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8일 93
해방 > 93호 > 이슈

어떤 수를 써도 자본주의는 발밑에서부터 꺼지고 있다
해방  ㅣ  2015년 10월 8일



정말 검은 나날들

견문이 짧은 사람들은 팔랑귀가 되기 십상이다. 식견이 부족할 지니 처음 보는 것, 듣는 것, 모두가 굿아이디어다. 분명 신문에 난 미국기사 보다가 무릎 쳤을 높으신 분 아이디어가 분명한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미국의 대형 할인행사)가 10월 달 보름 내내 진행되고 있다. 소비진작을 위한 묘수라 하나 현실은 동대문시장에 갔어야 할 중국관광객을 백화점으로 끌어들였을 뿐이다. 그래서 이 기간 중 돈 번 곳은 백화점뿐이다. 노동개혁이다 하면서 임금생활자들 월급 깎는 일에 골머리를 싸안는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경기부양책은 소비를 늘리기 위해 소득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싸게 팔아 지갑을 털어보겠다는 것이다.

사면초가의 금리정책

한국은행총재는 임기 중에 가자미 눈이 되기 십상이다. 눈치 볼 것이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행장의 고민은 하나다. 금리를 올릴 것인지, 내릴 것인지, 올리면 또 언제 올릴 것인지이다. 미국은 금리인상을 실제로는 하지도 않은 채 올릴 것이다라는 말만 했는데도 금리인상의 효과는 다 보고 있다. 달러는 미국으로 환류하고 있다. 덕분에 신흥국의 환율과 주가는 엉망이 되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월 기준으로 수십억 달러가 한국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보니 올 봄에 말이 나왔던 일단 금리를 내렸다가 다시 올리자는 생각은 물 건너갔고, 금리는 올리기는 올려야겠는데 이게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금리인하를 했더니 가계부채가 늘어났고, 한계기업들이 죽지 않고 좀비가 되었다. 이제 금리인상을 하려고 하니, 가계부채가 부실화될 것이 무섭고, 한계기업들이 안고 있는 부채가 부실화되는 것도 두렵게 되었다. 경제지들은 금리인상이 몰고 올 파장으로 가계부채 및 기업부채의 부실화를 경고하고 나서며, 사실상 물 건너간 금리인하 군불때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지금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전세값이나 전월세값은 저금리를 유지할 경우 잡을 방법이 없다. 금리를 높여야 하는 이유는 수십 가지지만, 올리면 안 될 이유도 그 만큼 많다.

자본의 이윤율 회복을 위한 개혁

일어나는 일들의 이면에는 8,90%가 돈문제다. 특히나 정권과 재벌들의 발언이나 행동의 이면에는 돈, 다시 말해 이윤율을 높이기 위한 간계가 숨어있다. 정부가 내놓은 개혁이라는 게 노동개혁이든 연금개혁이든 다 줄 돈 적게 주는 것이다. 결국 줄 돈 줄이는 건, 들어오는 돈에서 이윤으로 갈 돈이 많아지는 것으로 귀결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서방세계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다 똑 같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박정희 때부터 해 온 일은 모두 다 이를 위한 일이다. 이제 딸이 건네받아 야무지게 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일어나는 세상의 모든 악행과 말도 안 되는 짓들은 다 이윤율을 높이기 위한 짓에서 비롯되었다. 똥배를 사들여 눈속임으로 선령을 늘려 돈을 벌려 했던 세월호나 안전장비도 없이 탄광에 들어가 수백 명씩 죽어 나오는 중국이 탄광비극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똑 같은 논리가 개혁이라는 탈을 쓰고 일상에서도 자행된다. 정책도 없이, 미래에 대한 확실한 전망도 없이 허둥지둥 대는 소위 경제정책입안자들이 한순간에 일사불란하게 정렬되고 호전적으로 단결하는 사안은 바로 이윤율을 높이려는 혹은 회복하려는 시도다. 

공황의 망령은 이승을 결코 떠나지 않았다

1차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까지 서구의 거의 모든 역사는 1929년, 대공황의 해로 설명할 수 있다. 이제 21세기에서 사회주의 사회가 올 때까지의 모든 역사는 2008년 공황으로 설명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공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특히 공황의 시작을 장식한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돈을 풀기 시작하면서 공황은 오히려 연장되고, 더 파괴적으로 심화되었다. 그래서 2015년 10월 한국경제를 둘러싼 모든 일들은 공황으로 설명될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금리와 재정정책을 가지고 경제를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은 여러 번 깨졌다. 이 두 가지를 섞고, 노동자에 취했던 양보마저 거두면서 자본의 이윤율을 극대화했던 신자유주의도 2008년으로 박살이 났다. 이제 할 수 있는 정책적 조합이 모두 실패하면서 돈 찍어내는 것만 남았다. 그리고 이마저 7년이 지나자 약발이 다했다. 요즘 모든 경제뉴스에는 “2008년보다도 더”라는 말이 일상화되었다. 그 말은 썰물인지 알았던 공황이 어느 순간 밀물이 되어 왔다는 말이다. 공황은 현금다발로 아무리 막아보려 했지만 성큼성큼 파국을 향해 나가고 있다.

제국주의 각국이 시장을 확대하려는 노력 때문에 터진 1차 세계대전은 레닌의 말처럼 자본주의 최고, 최후의 단계로서 제국주의의 종말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초강대국의 통제 하에 제국주의적 갈등을 억눌러 자본주의을 위한 시간벌기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2008년은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인류에게 매우 불행하게도 1910년대 제국주의 시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파괴력과 잔혹함을 오늘날의 자본주의 세계가 가지게 됨으로서 인류를 더 힘겹고 다급하게 만들고 있다. 운동주체의 심각한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 이 객관적인 절박함이다. 이 절박함은 대중을 각성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나가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 될 것이다. 그 절박함은 언제나 인류가 역사를 실망시키지 않은 주된 덕목이었다.

관련기사
헬조선의 실체, 자본주의
전염병 치료제를 만들 수 없는 자본주의, 스스로 치료도 불가능한 자본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중독에서 벗어나자!자본주의에 맞써 싸우자!
자본주의 관계의 과잉이 초래한 자본가들의 멸종 위기
왜 반자본주의인가

기사평쓰기
번호 제목 평점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등록된 게시물이 없습니다.

HTML코드 복사하기 (블로그나 카페에 바로 붙여넣기 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의 사회주의, 그 길을 묻다(5)] 오연홍 동지에게서 들어보는 연구공동체 ′뿌리′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