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8일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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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속, 중국의 노동자계급의 현주소
황정규  ㅣ  2015년 10월 8일



개혁개방과 역사상 유래없는 최대 규모의 노동자계급의 증가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중국의 개혁개방에서 핵심은 경제특구를 설치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하여 수출중심의 산업구조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이 중심에 저비용 노동자들을 대거 활용하여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놓여 있었음은 말할 나위없다. 이는 1970년대 구조적 불황이후 해외직접투자, 외주화, 해외위탁생산 등을 통해 선진국의 산업생산을 저임금의 국가들로 이전하는 것이 중요한 생존전략이 된 선진국 자본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는 것이기도 했다.

중국의 수출중심 경제발전을 위한 저임금 노동자는 자본주의 발전 초기의 나라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농촌 인구로부터 유입되었다. 1990년 약 6억3700만 명이었던 중국의 노동인구는 2014년에 약 8억179만 명으로, 약 1억640만 명이나 증가하였다(세계은행 통계). 노동자계급의 비약적 증가를 주도한 것은 농촌에서 해안가의 산업지대로 일자리를 찾아 이주한 국내 이주노동자였다. 이들이 바로 ‘농민공’이라고 지칭되는 집단이다. 이들의 숫자는 1980년대 초반 2-3천만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세계대공황이 발발한 이후인 2009년 중반에는 줄잡아 1억5천만 명로 팽창하였다.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증가는 역사상 유래 없는 최대 규모의 인구학적 변화였다.

저임금노동을 구조화한 중국 특유의 호구제도

한편, 중국의 특유의 호구 제도는 ‘농민공’의 저임금 상태를 존속시키는데 일등공신 노릇을 하였다. 1958년 마오 시절 제정된 호구제도는 애초 농촌의 과잉인구가 도시로 대거 이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것이었다. 이 제도는 연금, 의료, 교육 등 국가가 제공하는 각종의 사회보장혜택과 연동되어 있었고, 따라서 주민은 자신의 호구가 등록된 지역을 벗어나면 이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호구제도는 농민들의 도시 이주를 금지시켰기 때문에, 중국 내에서도 농민들을 차별하는 이원결구(二元結構)의 제도라고 비판을 받았다.

1990년대 이후 개혁개방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농민의 도시 이주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것은 노동력 공급을 위해서 장려되어야 했다. 그러나 도시로 온 농민공은 도시로 호구등록이 되지 않아 고향의 호구를 유지해야만 했다. 이는 농민공이 도시민이 누리는 사회보장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다른 사회보장책이 없는 농민공 입장에서는 자신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임금을 주는 고용주에게 고분고분해질 수밖에 없었다.




2008년 세계대공황 이후 악화된 노동자들의 처지

수출에 의존하고 저임금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사용하여 이윤을 확보하는 경제구조는 세계경제의 변화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경제는 이미 2007년부터 적신호가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2008년 세계대공황이 닥치자 엄청난 여파가 밀려왔다. 자료마다 수치가 다양하지만 전국적으로 2008년 한해 62,000개의 기업이 폐업하였고, 광동성 한 지역에서만 2008년 3/4분기에 7,148개 기업이 폐업 혹은 이전하였다.

2008년 말, 춘절이 올 때까지 한참이 남았는데도 일자리를 잃어 별 수 없는 노동자들은 일찍 고향으로 떠났다. 그 수는 7천만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가도 일자리를 잡기 어려웠고, 되돌아온들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춘절이 지난 2009년 3월까지 일자리를 찾지 못한 ‘농민공’ 노동자의 수가 2300만 명에 달하였다. 그전부터 노동자들은 열악하고 불안정한 노동환경에서 일하였고 도시에서 간신히 살아갈만한 낮은 임금마저 떼이기 일쑤였다. 경제가 악화되자 임금삭감, 체불, 노동조건 악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오도 가도 못하는 참담한 신세는 다음과 같은 절절한 말로 표현되었다. “노동자로는 전망이 없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打工无前途,回乡无意思).”

중국 노동자들의 저항

노동자들은 이러한 악화된 삶의 조건에 가만히 있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파업과 다양한 투쟁으로 삶의 조건이 악화되는 것에 맞서 싸웠다. 중국이 이제까지 ‘세계의 공장’이었다면 지금은 “세계의 파업 중심지”가 되었다. 중국의 파업건수는 2011년 185건이었던 것이 2014년 1,379건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올해에는 파업이 2015년 9월 현재까지 1811건이 발생하여 이미 2014년의 파업건수를 훨씬 능가하였다.

이른바 현실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노동조합은 국가기구나 다름없는 중화전국총공회 외에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투쟁은 대부분 법 밖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노동쟁의가 급증하자, 정부당국도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탄압일변도로만 대할 수 없어서 한편으로는 어르고 요구를 들어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저항이 정치투쟁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다. 반면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농민공’이라 자신이 일하는 지역에서는 ‘외부인’이다보니, 당장의 경제적 요구를 넘어서는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투쟁하지 못하는 한계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투쟁의 양은 이미 엄청난 것이고, 이 양은 조만간 새로운 질로 전화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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