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5일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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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의 실체, 자본주의
주현우  ㅣ  2015년 9월 5일



포기를 권하는 헬조선

 2011년 경향신문을 통해 처음 제시된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 이래 최근 들어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얹혀사는 ‘캥거루족’을 포함한 ‘8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집, 인간관계, 꿈, 희망, 자아 포기)’가 신조어로 떴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제는 이처럼 꿈도 희망도 없는 현실을 조롱하는 ‘헬조선(지옥 같은 조선)’이란 단어가 20~30대 사이에서 자조 섞인 푸념조로 널리 사용된다고 한다. 심지어 같은 명칭의 인터넷 사이트까지 등장해 한국 사회의 각종 부조리와 기막힌 현실을 공유하고 있는데, 이제는 현실과 지옥의 구분이 의미 없는 시대가 된 셈이다.

주류언론이 말하는 헬조선

노동유연화를 빙자한 비정규직의 확대와 야간노동 그리고 저임금 속에서 어려워지는 현실을 빗댄 이 신조어에 대해 다수의 매체가 나름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조중동으로 통칭되는 보수 언론은 ‘헬조선’을 이야기하며 청년들이 현실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에 약간의 공감을 표하면서도 이 문제를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이해하기보다 세대 간의 갈등으로 축소시켜 해석하고 있다. 서울 모 대학 교수의 말을 빌려 상대적으로 사회적 신분상승을 주입받아온 중산층의 자녀들이 바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란 분석을 제기한 조선일보가 대표적이다.

한겨레나 경향 등 소위 진보적이라 분류되는 매체들 역시 ‘헬조선’의 원인을 두고선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조중동에 비해 실제 청년들의 삶을 옥죄는 요소들을 보다 세밀히 파악하고 사회구조 일반이 해체되고 있음을 폭로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주로 고발하는 박근혜 정부의 실패나 기형적인 한국 경제구조는 과거 그들이 지지했던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집권기에도 존재했거나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일들인 만큼, 보다 근본 원인을 따져 물어야만 한다.

문제는 자본주의다.

‘헬조선’을 별칭을 내걸은 사이트의 ‘이용 매뉴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애국에 대한 이데올로기와 현실이 괴롭더라도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온다, 그러니 노예처럼 일해라는 기득권이 이데올로기로 만나 …… 선진화된 대한민국에 다가가려면 조금 더 냉소적인 시각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부의 상대적 편중을 결합시키고 있는가? 혹 한국 자본주의의 후진성이 문제인걸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는 우리가 선진국이라 칭하는 서구보다 한국에서 훨씬 더 발전된 형태로,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구조로 기능하고 있다. 맑스가 <자본론>에서 말한, “자본의 축적에 대응한 빈곤의 축적, …… 따라서 한 쪽 끝의 부의 축적은 동시에 반대편 끝의 빈궁·노동의 고통·노예상태·무지·야만화·도덕적 타락의 축적”이 바로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우리가 지옥이라 부르는 현실은 바로 자본주의 그 자체인 것이다.

헬조선에서 계속 살 것인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조차 보장받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더 이상 내주고 싶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OECD 회원국 중에서도 부동의 자살률 1위를 차지하는 현실이 바로 오늘의 지옥불반도, 헬조선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더 포기해야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더 포기할 것이 남아있기는 하는가? 생각해보니 몇 가지 남아있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먼저 현실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원인을 밝히기보다 외관상의 문제만을 서술한 채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기성 언론과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나아가 단순히 연명하는 것을 넘어 인간 존엄성을 되찾고 삶의 주인이 되어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우리의 사고를 옥죄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과 노예의 태도를 벗어던져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이전에 우리가 포기한 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한 순간에 가능한 건 아니다. 한편으로 꾸준히 현실을 고민하고 분석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헬조선을 영구존속시키는 사고방식에 머무르게 될지도 모른다. 서양 속담 중 지옥으로의 길도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현실이 지옥 같다는 냉소를 넘어 현실을 바꾸는 실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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