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4일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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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자본주의! 노동자의 투쟁이 향해야 할 곳
기관지위원회  ㅣ  2015년 11월 14일


1. 세계자본주의, 대공황의 악몽이 재현되다


2008년 세계대공황은 자본주의에 크나 큰 타격을 입혔다. 2008년 공황과 비견되는 1929년 공황의 경우, 30년대 내내 해결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비롯된 전쟁경제의 팽창으로 극복될 수 있었다. 1960년대 말, 70년대 일어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도입을 통해 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 탄압과 착취 강화, 그 전시기 노동자계급에게 내주었던 양보들의 회수 등 대대적 계급전쟁을 통해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새로운 대공황을 피할 수 없었다. 2008년 공황은 부채와 가계소비 팽창에 기댄 거품에 의존하고 있던 세계 자본주의에 치명적인 내상을 입혔다.

이윽고 자본주의는 이러한 내상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엔 다시 멀쩡한 상태로 돌아온 것 같았다. 자본주의가 2008년의 대파국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국가의 대대적 개입을 통해서였다. 대규모 재정확대, 천문학적 구제자금의 지출, 초저금리, 통화팽창 정책 등을 통해 자본주의라는 건물의 붕괴를 막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처방도 이제 약발이 다하고 있다.

• 미국은 2008년 이전 부채에 의존하는 대규모 가계소비를 통해 세계경제를 지탱해왔다. 대공황 이후에는 미국의 구제금융과 양적완화정책, 초저금리 정책이 세계 자본주의를 지탱시켜주는 주요 축이었다. 이런 비교과서적 정책은 현재 자본주의가 치유할 수 없는 중증에 걸린 환자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연준은 경제지표가 호전되면, 물가가 상승하면 금리를 올리겠다고 한지가 벌써 2년이 되었다. 악화된 경제지표를 손에 쥔 연준은 다시 금리인상을 유보하려고 하고 있다. 자신들의 금리인상 결정이 혹여 새로운 공황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하는 공포감이 연준을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 세계의 공장, 중국의 상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은 올 해 3/4분기 6.9%의 경제성장을 했다. 7%대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이라고 하고, 이제 더 이상 7% 이상의 고도성장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중국 당국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 6.9% 성장률 자체가 진짜일지 의심을 받을 정도로 경제침체가 심각한 상태이다. 해외직접투자를 받아 공장을 지어 저가 공산품을 전세계에 공급하던 중국경제의 침체는 세계 자본주의에 치명타를 입힐 상황이다.

• 신흥국의 상황도 정상이 아니다. 주요 신흥국인 브라질의 경우 헤알화의 가치가 올해 35%나 폭락하였고, 실업률은 급등하고 있다. 유가 하락에 의해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조차 외환보유고 하락과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선진자본주의의 경제 악화, 중국 경기의 후퇴는 신흥국에 막대한 충격을 가하고 있다.

이미 주요 자본가 단체는 2016년 세계 자본주의가 대공황으로 재진입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일본 다이와 증권은 “세계 두 번째 규모이자 일본보다 두 배 규모인 중국 경제가 이처럼 멜트다운 상태에 빠지게 되면, 이것의 결과는 세계경제를 급전직하 시키는 것 이상이 될 것이다. 그 충격은 세계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최악이 될 것이다”라고 예측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2016년 시작될 중국발 글로벌 경기후퇴는 이제 우리 글로벌경제팀의 핵심 시나리오이다. 불확실성은 남아있지만 시의적절하고 효과적인 정책대응의 가능성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2008년 대공황 이후 새롭게 응축된 자본주의의 모순들은 폭발이 임박한 마그마처럼 우리 발밑에서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마그마의 폭발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2. 공황국면에 접어든 한국경제


‘97년 외환위기 때보다 경기가 더 안 좋다’
삼시세끼 밥 먹고 사는 게 신기할 지경으로 한국경제는 침체의 늪으로 깊게 빠져들고 있다. 금년 들어 수출은 9개월 연속 하락하였고, 수입은 그 만큼 하락해 불황형 무역흑자가 계속 늘고 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 기업의 비중도 3년 연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대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42%에 달하고, 조선·운송·철강 업종에서 한계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조선업종에서는 대우조선 한군데에서만 5조가 넘는 손실이 발생하고 4조에 달하는 긴급자금으로 연명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97년 외환위기 때보다 경기가 더 안 좋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반복되고 있다. 2008년 공황이후에 회복이라는 말은 있었어도 경기 좋다는 말은 없었는데, 이젠 97년 IMF때와 비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을 ‘공황’이라고 언급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돈푼다고 해결되지 않는 경제, 거품만 늘어난다.
정부는 경기를 살리려고 단기 부양책을 되풀이하고 있다. 단기 부양책이란 이자를 내리고(1.5%) 나라가 빚내고, 가계도 빚내는 것에 집중되어 있고, 정부지출을 당겨서 집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단기 부양책으로 안 되니 4대 부문(공공·노동·금융·교육) 구조개혁이니 창조경제니 말을 쏟아낸다. 그러나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는 핑계거리로 써먹을 수는 있어도 실제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한국은행이 유지하고 있는 1.5%의 기준금리는 한국경제에서는 기록적인 저금리이다. 그러나 이런 저금리에도 경기는 부양되지 않고 있다. 저금리가 부풀린 것은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이다. 상장기업들의 실적이 대다수 엉망임에도 주식이 2,000선을 넘나드는 건, 시중에 풀려있는 어마어마한 과잉유동성 외에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올 2분기 집값 상승률은 3.4%로 달해 상승세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1분기 2.3%) 낮은 금리에 따른 월세 비율 확대와 깡통전세에 대한 불안으로 주택 매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전 세계적인 양적완화의 대가는 주택시장에서 버블의 재등장이다. 전 세계 주택가격이 뛰고 있다. 바로 2008년 대공황을 만들었던 그 주택가격 거품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에 몰려 있는 한국의 가계부채는 2014년 가을부터 올해 여름까지 60조에 가까운 가계부채가 늘어나, 1,100조를 넘어섰다.

마른 수건 물짜기
한국경제에서 이윤의 원천은 1,800만 노동자의 잉여노동이고, 그 잉여노동은 사장님의 사무실을 지나 그 사무실 임대업자, 그리고 은행문턱을 넘어, 주식시장, 현물시장, 채권시장을 거쳐 국세청 창구까지 도달한다. 그런데 이 잉여노동이 아무리 쥐어짜도 마치 강물을 건너가는 소금장수처럼 강 둔덕에 도착하면 별로 남는 것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이런 걸 한계라고 한다. 자본주의 생산의 한계,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한계, 남의 노동을 이용한 판매를 위한 생산의 한계이다.

그래도 짤 거는 짠다고 자본과 정권은 노동자들을 압박을 계속 강화해 오고 있다. 이른바 노동소득분배율은 OECD국가 중 최하위다. 돈 벌이해서 자본가들이 가져가는 몫이 해마다 늘고 있다. 그럼에도 청년실업은 잦아질지 모르고, 노인빈곤율 또한 최하위다. 이러면 자기자신은 물론이요, 자신들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노동자나, 배불러 터지는 재벌도 미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노동자는 결혼, 출산 등등을 포기하는 것으로 미래 없는 자신을 대비하고, 재벌은 투자를 유보하고 돈을 쌓아놓는 것으로 미래를 대비한다. 부는 한쪽에 쌓이고 빈곤은 만연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 없는 자본주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공황의 그림자는 짙어지고, 거리에는 생존의 위협이 난무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3. 무능한데 독한 자본주의 국가의 보루, 박근혜 정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이 무능이다. 세월호든 메르스든 참 지독히도 백성들 안녕을 지키는데 무능한 정권이었다. 그런데 철도파업이나, 노동법개악이나 전교조탄압이나 공무원연금 개악을 떠올리면 무능은커녕 가장 독한 정권중의 하나이다. 독하고 집요하다. 가여운 생명들이 위협받을 때 사람들은 쉽게 “이게 나라냐”라고 일갈을 했지만 사실인즉 아주 잘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교조를 불법화하고 교사를 범죄인 취급하는 정권에 교직은 모욕당했지만, 자본가국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훌륭한 임금노예를 양성하는데 흠결을 가진 자들에 대해 홀대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던 거다. 다만 이 정권의 특징이 국가의 맨얼굴을 드러낼 때 사람들의 지적수준이나 의식성장에 비해 철면피에 마구잡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귀중한 정치학습을 시켜주었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도구라는 것을.

국가를 노골적으로 사적 이익에 복무시킨 정권
오스카상을 수상했던 미국영화배우, 멜라니 그리피스의 외활아버지는 세계최초의 장편영화 “국가의 탄생”을 만들었던 사람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KKK단이고 영화의 줄거리는 흑인폭동에 의해 위기에 몰린 백인여성을 영웅적인 KKK단이 구하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미국이라는 국가가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지배를 가능케 하는 조직폭력단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비슷한 일은 한국에서도 반복된다. 당장 역사교과서 파동은 대한민국의 본질에 대한 지배계급의 냉소적 폭로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만들고 박정희를 근대화의 아버지로 만들고 싶은 이 정권은, 친일에서 친미로 몸을 바꾼 자들이 민주주의를 유린하며 독재를 할 수 있었던 폭력기구가 대한민국이었음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이들이 야당에게 조차 욕을 먹은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반동적인 자신들의 뿌리를 미화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정권을 보고 독재정권이라 부른다. 박근혜 정권의 독재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지만 보다 분명한 것은 일부의 사적 이익만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이 형태가 사실은 지독한 ‘계급독재’,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하려는 절박한 독재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문고리 인사라고 불리는 가신들 돌려막기식 인사정책이다. 그런데 인사들의 면면을 보자면 한국자본주의의 위기, 특히 정당성의 위기를 막기 위해 가장 악랄하게 계급이익에 충실한 자들을 앞장세운 것이다.

하는 게 미우니까 별생각이 다 들고,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이 정권이 당사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지 혼자 나서서 싸움을 만들고 갈라쳐서 노골적으로 한쪽 편을 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나 노동개혁을 보자면 자본의 요구가 없는데 정부가 나섰을 리가 없다. 이 정권이 아무리 겉보기에 고집불통처럼 보여도 계급내의 소통은 어떤 정권에도 뒤지지 않는다.

자본의 이윤보장을 개혁으로 포장하는 정권
사람들은 우리사회가 평등지향성이 강한 사회라고 한다. 그래서 개혁이라고 하면, 어쨌건 공평함을 강화하고 사람들 사이에 기회의 평등이라도 늘리는 방향으로 쉽게 생각한다. 박근혜정부에 들어와서 더욱 심해지는 것은 실제와 용어의 격차가 커지는 것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개혁은 하나같이 자본의 재생산을 원활히 하기 위한 조치들이고, 자본주의 질서의 위계를 공고히 하여 한쪽에 부를 몰아주기 위한 조치들이다. 

예를 들어 자본의 원활한 재생산을 위해서 연금은 안주는 것이 미덕이다. 노인빈곤율이 OECD 최하위인 나라에서 노인들 생활비 뺏는 것이 미래세대를 위한 미덕이라고 떠들어대는 정신착란증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연금법이 통과되고 얼마 안 있어 노인들을 위한 법안이 하나 통과되었는데, 그것이 존엄사법이다. 오래 살지 말고 곱게 죽어달라는 것이 자본가와 70대 노인정부 박근혜정권의 노후대책이다.

결정적일 때마다 공권력을 내세워 자본과 노동의 위계가 조금이라도 위협받을 때마다 등장하는 국가를 놔두고, 현장투쟁을 열심히 하자는 말은 사기에 가깝다. 자본가 국가의 본질을 놔두고 의석 몇 자리를 차지해 개혁을 하자고 떠드는 자는 이미 기만이고 협잡이다. 노동운동이 정치운동이 되어야 하고 임금봉투가 아닌 정권의 소유여부를 두고 싸워야하는 새로운 노동자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운동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말에 있다. 노동자를 위한 대한민국은 없다.



4. 재점화하는 대공황, 노동자들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자본주의의 공황은 우리가 왜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하는지 확실한 근거를 보여준다. 자본가는 임금을 주고 노동자를 고용한다. 그러나 이 ‘임금’은 노동자들의 삶을 겨유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생활비밖에 되지 않는다. 노동자는 이런 임금을 받고, 이 임금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임금 이상의 가치는 모두 ‘이윤’이란 이름으로 자본가의 손에 들어간다. 이러한 착취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핵심적 생산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착취과정은 순탄하게 진행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경제공황을 겪게 된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들도 경제위기를 겪었지만 자본주의가 겪는 위기는 이전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위기이다. 이전 사회들이 주로 부족, 결핍 때문에 경제위기를 겪었다면, 자본주의에서는 과잉생산, 과잉공급 때문에 경제위기를 겪는다. 풍요가 경제위기를 낳는다는 이 역설은 자본주의가 기본적으로 노동자를 착취의 대상으로만 볼 뿐 생산과정에서 형성된 생산의 성과가 사회구성원 전체에 의해 향유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발생한다. 사회의 한편에서 부의 축적이 다른 편에서 빈곤, 비참함의 확대와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이러한 모순을 더욱 악화시키기 때문에, 노동자와 사회구성원 대다수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을 만든다. 2008년 대공황 이후 세계자본주의의 전개과정은 이러한 모순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한국 자본주의 현실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기업은 이자도 감당 못하는 ‘좀비기업’으로 넘쳐나고, 부진한 수출과 내수가 겹치면서 경제 전반에 적신호가 들어오고 있다. 한때 가장 잘나가던 조선업종이 이제 대규모 인원감축에 직면해 있다는 현실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문제는 자본주의다”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운동을 만들자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는 이미 심각한 경제공황 국면에 접어든 상태이고, 악화된 경제상황은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이 전방위적으로 후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청년이 겪는 실업과 생활고, 노동자들에게 밀려오는 해고와 임금하락, 노동조건 후퇴, 노년이 직면한 빈곤한 삶, 정권은 노동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대대적인 노동자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이것은 바로 자본주의라는 착취체제에서 비롯된 일이다. 노동자들이 기업과 생산 현장이라는 틀 속에서 자신의 생존을 지키는 것이 더욱더 어려워지는 이유 역시 어느 특정 자본의 악랄함 때문이 아니라 노동자 착취로 살아가는 자본주의, 끊임없는 경제공황으로 노동자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자본주의 때문이다. 자신의 생존을 지키는 것조차도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문제 삼고, 이 체제를 뛰어넘겠다는 의지와 결의를 만들지 않고서는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노동자들 속에서 반자본주의 의식을 확산시키자
경제공황으로 삶의 조건이 악화되고 있는 다른 나라의 노동자 민중이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이 들불처럼 등장하고 있다. 가령 바로 얼마 전인 11월 5일 영국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자본주의 반대를 외치며 격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 이것은 한국 자본주의가 잘 나가서도 아니고, 아직 자본주의 모순이 참을 만해서도 아니다. 한국에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 아직 등장하지 않은 것은 노동자 속에서 노동자가 겪는 삶의 위기가 바로 자본주의에 있다는 인식을 형성하고 확산하기 위한 노력과 실천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우리는 ‘헬조선’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 체제를 갈아엎는 폭발적이고 급진적인 운동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파탄내는 주범이 바로 자본주의라는 진실을 노동자들의 보편적 인식으로 만드는 것은 노동자 투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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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장요구 투쟁은 계급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