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4일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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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자본가들의 자세
황정규  ㅣ  2015년 11월 14일


빌 게이츠가 사회주의를?


기후변화는 전인류가 직면한 거대한 재앙이라는 점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 기후변화부정론자들은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와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집단들 외에는 거의 없다고 할 정도이다. 오히려 IT, 금융업계의 큰 손들은 이제 너나할 것 없이 기후변화를 막겠다며 청정에너지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금융자본가 워렌 버핏은 태양광과 풍력에 3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 IT기업 구글, 애플 역시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세계 최대 갑부이자 이제는 박애사업가로 변신한 빌 게이츠 역시 이러한 대열에 합류하였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빌 게이츠 “사회주의가 미래 지구의 유일한 대안체제”>(세계일보, 2015년 11월 2일자)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와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빌 게이츠가 사회주의를 거론했다는 제목은 오보였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청정에너지인 태양광, 풍력에 대대적 투자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임은 분명하였다.

빌 게이츠를 읽는 코드, 박애자본주의와 미래먹거리

비록 자본가라 하더라도 기후변화라는 전인류적 재앙에 맞서 무언가를 하겠다고 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가가 어떤 일을 하겠다면, 그게 선행이라도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히 빌 게이츠라면 더욱 가자미눈을 하고 보아야 한다. 그가 지금까지 박애라는 이름하에 추진한 사업들은 사실 상 자본주의 체제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강화하면서도 자신의 부를 더욱 축재할 수 있는 꿩 먹고 알 먹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19세기말 20세기 초 독점자본에 대한 세간의 비판적 인식을 불식시키고 자본주의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자선’(charity)이었다. 철강으로 주머니를 불린 카네기와 냉혹한 사업수완으로 미국 최고의 갑부가 된 록펠러, 자동차 업계의 포드는 자선재단을 만들어 자선활동을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중요 축으로 만들었다. 20세기 후반 들어 자선은 ‘박애’(philanthropy)라는 용어로 대체된다. 이때의 차이는 자선의 방식에도 기업가적 마인드와 기업운영방식을 적용하는 것이다. 비용편익분석이 빈곤정책, 사회정책을 틀 지우는 핵심 원리가 되었고, 이를 주도한 것이 빌 게이츠가 세운 게이츠 재단이었다. 게이츠 재단은 특히 교육과 보건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게이츠 재단은 미국 내에서 교육의 기업화, 시장화를 주도하였고, 해외에서는 막대한 기부금을 통해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국제 제약·의료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건정책을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최근 보도된 세계일보 기사의 원문을 보면, 빌 게이츠는 자기 동료 자본가들을 전혀 비판하지 않았고, 자본주의는 더군다나 비판하지 않았다. 그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면서도, 자본가들이 청정에너지 산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의 청정에너지 R&D(연구개발) 투자를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매우 자본가적인 태도를 보였을 뿐이다. 빌 게이츠의 인터뷰는 오히려 자본가들이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서, 향후 자신들의 유망한 미래먹거리로 청정에너지를 꼽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빌 게이츠를 포함하여 워렌 버핏, 구글, 애플 등 쟁쟁한 대자본이 청정에너지 산업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라기보다는 기술발전에 의해 태양광, 풍력 등 청정에너지 사업의 초기비용이 대폭 감소하고 있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가까운 미래에 상당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변화를!

아담 스미스의 말처럼 비록 그 목적이 개인의 경제적 이익이라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이 조화를 부려 기후변화를 막는 다는 공공선에 도달한다면 뭐가 문제이겠는가? 그러나 기후변화는 단순히 ‘청정에너지로의 전환’과 같은 기술적 처방을 극복될 수 없는 문제이다. 무한한 이윤추구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생산을 위한 생산은 자본주의의 근본적 성격이고, 자본주의에서 환경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본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환경재앙은 무한 반복되는 두더지 게임의 모습을 띠게 된다. 박애자본가의 기술투자가 아니라 “기후변화가 아닌 체제변화”가 기후변화의 올바른 처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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