국민전선이란 구도 하에 사회당과 공화당의 굳건한 연합이 이루어지면서, 이 둘 사이의 차이가 본질적이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었다. 국민전선과 수렴하는 이 두 당의 정치언어를 다시 상기해보면, 이들의 반국민전선 구도가 얼마나 위선적인지 알 수 있다.

실망과 무기력에 빠진 노동자 정치의 전망은?

한 사회당 계열의 정치학자는 좌파세력이 계급문제에 등한시하고 소수자나 정체성의 정치에 몰두한 것이 결과적으로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방치한 꼴이 되었고, 이것이 국민전선의 부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하였다. 이러한 분석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여러 해 동안 지속되는 경제 침체로 인해 불만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곧장 국민전선의 지지로 돌아선 것은 아니었다. 이번 지방선거의 낮은 투표율(49.9%)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자들 중 일부가 기존 정당에 대한 불만에서 국민전선에 투표했을 수 있지만,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선거일에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반국민전선 구도로도 무마될 수 없는 현재 프랑스 정치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깊은 실망감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수년간 좌파정당들 역시 노동자들에게 기대감과 희망을 주지 못하였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좌파정당인 좌파당과 반자본주의신당은 2010년 연금투쟁 이후 대규모 대중투쟁이 소진하였고, 2012년 대선을 거치면서 당원 수의 극감과 영향력 감소를 겪었다. 이들을 침체로 내몬 것은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기존 지배질서를 넘어서는 정치를 만들어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좌파정당은 모두 결선투표제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였다. 특히 좌파당은 이미 낡고 우파의 전유물이 된 공화주의를 계속 외치고, 프랑스혁명에서 연상한 시민혁명과 스페인의 포데모스에서 차용한 추상적인 “민중”을 이야기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계급투쟁, 계급정치에 대해서는 멀어지고 있다. 이렇다보니 운동의 열정이 소진되어 지쳐 나가떨어지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반복되고 있는 반면, 좌파세력을 지지해줄 노동자계급은 방치된 상태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좌파정치의 전망은 노동자들의 분노와 불만을 정치적으로 표현하고 조직하는 것에서 나올 것이다. 프랑스가 겪고 있는 정치상황은 자본주의라는 자장 밖을 벗어나 있지 않다. 현재 프랑스 노동자계급의 분노와 불만은 한편에서는 이슬람근본주의에 빠지도록, 다른 한편에는 인종주의적 증오에 빠져 서로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으로 표현되도록 조장되고 있다. 이러한 분열을 깨고 노동자의 단결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함께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 프랑스 정치에서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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