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4일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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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갈색의 세계사, 새로 쓴 제3세계 인민의 역사
비자이 프라샤드, 뿌리와 이파리
황정규  ㅣ  2015년 11월 14일

<갈색의 세계사>는 ‘제3세계’라고 불린 국제사회의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인도 태생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인 비자이 프라샤드이다. 저자는 제3세계 비동맹운동의 중심에 섰던 인도 출신인만큼 제3세계의 정치적 기획에 대해 매우 애정을 가지고 접근한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단순히 제3세계에 대한 애정어린 시각이 아니다. 이 애정은 제3세계의 정치적 기획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비판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는 제3세계 기획이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 이후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던 제3세계 정치지도자와 인민의 열망에서 나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980년대 제3세계 기획이 완전히 암살되게 된 이유로 제3세계 국가의 주도세력이 지닌 “계급적 성격이 걸림돌”이 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바로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의 흐름을 계급적 관점에서 분석한다는 것이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

제3세계 국가들은 대부분 민족해방투쟁을 통해 오랜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여 독립국가를 이루었던 나라들이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미국과 서유럽의 제국주의적 제1세계뿐만 아니라, 이른바 사회주의를 표방한 소련과도 거리를 둔 ‘비동맹’을 추구한 나라들이었다. 프랑스인 알베르 소비는 1952년 <롭세르바퇴르>라는 잡지에 제3세계라는 말을 처음 썼다. 이 책에 따르면, ‘제3세계’라는 말은 “프랑스혁명에 바치는 오마주”였다. 1789년 시에예스는 프랑스 혁심의 중심세력인 “제3신분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그것은 모든 것이다’라고 당당히 말했다. 근대 부르주아 세계를 주조한 프랑스혁명의 제 3신분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제3세계는 새로운 세계를 주조할 터였다.

그러나 이것은 점차 모순과 분열 속에서 실패로 끝나게 된다. 이 책을 통해 그 이유가 민족해방운동 자체의 태생적 한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한 지도자들과 그들의 지지세력은 주로 그 사회의 민족적 부르주아나 소부르주아 출신이었다. 이들은 제국주의 지배에 대한 불만과 분노 속에서 민족해방운동에 뛰어든다. 저자는 제3세계 지도적 인물들의 출신배경을 친절히 설명하여 개인을 통해 드러나는 이러한 계급 구성을 밝히고 있다. 그는 “하층 귀족 출신 또는 신흥중산층이면서 유럽 식민지 교육의 혜택을 받은 계층이 네루, 수카르노, 미얀마의 우 누 같은 지도자들과 수많은 필리핀 일루스트라도를 낳았다”고 적고 있다. 이들은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고, 제국주의 지배 속에서 인민의 고통, 자본주의의 폐해를 목도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와는 다른 인민 전체에게 이득이 되는 사회, 경제 발전 경로를 찾고자 하였다. 또한 민족해방운동은 제국주의 억압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사회 전체의 억압 역시 극복하려는 진보적 모습을 띠었다.

그러나 민족해방운동이 더 큰 해방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새로운 국가가 형성되자 이윽고 좌초하게 된 이유는 주도세력의 바로 계급적 성격 때문이었다. 파라샤드는 이렇게 말한다. “실질적 통치행위와 만난 제3세계프로젝트는 금방 빛바래버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제3세계가 제국주의 세력과 그들이 파견한 총독들이 위로부터 다스려온 정치, 사회 세계에 깊이 박힌 지주와 금융지배층의 뿌리를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회혁명을 이루지 못한 제3세계 지도자들은 정치권력을 지키기 위해 지주와 상인계급에 기대기 시작했다.”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한 세력은 제국주의라는 억압에 맞서 싸울 때는 진보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자신들의 계급적 성격 때문에 억압에 맞서는 근본적 투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들은 국가, 민족, 발전을 강조했지만, 노동자와 인민을 생산과 사회운영의 주체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새로 세워진 국가(그리고 이 국가의 권력을 잡은 민족해방 주류세력)의 신민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인민을 위해서란 이름으로 인민을 억압하였다. 제3세계 여러 국가들이 사회주의를 내걸었지만 그 내용은 대개 인간해방, 노동자의 자기해방이라는 사회주의의 본질에 대한 왜곡이었다. 오히려 인도네시아, 이라크, 수단 등 제3세계를 주도한 주요 국가들은 철저한 반공주의를 추구하여 공산당과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일당독재 체제, 권위적, 강압적 체제가 빈번하게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들이 추진한 경제적 목표 역시 사회구성원의 해방, 특히 노동자, 농민의 해방이 아닌 경제 자체의 발전, 성장에 집중해 있었다. 비록 언사는 반자본주의, 사회주의적이었고, 심지어 ‘아랍사회주의’, ‘아프리카사회주의’ 등등 사회주의라는 이름까지 자처했지만, 그 내용은 국가주도의 민족경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전략은 국내 자본가계급을 육성하고 혜택을 주는 자본주의 발전으로 나타났고, 사회의 계급적 모순은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저자는 프랑스와의 치열한 무장투쟁으로 독립을 일궈낸 알제리가 독립 후 변질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구체적인 계급분석 없이 집권한 민족해방정당은 새롭게 자신감을 얻는 상업 및 산업계급의 압력에 무방비 상태였다. 국가산업과 국가경제를 건설한다는 민족해방 의제 덕분에 이 계급의 지위는 더없이 공고해졌다”고 분석한다.

프라샤드는 이들 국가들의 국유화 조치 역시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이 당시 국유화는 일견 진보적으로 보이지만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생산의 주도권을 노동자가 쥐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석유 국유화를 예를 들어, “유전 국유화는 지역 권력을 카르텔에서, 국가관리를 통제하거나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자국 부르주아지에게로 옮겨놓았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제3세계의 주도세력과 이들의 지원 속에서 성장한 자본가계급을 단순히 매판적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이들이 자체의 계급이해 관계 속에서 제국주의와 적극 결탁하였던 것이다. 즉 “전 세계 곳곳의 바리엔토스, 모부투, 수하르토들과 그들이 지켜낸 계급 역시 하청업자일뿐이라도 제국주의라는 앙상블의 일부”였던 것이다. 이들은 이후 IMF 주도 세계화 과정에서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위해 신자유주의를 적극 수용하는 세력이 된다. 그리고 이로서 제국주의에 맞서 ‘비동맹’을 추구하던 이들 국가의 기획을 결국 실패하고 만다.

프라샤드는 제3세계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고, 이 제3세계를 주도한 세력이 앞서 말했듯이 민족부르주아나 소부르주아였기 때문에 이 책은 민족해방운동 과정에서 진보적 역할을 수행하였던 반제 민족적 부르주아지의 흥망성쇠사(史)로 읽힌다.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인민사라는 구상”을 이야기하지만 실제 제3세계 국가들에서 이루어진 노동자, 농민의 투쟁 역사, 그리고 이 시기 이 투쟁을 주도한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는 부차적으로 다룬다. 사실 러시아 혁명 이후 창립된 코민테른은 민족해방운동에 큰 비중을 두었고, 2차대회에서는 ‘민족, 식민지 문제에 관한 테제’를 결정하였다. 이 당시의 논의에는 이미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이 겪게 될 운명을 정확하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부분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한 점은 이 책의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갈색의 세계사>는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남한은 해방 이후 친미반공국가가 수립되어 제3세계 비동맹운동에서 배제되어 왔지만,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남한이 겪은 역사적 경험은 제3세계 여러 국가들의 경험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의 역사가 단지 한반도 이남의 협소한 땅덩어리 안으로 국한되는 역사가 아니라는 점,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 제1세계에 귀속되는 역사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요컨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투쟁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갈색의 세계사>는 우리의 역사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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