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4일 94
해방 > 94호 > 국제

터키 앙카라 테러사건과 그 이후
민중의 저항을 굴복시키려는 에르도안의 시도
권순욱 인천대 학생  ㅣ  2015년 11월 14일


앙카라 테러, 터키를 피로 물들이다

10월 10일 앙카라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10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일 폭탄이 터졌던 광장에서 인민민주당(HDP)과 혁명적 노동조합 총연맹(DİSK)을 비롯한 좌파 단체들은 7월 20일 수르츠에서 벌어진 자살폭탄 테러 이후 고조되는 터키 정부와 쿠르디스탄 노동자당(PKK)과의 전쟁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묻고 있었다. 터키 정부는 그들을 향해 테러를 가한 범인이 이슬람국가(IS)에 소속되어있는 두 명의 조직원이라 밝혔다. 이 둘 중 한 명은 수르츠 테러사건의 범인의 형으로 알려졌다.

평화를 외쳤던 인민민주당을 향한 공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2015년 6월 총선거 이전부터 인민민주당의 지지행렬을 향한 폭탄테러가 수십 번 있었다. 국경 근처에 있는 시리아 마을 코바니(Kobanî)로 향하다 수르츠 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회주의청년연합 33명 역시 인민민주당에 소속되어있던 이들이었다. 수르츠 사건 이후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내세우면서 PKK와의 평화협상을 일방적으로 깼던 터키 정부는 인민민주당 당원들을 PKK와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체포했다. 경찰과 군대를 동원하여 쿠르드인 마을을 순찰하고, 지즈레(Cizre)와 디야르바키르(Diyarbakir)를 포위하고 민간인을 위협하고 쏴 죽이는 일도 벌여왔다. 이에 PKK가 게릴라전으로 대응하여 전쟁이 고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극우 민족주의 세력이 인민민주당의 당사 100여 곳을 침탈, 폭탄테러, 방화하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터키 자본주의의 위기

이런 탄압의 배경에는 터키 자본주의의 위기와, 이를 억누르려는 집권당이 정의개발당의 권위주의 정책이 놓여 있다. 무역 적자로 인한 정부부채 증대, 인플레이션, 실업률 증대에 맞닥뜨린 터키 자본주의는 건설업, 광업, 쇼핑, 농업, 관광산업 등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 공황이 현실화되는 지금, 터키 역시 그리스나 베네수엘라처럼 디폴트를 선언할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정의개발당의 집권 이전, 여러 케말주의 정당들은 터키 경제의 위기로 증폭되는 불안을 권위주의 정책으로 대응했다. 정의개발당 역시 이런 불만을 더욱 노골적인 폭력으로 억압하였다. 정의개발당은 군부척결, 민주화를 약속했지만, 농민과 도시 빈민을 대상으로 한 자선사업, 자본가들을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장하고 있었다. 2013년 탁심 게지 공원의 재개발을 문제 삼았던 게지 시위대를 향해 정의개발당은 경찰력을 동원하여 진압하려 시도했다. 정의개발당은 2014년 소마광산 붕괴사건이 일어난 후 탄광에서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문제 삼는 시위대에 대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정의개발당의 권위주의 정책과 함께, 케말주의와 사민주의를 내세웠던 공화인민당(CHP)의 미온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존 정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도록 만들었다.



인민민주당의 성장과 자본가들의 대응


이런 조건 하에서 등장한 인민민주당은 정의개발당과 그들을 지원하는 터키의 자본가들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었다. 인민민주당은 터키 정부로부터 억압받아왔던 쿠르드 민족주의자, 1980년에 일어난 군부 쿠데타 이후 완전히 밀려났던 사회주의자, 페미니스트, LGBT 활동가 등의 선거 연합으로 탄생한 정당이었다. 비록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 삼는 것으로 나아가진 않았지만, 터키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화와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폭력으로 대응해왔던 정부, 그리고 소수민족과 여성, 성 소수자에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에 이의를 제기하고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인민민주당은 6월 총선에서 13%를 득표하면서, 대통령직 강화와 소선거구제로의 전환을 통해 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의 과반의석 차지를 저지하였다.

그러나 정의개발당은 이들을 방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쿠르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좌파의 이념적으로 다소 느슨한 연합체라는 인민민주당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이 두 세력이 오랫동안 결합하지 못했던 것은 여타 쿠르드 민족주의자들과 쿠르드 독립 문제를 최우선시하고 게릴라 투쟁에 전념했던 PKK과, 그들의 한계에 비판적이었던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갈등 때문이었다.

수르츠 사건이 터진 이후 에르도안은 PKK의 급진적 청년조직인 애국혁명청년운동(YDG-H)을 도발하여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회주의 좌파와 쿠르드 민족주의 사이의 분열을 유도하고 PKK에 우호적이지 않은 보수적인 쿠르드인들을 포섭하려 했다. 또한 정의개발당은 터키 민족주의를 선동해 터키인들과 쿠르드인들 사이의 대립을 조장했고, ‘회색늑대’들과 ‘오스만사회’ 등의 극우민족주의 청년조직을 자신들의 기반으로 삼았다. 인민민주당을 향한 테러행위가 만연하게 된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이런 정치테러를 묵인하거나 방관했을 뿐만 아니라 그 주범이 되기도 했다.

11월 총선과 그 이후

6월 총선 이후 내각 구성에 실패하면서 11월 총선거가 치러졌다. 이번 선거에서 정의개발당은 49.37%를 득표하며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승리를 거뒀다. 인민민주당의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데에 일부 성공했을지라도, 10% 미만 득표로 인민민주당이 의회 밖으로 내쫓으려 하였던 에르도안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그러나 압도적인 의석을 기반으로 어떤 야당도 도전할 수 없는 강력한 대통령제를 만들고, 이를 통해 지배질서를 공고히 하려는 정의개발당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강력한 적수인 인민민주당의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해, 에르도안 정권은 서부 쿠르디스탄의 인민수비대(YPG)가 점령하고 있는 코바니와 텔 아비아드(Tell Abyad)를 공격하고,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쿠르드인들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에르도안에 맞선다는 이유로 인민민주당에 대해 다소 우호적으로 보도했던 언론사들을 물리적, 경제적으로 탄압하는 일들을 벌이고 있다.

정의개발당의 더욱 노골적이고 과감한 행동은 터키 자본가들의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11월 총선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인민민주당은 공화인민당의 미온적 태도 덕분에 자신들이 억압받는 이들의 유일한 대변자라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비록 정의개발당이 정치테러와 경찰의 탄압으로 대응했지만, 앙카라 사건 전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인민민주당이 외쳤던 ‘노동, 민주주의, 평화’의 수호에 동조했고 지지행렬에 참여했다. 이런 저항들을 약화시켜 분쇄하는 것이 자본가들이 에르도안에게 쥐어준 임무였다. 이런 동력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동시에 급진화하는 것이 바로 인민민주당과 터키 좌파가 앞으로 해나가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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