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5일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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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운동의 ‘사법화’와 헌법에 대한 오해
박남일  ㅣ  2015년 7월 15일





지난 5월 28일, 헌법재판소는 해직 교사를 교원노조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않은 교원노조법 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더불어 지난 2013년 고용노동부가 해직교사들을 빌미로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한 행위의 근거가 된 법률 조항에 대하여 “교원노조의 자주성·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합원 자격을 한정한 것은 적절하다”고 밝혔다. 조합원 자격을 제한한 법률 자체가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훼손하는 일임을 감안하면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초라하고 궁색한 변명일 뿐이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해직교사가 전교조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 가입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을 판시함으로써 법원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 대법원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에 대한 효력집행정지를 결정한 서울고등법원의 원심을 파기했다. 물론 아직 항소심 재심의와 교원노조법 시행령에 대한 헌법소원이 남아 있지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단이 다시 뒤집힐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헌법재판소 합헌 결정으로 전교조는 사실상 법외노조임이 확정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전교조는 “헌재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애초에 헌법재판소가 역사의 시계추를 제대로 돌릴 가능성은 없었다. 그간 헌법재판소가 노동운동과 관련된 사안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진전된 판결을 내린 적은 단언컨대 없었던 까닭이다. 사실 지난해에도 헌법재판소는 단체행동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제66조 제1항과 교원노조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교원노조법 제3조에 대해서 모두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었다.
 
반노동적 판결 양산하는 헌법재판소와 법원

물론 헌법재판소가 역사적으로 진전된 판결을 내린 적도 있다. 지난 2011년, 헌법재판소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그리고 2013년에는 유신헌법 시절의 대통령긴급조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또 호주제와 동성동본 결혼금지 등과 관련된 민법 조항에 대해서도 차례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으로써 양성평등 실현에 기여했다. 이밖에 영화 사전 검열을 허용한 영화법과 본인확인 인터넷 실명제 관련법에 대해 위헌, SNS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서는 한정위헌 결정을 내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노동자의 지위나 노동조건 등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친자본적인 결정을 내려왔다. 예컨대 1990년에 헌법재판소는 노동법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이었던 노동쟁의조정법의 제3자 개입 금지조항에 대하여 합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자본과 정부의 노동운동 탄압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또 2003년에는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쟁의에 대하여 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사전 직권 중재 회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62조 3호 등의 독소조항에 대한 위헌 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공무원의 노동운동과 관련된 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특히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요컨대 2005년에는 공무원의 집단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지방공무원법 관련 조항에 대하여 합헌 결정을, 이어 2007년에는 공무원의 노동운동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에 대해서도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한편 2008년에는 조합원 가입과 단체교섭을 제한하며 단체행동을 금지한 공무원노조법 관련 조항들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자 헌법재판소는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노동3권과 관련된 공무원 노동자의 요구를 아예 법적으로 차단하기에 이른다.

헌법재판소는 집회, 시위에 대해서도 지극히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지난 2014년, 미신고 집회와 시위의 주최자를 처벌토록 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해당 조항에 대하여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리하여 신고 되지 않은 집회 주최자를 집회 내용과 상관없이 국가가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남겨두었던 것이다. 나아가 이 합헌 결정은, 사전 신고 의무가 없는 1인 시위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여럿이 진행하는 경우까지 광범위하게 처벌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법원 판결의 문제인가, 헌법의 문제인가?

이처럼 줄줄이 반노동적 결정을 내놓는 헌법재판소에 박자를 맞추어 대법원 또한 노동자를 울리는 판결을 양산해왔다. 최근 경향신문에서 지난 25년간 정리해고와 쟁의행위 관련 대법원 판례를 전수 조사한 바에 따르면 파업 등 노동쟁의 행위 관련 사건의 85.5%를 불법으로 판결하고, 해고무효소송의 71%에 대하여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노동자들을 궁지로 내몰았다. 더불어 대법원 전원협의체 판결 20건 가운데서도 75%에 해당하는 15건이 노동자에게 불리한 판례를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1992년에 대법원 전원협의체는 노동자들 동의 없이 노동자에게 불리하도록 변경한 취업규칙의 효력을 인정해주었다. 또 1995년에는 파업 기간의 무노동무임금 적용에 대한 합법 판례를 남김으로써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짓눌렀다. 

이처럼 대법원은 지난 20여 년 동안 정부의 고용유연화 정책 맞추어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 기준은 완화하고, 단체행동 규제는 강화하는 방향으로 판례를 악화시켜 왔다. 한마디로 노동 관련 사안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정치적 흐름에 종속된 채 정부와 자본의 노동운동 탄압에 법적 명분을 제공해왔다. 그렇다면 현행 법 체계 안에서 법원이 판결만 제대로 나오면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을까? 

법원의 반노동적 판결을 지배 권력의 압력이나 법관의 성향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근본적으로 실정법에 대한 최고의 규범인 헌법에서부터 노동자가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대한민국 헌법 제9장은 노동자는 배제한 채 자본가를 경제 주체로 설정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또 헌법 제119조에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함으로써 노동자를 경제 주체에서 배제하고 있다. 엄밀히 따져보면 헌법 자체가 노동자를 경제의 주체가 아닌 착취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반노동적 헌법을 모법(母法)으로 한 모든 실정법에서도 당연히 노동자의 권리는 배제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지금의 헌법 아래서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반노동적 판결이 이상할 것도 없다.  

흔히 87년 개정 헌법은 이전의 군사독재 시절 헌법에 비해 민주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그 헌법에 따라 설치된 헌법재판소를 민주주의의 보루로 보는 견해도 그리 드물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유민주주의로 표현되는 지금의 헌법정신은 노동 착취를 사명으로 삼고 있는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 하위 법률 또한 친자본, 반노동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법원의 부당한 판결도 문제이지만, 그 전에 헌법 자체의 문제를 되짚어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법을 지키는 투쟁에서 법을 바꾸는 투쟁으로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며 산화했다.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2015년 5월, 양우권 열사는 “헌법에 보장된 노조활동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목을 맸다. 두 열사가 남긴 말에는 노동자들이 법에 표현된 최소한의 권리라도 제대로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간곡함과 더불어, 법이 결코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이 묻어 있다. 사측과 갈등을 겪던 노동자들이 줄줄이 목숨을 끊는 현실에도 법은 여전히 노동자들을 외면한다. 예나 지금이나 노사갈등에 처한 자본가들에게, 공권력과 법은 전가의 보도인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노동운동 진영에서도 법원부터 가고 보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일각에서는 ‘운동의 사법화’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향한 노동자들의 발걸음은 줄어들지 않는다. 물론 노동운동에서도 경우에 따라서 사법투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계급적 이슈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어김없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실제로 법원을 찾았다가 억울한 판결 앞에서 “누구를 위한 노동법이냐?”, 또는 “사법정의가 무너졌다”고 절규하는 노동자가 나날이 늘고 있다.

안타깝게도 노동법은 노동자를 위한 게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적대적 계급관계를 반영한 지배 수단이다. 사법정의라는 개념도 다분히 계급적이다. 노동자를 짓밟아도 자본가계급에 유리하면 그 판결은 정의롭다. 그러니 일부 노동자들 사이에서 “법원에 가면 패가망신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이처럼 노동법에 의한 노동자 통제가 점점 심화되는 마당에, 노동자들은 법을 지키는 투쟁이 아니라 법을 바꾸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실에 맞지 않은 낡은 매뉴얼은 파기한 뒤에 새로 작성해야 한다. 헌법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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