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5일 92
해방 > 92호 > 국제

미국의 ‘사회주의자’ 샌더스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
황정규  ㅣ  2015년 9월 5일

 



샌더스 열풍의 배경

대선을 일 년 앞둔 미국은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예비후보의 열풍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런 열풍의 주인공은 미국 북동부 버몬트 주 상원의원을 지낸 버니 샌더스이다. 지난 4월 30일 민주당 예비경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을 한 샌더스는 예비경선 출마 선언 두 달 만에 1500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모금하였다.

그의 주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모두 미국의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부자 증세, 월스트리트 규제와 초대형 금융기관 해체, 정부가 운영하는 전 국민 의료보험 도입,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보장 확대, 공공기금에 의한 선거, 기후변화 대응 정책 등의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1900년대 초 미국의 대통령 후보로 5번이나 출마한 적 있는 유명한 사회주의자 유진 뎁스를 존경하여 자기 사무실에 유진 뎁스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있으며, 스스로를 거리낌 없이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회주의가 주류정치에 전혀 발 딛고 있지 못하는 좌파 정치의 불모지인 미국에서 ‘사회주의’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기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샌더스가 미국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배경으로는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우선 미국자본주의가 낳고 있는 심각한 사회모순에 대해 대중들이 염증을 느끼고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샌더스의 정책요구에서 확인했듯이, 샌더스 진영 자체가 1929년 대공황 이래 최악의 소득불평등을 부각하며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다.

두 번째로, 2011년 월가점거운동부터 시카고 교사파업, 최저임금 15달러 투쟁 등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고양되면서 이 운동이 정치적 영역에서 자신의 표현을 찾으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시애틀 시의회선거에서 “사회주의 대안” 크사마 사완트의 당선, 작년 말 뉴욕 주 선거에서 녹색당 후보 호위 호킨스의 선전 등, 최근 선거에서 좌파세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국주의자’ 샌더스의 본모습

2008년 대공황 이후 악화된 삶의 조건, 이에 맞선 노동자민중 투쟁과 좌파정치세력의 성장을 배경으로 버니 샌더스가 등장하였다. 샌더스가 등장하자 미국의 많은 좌파 세력들은 진보적 정책을 실현하고 좌파가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샌더스 진영에 대거 합류하고 있다.

가령 월가점거운동에 참여했던 활동가들은 “버니를 지지하는 사람들(People for Bernie)”이란 단체를 만들어 샌더스 예비경선에 동참하였다. 최근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좌파잡지인 “자코뱅”의 편집자 바스카 순카라도 이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는 “운동의 건설 기회로 보면, 샌더스의 입후보는 장기적으로 좌파를 강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사회주의”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쓰고 있는 샌더스 때문에, 사회주의라는 말이 미국 사회에서 과거와는 다르게 부담감 없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라는 낙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사회주의자들은 샌더스에 기대를 거는 좌파세력에 대해 강한 경고를 날리고 있다. 샌더스의 정치이력이 매우 진보적인 것처럼 치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샌더스는 민주당과 독립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는 오랜 세월 민주당과 정치행보를 같이 해왔고, 꾸준히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지해왔다. 그래서 버몬트 주 민주당 거물인 하워드 딘은 1990년대 “당시 버니 샌더스는 의안의 98%가량 민주당 쪽에 투표했다”고 이야기하였다.

• 그가 노동자권리를 위해 싸웠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버몬트 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공부문 노동자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어서 ‘버니는 어디 있냐’는 소리를 듣고 있다. 폭격기 F-35를 버몬트에 배치하려는 국방부의 계획에 대해 노동자들은 반대한 반면 샌더스는 찬성하였다.

• 인종주의에 대한 그의 태도도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흑인에 대한 경찰의 가혹행위와 사살에 대해서, 그는 오히려 경찰을 두둔하는 발언을 하였다.

• 그는 노동자의 일자리와 불평등한 부의 재분배 문제를 꾸준히 거론해왔지만, 그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와는 전혀 무관한 ‘배외주의’에 입각해 있다. 그는 미국의 노동자들을 위해 중국 등 다른 나라를 배격해야 하고 이민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점에서는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과 행보를 같이해왔다.

• 그의 명성 중에는 이라크전쟁 반대가 들어있다. 그러나 그의 과거를 살펴보면 미국의 제국주의 전쟁에 꾸준히 지지를 보내왔다. 가령 1999년 나토의 유고침공과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찬성하였다. 이라크전쟁에서도 의회 결의문에 반대를 했을 뿐, 전쟁예산을 배정하는 데에는 꾸준히 찬성해왔다. 또한 그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일방적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계속 지지해왔다.

• 샌더스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사실 통념적으로 볼 때 “사회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사회주의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샌더스의 정치행적을 살펴보면, 그를 ‘사회주의자’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는 사라지고 만다. 오히려 그는 자국 노동자들의 처치를 다른 정치인보다 조금 더 신경 쓰는 ‘제국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좌파정치에서 고질적인 차악주의

게다가 미국의 사회주의자들이 샌더스를 경계를 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샌더스의 역할이, 그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는 많은 좌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좌파의 정치적 공간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좌파를 민주당으로 재포섭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샌더스를 “좌선회하여 민주당 바깥으로 떠돌 수 있는 활동가와 유권자들을 민주당의 울타리 안으로 다시 몰고 오는 임무를 맡은 ‘양치기개’”로 묘사하고 있다.

미국 정치사에서는 공화당-민주당 양당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진보적 제3당 건설 시도가 적지 않았다. 샌더스가 존경해마지 않는 유진 뎁스와 그가 속해있던 사회당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러나 대공황과 뉴딜 시대를 거치면서 노동자와 좌파운동은 정치적으로 민주당의 그늘 아래로 흡수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후부터 노동자민중 투쟁이 고양되고 좌파세력이 부상할 때마다, 이 급진적 흐름은 새로운 유력 좌파정당의 형성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진보적 탈을 쓴 인물을 내세워, 급진화된 노동자, 좌파세력이 민주당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다시 민주당으로 흡수되게 만드는 정치적 기제를 계속 작동시켜 왔다. 그 결과 스스로의 대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화당이라는 더 큰 악에 맞서 민주당이란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미국 좌파 정치문화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기제를 이르러 ‘차악주의’라고 한다. 1960년대에는 유진 맥카시, 1980년대에는 제시 잭슨, 2000년대에는 데니스 쿠시니치가 이러한 역할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이제 버니 샌더스가 이 역할을 맡게 되었다.

무엇보다 독자파라고 알려진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예비경선에 참여하겠다는 것 자체가 이미 좌파세력의 독자적 성장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버니 샌더스 스스로가 제3후보로 대선에 임하지 않은 이유로 민주당 표를 깎아 먹어 결과적으로 공화당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민주당 예비경선의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예비경선에서 바람이야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경선에서 승리하는 게 사실 상 불가능한 현실에서, 이것은 샌더스를 지지한 세력들을 민주당 주류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샌더스의 존재는 기업과 주류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보수적인 민주당에 대한 강력한 비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민주당에게 진보적인 이미지로 이미지 세탁을 해주기 때문에 향후 대선에서 민주당을 유리하게 만들어준다.

만약 미국의 좌파세력이 또 다시 민주당의 품으로 흡수되지 않으려면, 샌더스에 대한 기대로 운동의 에너지를 허비하기 보다는 당장은 성과가 나지 않지만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샌더스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산 유진 뎁스는 “나는 내가 원하지 않지만 현재 갖고 있는 것을 위해 투표하기 보다는 내가 원하지만 현재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위해 투표하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샌더스의 열풍과 비교하여 지금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지는 말이라 생각된다.

샌더스 열풍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묘한 기시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이 붕괴되고 민주대연합이 횡행하는 한국의 현실이 미국의 정치지형과 유사해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샌더스 열풍 소식이 주류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미국 좌파정치의 깊은 속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막연한 기대감을 갖는 모습도 발견된다. 이런 섣부른 기대감이 한국에 이전된다면, 민주대연합의 망령은 다시 우리를 사로잡을 수밖에 없다. 샌더스 열풍 속에 담긴 정치적 고민은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에게도 공통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샌더스 열풍을 유념하여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미국 좌파세력이 ‘양치기개’ 샌더스의 벽을 넘어 전진할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관련기사
[월가를 점령하라] 보라, 이것은 세계를 뒤흔드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이다!
미국의 노동자, 최저임금 15달러를 요구하다!
미국 패스트푸드 노동자 파업을 통해 본 남한의 현실

기사평쓰기
번호 제목 평점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등록된 게시물이 없습니다.

HTML코드 복사하기 (블로그나 카페에 바로 붙여넣기 하실 수 있습니다)


중국 경제위기와 세계 대공황의 재점화
롯데가 민족자본이라면 한국 노동자들이 행복해지나?
[한국의 사회주의, 그 길을 묻다(4)] <해방>이 묻고, 양효식 동지가 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