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8일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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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을 배신하는 본질: 영국 2015년 총선 들여다보기
황정규  ㅣ  2015년 5월 28일

7일 열린 영국의 총선은 보수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되었다. 많은 선거전문가들이 최종결과 예측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보수당과 노동당의 경합이 예상되었지만, 정작 뚜껑을 열자 보수당은 331석을 얻어 의회 과반의석인 326석을 넘는 다수당이 되었다. 지난 2010년 선거에서 307석을 얻어 57석을 얻은 자유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했던 보수당은 이번 선거 결과로 단독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자유민주당은 8석을 얻어 정치적으로 대거 몰락하였다.

이러한 영국 총선 결과를 보고 많은 이들은 영국 사회의 보수화를 상상하기 쉬울 것이다. 실제로 보수당의 압승으로 더 강력한 긴축정책과 노동자민중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급진좌파 정치세력의 약진이 두드러진 유럽의 정치지형에서 이번 영국의 선거결과는 영국의 예외성을 새삼 재확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글은 이와는 다른 해석을 내놓고자 한다. 즉 영국총선의 결과는 자본주의 모순으로 커져가는 노동자민중의 불만이 영국의 정치적 조건 속에서 표현된 것이다. 
 



민심과 대의정치의 불일치


이러한 해석이 얼마나 타당한지 위해서는 이번 총선 결과를 2010년 총선과 비교하여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전체 투표율을 살펴보자. 2010년 투표율은 65.1%였던 것에 비해 2015년 투표율은 66.1%로 1퍼센트 상승하였다. 이 상승은 스코틀랜드의 투표율이 63.8%에서 71.1%로 상승한 결과였다. 이 점은 주목할 만한대, 나중에 설명할 것처럼 스코틀랜드의 정치적 변동이 영국 정치 전반의 변동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를 제외한다면, 2010년과 비교해 투표율의 변화는 크게 없었으며 이는 현지에서 과거 노동당에 투표하였던 상당수의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서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이제 선거 결과를 살펴보자. 보수당은 의석수에서 2010년 307석에서 331석으로 24석을 증가시켰다. 현상적으로는 압승을 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득표율을 들여다보면, 투표율의 변동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2010년 36.1%에서 2015년 36.9%로 0.8% 증가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득표율과 의석수 변동 사이의 커다란 격차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하는 것이 영국 총선 결과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이는 노동당의 선거결과에서도 확인된다. 노동당의 의석수는 2010년 258석에서 2015년 232석으로 26석 감소하였다. 그러나 득표율을 살펴보면 2010년 29%에서 2015년 30.4%로 오히려 1.4% 증가하였다. 특히 노동당의 아성이었던 스코틀랜드에서의 참패를 제외하고 보면, 비스코틀랜드 지역에서 14석의 의석 증가가 있었다. 사실 과거 노동당의 지지자들이 이젠 투표일에 집안을 지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패배조차 감지덕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당이 득표율에서 큰 변동이 없는데도 압승을 한 직접적 요인은 영국의 선거제도 때문이었다. 영국은 소선거구제·단순다수제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는데, 이러한 선거제도 하에서는 득표율에 상관없이 1위자가 당선되며, 1위가 아닌 후보에 투표한 사람들의 표는 대표되지 않는 사표가 된다. 단순다수제가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를 정확하게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많은 나라들이 중대선거구제,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채택하는 추세인데도, 영국의 선거방식은 여전히 아주 낡은 선거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급진적 대안을 제시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가령 유럽의 각국에서 새로운 급진좌파세력이 급격하게 성장하여 권력에 접근하고 있는 반면, 켄 로치 등 영국의 좌파세력들이 노동당 밖의 좌파정당을 만들자고 주장하며 창당한 좌파통일당(Left Unity)과 영국 좌파세력의 선거연합체인 “조합주의자·사회주의자 연합”이 이번 선거에서 미미한 결과만을 내놓은 배경에는 단순다수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어찌 보면 현재의 선거제도가 지닌 유일한 의미는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UKIP)의 등장 역시 저지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2010년 92만명이 투표하여 3.1%를 얻었던 영국독립당은 이번 선거에서 388만표로 12.6%를 얻어 득표율만으로는 전체 3위를 하는 급성장을 보여주었다. 노동당의 정치에 실망하고 새로운 좌파세력의 등장이 더디어지면서 이러한 불만 중 일부가 극우 영국독립당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대도 영국독립당은 한명의 국회의원만을 당선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보수당은 이번에 단순다수제 선거제도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이렇게 선거결과를 자세하게 분석한 것은 단지 선거제도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영국경제가 회복하고 있다는 보수당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당수 에드 밀리반드가 너무 좌파적이고 친기업적 신노동당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블레어 전총리를 위시한 노동당 우파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황은 매우 비관적이고 현행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대의구조 하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요구는 전혀 표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당의 압승은 이런 간극이 어마어마하게 벌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간극은 해소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해소되는 방식은 영국에서 새로운 노동자 정치의 등장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스코틀랜드국민당의 급성장과 반긴축

이번 총선에서 영국의 새로운 정치적 흐름을 엿볼 수 있는 곳은 스코틀랜드였다. 작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를 하였으나 독립에 실패한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국민당이 이번 선거에서 총 59석 중 56석을 싹쓸이하였다. 이러한 선거 결과에 대해, 스코틀랜드에서 민족주의가 부흥하고 있는 증후로 자칫 잘못 해석할 수 있다. 현상적으로는 스코틀랜드 독립을 주장하는 스코틀랜드국민당의 압승으로 드러나고 있어 이런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단 스코틀랜드국민당의 당색은 전혀 보수적이지 않다. 1934년 창당된 스코틀랜드국민당은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일관되게 주장하여 왔지만 정치적으로는 사민주의정당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러한 정치색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국민당이 이번 선거에서 압승하게 된 이유는 이 당이 반긴축, 반핵미사일 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한 유일한 정당이라는 사실에 있다. 반핵미사일 정책은 군사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반긴축정책과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영국은 유일한 핵폭탄 투발체로 트라이던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운용하고 있는데, 캐머런 보수당 정부는 이 핵미사일을 운용하는 핵잠수함이 노후화되어 대대적인 교체, 보수를 계획하고 있다. 그 예상비용은 물경 200억 파운드(한화로 약 34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요컨대 세계대공황 이후 등장한 “긴축”이라는 자본가계급의 공격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반대가 스크틀랜드 선거결과로 드러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국의 예외성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확인되는 보편성을 보게 된다.

스코틀랜드에서 민족주의가 강화되었다는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스코틀랜드인의 민족정체성을 묻는 최근의 연구발표에 의하면, 스코틀랜드인 정체성만을 갖는다는 사람들의 수는 오히려 감소하였다. 즉 민족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대공황 이후 지속된 긴축과 자본의 공격에 대한 반대가 스코틀랜드 고유의 정치지형과 결합하여 기존 정당에 대한 반대, 스코틀랜드국민당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스코틀랜드는 전통적으로 노동당의 텃밭이었다는 점이다. 바로 전 선거인 2010년 선거만 해도 노동당은 59석 중 41석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보수당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노동당의 정책은 “친긴축(austerity-lite)”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았고, 선거가 패배한 후엔 노골적인 “긴축(austerity)”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당의 반노동자적 성격이 이번 선거패배의 결정적 원인이라면, 스코틀랜드에서는 이것이 정치적 파산이라는 가장 극명한 형태로 드러났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영국총선은 보수당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만약 사물의 현상형태와 본질이 직접적으로 일치한다면 모든 과학은 불필요하게 될 것”라는 맑스의 주장은 여기서 다시 한 번 진실이 된다. 보수당은 약진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정치적 의사를 전혀 대변하지 못하는 낡은 영국의 부르주아 대의구조의 혜택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 반면 투표율의 하락과 스코틀랜드에서의 패배에서 확인되듯이 이미 자본가계급 정당화한 노동당은 노동자 대중의 지지를 상실하고 있다. 영국 내의 특이점인 스코틀랜드는 이러한 정치구조의 균열을 스코틀랜드국민당의 압승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영국 총선 결과는 영국 노동자계급의 현실과 이로부터 비롯된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기존의 정치질서로는 표현해낼 수 없음을 극명한 형태로 드러내고 있다. 영국 부르주아 정치질서의 모순은 지속될 수 없다. 노동자들은 결국 자신의 길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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