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4일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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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노동자계급을 위한 역사는 없다
박남일  ㅣ  2015년 11월 14일


역사교과서 파동의 끝은 치졸했다. 결국 교육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했다. 이에 대한 반발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대통령의 똥고집으로 성사된 일을 되돌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사실 역사교과서 파동은 이번 박근혜 정권에서 뜬금없이 터져 나온 게 아니었다. 지난 2004년에 한나라당의 어느 의원이 고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하여 “친북적이고 좌파적으로 기술되었다”고 주장하면서부터 역사교과서에 대한 극우파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 뒤로도 역사교과서에 대한 시비는 이어졌고, 2008년에 뉴라이트 쪽에서는 식민지근대화론에 바탕을 둔 한국근현대사 대안교과서를 펴내기에 이른다. 이어 2013년에는 우파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검정교과서 메뉴 가운데 하나로 등장했다. 하지만 그것은 친일, 독재를 미화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았고, 채택률이 0에 가까울 정도로 일선 학교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극우 지배세력은 거기에 한이 맺혔던 것일까.

2015년 가을. 임기반환점을 돌아 레임덕을 눈앞에 둔 박근혜 정권의 중심부에서 다시 역사교과서 문제가 불거졌다. 지배세력의 의지는 대단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꼭 이겨야만 하는 역사전쟁이 시작됐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쪽에서도 전투 의지를 불태웠다. 그간 중대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미온적이던 새정치민주연합이나 강단의 교사와 학자들, 그리고 어린 학생들도 한 목소리로 국정화 반대를 외쳤다.

자본가국가의 교과서에 노동자를 위한 역사는 없다

뜨거운 반대 열기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확정 고시되었다. 기세가 다소 누그러지긴 했지만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교과서 국정화 세력은 좌편향 역사가 문제라 하고, 이들에게 반대하는 세력은 ‘국정교과서’는 독재적 발상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역사를 중요한 것으로 여기며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역사란 무엇인가? 이 거창한 질문에 대해서는 유명한 답변들이 많다.

독일의 역사가 랑케는 이른바 ‘팩트’를 중시하며 편견이나 선입견이 제거된 객관적 역사 서술을 강조했다. 그로써 랑케는 실증주의 역사가들로부터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러나 실증주의 역사관은 기록에만 의미를 부여한다. 이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역사이며, 사료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역사가 아니다. 또한 이들의 역사에는 사회가 없다. 즉 역사는 개인들의 것이며, 개인들을 넘어서는 사회적 의미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은 이러한 실증주의 역사관에 밑절미를 둔 것이다.

이러한 실증주의 역사관을 뒤집은 이는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였다. 그는 같은 사실이라도 현재 역사가의 해석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역사를 “현재를 거울삼아 과거를 통찰하고,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파악했다. 카의 이러한 역사관은 오늘날의 민족사처럼 통치 목적의 역사 서술을 합리화하는 논거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카의 명제는 엄밀히 말하면 “역사는 과거의 지배계급과 현재의 지배계급과의 대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에는 사회가 없다. 카의 목적론적 역사에는 사회가 있지만, 피지배계급이 없다. 둘 다 과학성이 결여된 관념론적 역사관이다. 관념론적 역사관은 신의 의지나 위대한 영웅, 뛰어난 지도자 등을 역사의 주체로 본다. 반면에 이러한 모순을 직시하면서 역사를 물질적 생산관계를 둘러싼 계급투쟁의 결과로 보는 역사관이 유물론적 역사관이다. 유물론적 역사관은 농노나 노동자 등 물질적 생산을 담당하는 계급을 역사의 주체로 본다.

한편 관념론적 역사관은 자본주의 체제에 호응하고, 유물론적 역사관은 사회주의의 이상에 부응한다. 그러므로 자본가국가의 교과서는 관념론적 역사관에 따라 서술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자본가국가는 유물론적 역사관을 비난과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다. 한마디로 자본가국가의 교과서에 노동자계급을 위한 역사는 없다. 차제에 노동자계급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역사 전쟁은 계급 전쟁의 한 표현



흔히 역사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논리로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주장한다. 국정교과서가 지금의 검인정교과서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인정 교과서도 국가의 지침에 따라 서술되어 민족, 국가, 자본 등 자본주의 이념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 때문에 보수 역사학자의 입에서도 현행 역사교과서가 ‘우편향’이라는 발언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실정이다. 기본적으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역사교과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는 없다. 노동자계급이 역사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다양성이 아니라 계급성이다.

한편 박근혜 정권이 기어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여 ‘극우편향’ 교과서를 추구하는 현상에 대하여 설명이 분분하다. 부친 박정희의 명예회복에 대한 집착이라고도 하고, 내년 총선거를 앞두고 벌이는 보수층 결집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박근혜의 개인적 의지 문제나 선거공학적인 접근만으로는 교과서 파동의 본질을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의 사회적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처지’이다. 그 점에서 박근혜 정권의 국정교과서 강행 또한 계급적 처지를 반영한다. 여기에는 세계 자본주의 공황과 이윤율 저하 위기에 처한 남한 자본가계급의 처지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자본주의 말기적 공황의 터널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한국 자본가계급은 성장의 정체와 이윤율 저하에 따른 손실을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함으로써 벌충하고 있다. ‘자유로운 해고’나 ‘총체적 임금 삭감(임금피크제)’과 같은 최근의 노동개악 정책이 그 단적인 예이다.

하지만 이처럼 노동자들의 피땀을 무한정 쥐어짜다 보면 결국에는 거센 계급적 저항을 불러 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은 다가올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방어하면서 노동착취 질서를 이어가야 하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는 터였다. 그리고 타협도 양보도 아닌, 사상탄압을 해법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지극히 식상하지만 여전히 대중에게 먹혀드는 ‘종북’ 프레임 안에 역사교과서를 끌어들였다. 그럼으로써 대선부정, 노동개악 등 중요한 이슈를 묻어버리고, 대중투쟁의 전선을 흩어놓았다. 결국 역사교과서 국정화 파동은, 역사 문제나 교과서 문제를 넘어서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사상탄압의 신호탄이었다.

게다가 국정교과서 시도는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자본가계급의 이데올로기 공급소인 ‘자유경제원’이 역사 국정교과서 추진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점도 심상치가 않다. 요컨대 재벌 언론인 <문화일보> 11월 2일자는 “사회교과서, 시장경제 다루는 소단원조차 없고 문제점만 지적”이라는 제목과 함께 자유경제원과 재벌 자본의 목소리를 날것으로 전하고 있다. “자유경제원 및 재계에 따르면 중·고등 교육 과정에 기업과 기업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교과서에 게재돼 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시장경제와 기업인에 대해 막연한 반감을 심어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역사는 노동자계급 스스로 만들어 가야

사실 역사교과서 파동의 이면에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자 하는 지배계급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역사 전쟁은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국가가 벌이는 이데올로기 총공세를 표현하는 것이다. 더불어 지배계급은 이러한 공세를 통하여 계급투쟁의 전선을 우측으로 이동시키려 한다. ‘한 시대의 물질적 힘을 지배한 자들이 그 시대의 정신적 힘까지 지배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현실이다.

그러나 사실 진보, 보수를 떠나서 역사가에게 역사는 승리한 사회계급의 세련된 족보에 불과하며, 학생들에게 역사는 시험과목의 하나일 뿐이며, 일반대중에게 역사는 흥미진진한 역사드라마의 소재일 뿐이다. 그밖에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거창한 답변은 개인들을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관념론적 역사의 폐해라 할 수 있다.

이에 노동자계급은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사상투쟁을 벌이며 자신들의 역사를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선전하는 민족이념과 국가이념의 틀 안에서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 수 없다. 또한 진보든 보수든 역사학자들이 노동자계급의 역사를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계급은 스스로 이념의 폴리스라인을 넘어서는 사상투쟁을 조직하고 실천해가야 한다. 그것은 계급투쟁을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보는 유물론적 관점을 견지할 때 가능한 일이다. 노동자계급의 역사는 곧 계급투쟁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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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장요구 투쟁은 계급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