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5일 92
해방 > 92호 > 시리즈

[칼럼]전쟁은 계급 착취를 강화하는 수단
박남일  ㅣ  2015년 9월 5일



8월 4일. 비무장지대에서 지뢰가 터졌다. 남한 병사 두 명이 다리를 다쳤다. 뚜렷한 물증이 없어 진위는 확인할 수 없지만, 군은 북한의 도발에 의한 사건이라 주장했다. 그러자 지배 언론은 호들갑을 떨며 북한의 도발을 사실로 단정했다. 순식간에 보복 여론이 형성되고, 군은 확성기를 통한 대북방송을 시작했다. 포탄도 몇 발씩 오고갔다. 남북 당국과 지배 언론은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느라 애를 썼다. 그리고 군사적 긴장이 정점에 이른 것처럼 보였을 때. 판문점에서는 남북 고위급 협상이 열렸다.

마라톤협상이 이뤄지는 동안에 텔레비전에서는 군복 입은 박근혜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리고 사흘째인 8월 25일에 협상은 타결되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정권의 임기 절반이 끝난 날이었다. 북측은 ‘유감’을 표명했고, 남측은 대북방송을 멈추었다. 그밖에 어떤 거래가 오고 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군사적 긴장이 해소된 사실에 대하여 다들 안도의 숨을 쉬었다. 정권의 임기 반환점을 겨냥하여 기획된 식상한 드라마 느낌이 났다. 그리고 드라마가 끝날 무렵 박근혜의 지지율은 20%대에서 50% 가까이 치솟았다.  

그 사이,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을 것 같던 국정원 해킹 스캔들도 잠잠해졌다. 현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세월호 참사 500일도 비교적 조용하게 넘어갔다. 박근혜 정권은 회복한 지지율을 토대로 이른바 ‘노동개혁’ 등 과잉착취를 위한 반노동적 법안들을 밀어붙일 힘 또한 얻게 되었다. 남과 북 어느 쪽의 작품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임기반환점에 일어난 한 편의 드라마로 박근혜 정권은 가볍게 궁지에서 탈출했다. ‘한여름 밤의 불장난’으로 꿩도 먹고 알도 먹은 셈이다.

안보 위기로 정치적 궁지에서 벗어나는 해묵은 수법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여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건 남북한 지배계급의 해묵은 수법이다. 지난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사실상 전시체제를 유지하며 철저한 반공이데올로기를 퍼뜨리며 박정희가 장기독재체제를 구축했다. 1980년대 벽두에는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가 안보위기를 조장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광주민중을 학살했다. 더불어 남한 극우지배세력은 대통령선거 때마다 북한과 군사적 긴장 조성을 거래하는 조짐을 보여 북풍(北風) 논란을 일으켰다. 1997년 대선 과정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을 비롯한 3명의 정부 인사가 베이징에서 북한의 고위 인사에게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줄 것을 요청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른바 ‘총풍’ 사건이다.
한편 처음부터 기획된 것은 아니지만, 원인 불명의 사고를 정치적 의도에 따라 북한의 도발로 규정하며 군사적 긴장과 안보 위기를 조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천안함 침몰 사건이다. 애초에 군은 이 사건을 좌초 등에 의한 침몰 사고로 접근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억지로 증거를 끼워 맞추며 북한 어뢰에 의한 피격 사건으로 몰아갔다. ‘사고’는 ‘피격’이 되었고, 그로써 남북 간에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면서 국내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은 파묻히고 말았다. 당시 이명박 정권은 또한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며 임기 중반을 맞은 터였다.



이번 비무장지대 지뢰 사건 또한 증거에 따라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라 결론에 따라 증거를 끼워 맞추는 방식의 특유한 수사기법을 보여주었다. 그 점에서 천안함 사건과 닮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사건 현장에 대한 정보를 미리 통제함으로써 외부의 의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그로써 사건은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이는 곧 박근혜에 대한 지지율 상승으로 직결되었다.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보다 한층 진화한 안보 위기 활용 솜씨를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전쟁 위기를 오히려 전쟁의 본질 살피는 계기로 삼아야  

아무리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통치세력은 군사적 긴장을 이용한 전쟁 도박을 이골이 나도록 벌여왔다. 그것은 전쟁에 대한 인민의 공포가 그만큼 뿌리가 깊은 까닭이다. 수백 만 명의 희생자를 낸 한국전쟁에 대한 끔찍한 기억은 지금도 집단적 상처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다 보니 휴전선의 사소한 충돌 하나로도 한반도 전체가 과도한 군사적 긴장에 휩싸이게 되고, 전쟁이라는 가상의 이슈가 현실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을 덮어버렸다. 그러니 통치 권력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전쟁 도박의 유혹에 군침을 흘릴 수밖에.

그런데 전쟁을 볼모로 정치적 도박을 벌이는 정권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정부를 반대하거나 비판하던 쪽의 무기력한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 이번 지뢰 사건에 대해서도 야당들은 닭 쫓던 개처럼 지붕만 쳐다보다가 협상 타결에 마지못해 박수를 치거나 그저 방관하는 관객으로 머물렀다. 진보임을 자처하는 단체나 개인들은 정권의 전쟁 도박에 고개를 흔들며 의혹을 보내긴 했지만, 똑 부러진 목소리를 낸 경우는 없었다.

군사적 긴장이 조성될 때마다 대중의 반응 또한 다채롭다. 예컨대 전쟁이 터지면 전장에 나가 목숨 걸고 싸우겠다고 ‘애국심’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개죽음 당하기 싫다며 피난처를 들먹이는 사람도 있다. ‘군대도 안 간 대통령’이 설친다는 식의 비난을 퍼부어 병역의무를 되새기게 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미국이 가지고 있는 전시군사작전권 문제를 들먹이며 ‘자주국방’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도 들린다. 전쟁이 터지면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를 추정하는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반전과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북평화통일이 이루어져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사라져야 한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목소리들은 대체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틀 안에 갇혀 있다. 물론 제도권 역사교과서를 통해 전쟁을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의 비극적 충돌로만 배워온 사람들로서는 당연히 드는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60년간 남북의 지배 권력이 휴전상태의 대치상황을 이용하여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해온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볼모로 한 군사적 긴장은 상대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자국민을 협박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남한과 북한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남한 내 지배계급과 피지배 인민의 대립구도 안에서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어 온 사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되풀이되는 군사적 긴장 국면에서 과연 전쟁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모색해야 한다.

전쟁은 계급착취를 강화하는 수단


자유주의 역사가들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한다. 이 말은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인식을 동반한다. 하지만 현생인류가 출현한 이후 4만 년의 역사 가운데 전쟁으로 점철된 인류의 역사는 기껏 2천 년∼3천 년가량에 불과하다. 농경이 정착되어 충분한 잉여생산물이 발생한 무렵이다. 이때부터 인간은 짐승을 사냥하던 무기로 인간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두고두고 식량과 재화를 생산하는 노예로 부려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매우 매력적인 사냥감이었다. 그로써 전쟁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한 마디로 전쟁은 계급사회의 발명품인 것이다.

동족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데 맛이 들린 세력은 끊임없이 전쟁을 발전시켜 왔다. 그리하여 지배계급의 권력적 이익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응징과 보복이니 독재자로부터의 해방이니 하는 다양한 명분을 개발하여 숱한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가진 게 많아서 지킬 게 많은 자들은 카운터 뒤에서 명령을 내리고, 정작 지킬 게 별로 없는 가난한 인민들은 일선에서 피 흘리며 이들의 명령을 수행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계급국가가 일으킨 전쟁은 계급착취를 강화하는 쪽으로 귀결되었다. 인민의 피로 지배계급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며 계급착취를 강화하는 데에 전쟁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간 피지배 인민의 피로 자신의 재산을 축적해온 지배계급은 제국주의 블록을 형성하고서 세계를 지배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게다가 앞으로도 전쟁의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또한 그런 구도 안에서 작동한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정부가 들어선다 한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 위험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민 스스로의 힘뿐이며, 인민 스스로가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주체로 나설 때 그 힘은 발휘될 수 있다.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와 싸워야 하는 중요한 이유도 그것이다.

관련기사
한반도 평화는 민중들의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지켜낼 수 있을 뿐이다

기사평쓰기
번호 제목 평점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등록된 게시물이 없습니다.

HTML코드 복사하기 (블로그나 카페에 바로 붙여넣기 하실 수 있습니다)


중국 경제위기와 세계 대공황의 재점화
롯데가 민족자본이라면 한국 노동자들이 행복해지나?
[한국의 사회주의, 그 길을 묻다(4)] <해방>이 묻고, 양효식 동지가 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