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8일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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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비극, 초라한 희극] 권력 부패는 계급사회의 본질
박남일  ㅣ  2015년 4월 8일




‘성완종 스캔들’이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성완종이 누구인가. 초등학교도 못 마치고 맨손으로 상경하여 사업을 일군 뒤 마침내 도급 순위 20위권 건설회사 회장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장학재단과 충청포럼을 운영하며 고향에서 다진 기반으로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어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도 했다. 비록 선거법 위반으로 임기를 채우진 못했지만, 그는 정권 실세들에게 숱한 정치자금을 뿌려대며 이른바 ‘정경유착’ 부패 사슬을 이어온 한국형 토건자본가의 전형이었다.

그런 성완종이 부패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은, 그가 죽음을 무릅쓰고 공개한 리스트 때문이었다. 대선 부정선거 의혹과 여러 가지 미숙한 통치 행위로 위기에 몰린 박근혜 정권은 집권 3년차를 맞아 뜬금없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이명박 정권의 자원외교 비리에 사정(司正)의 칼날을 들이댔다. 그 칼날에 베인 사람이 바로 경남기업 회장 성완종이었다. 위기에 몰린 성완종은 사정 정국을 주도하고 있던 국무총리 이완구 등 정권 실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요청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싸늘한 냉대뿐이었다.

돈만 받아 삼키고 나 몰라라 하는 이들 정권 실세들에 대해 성완종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을 터였다. 그래서 자신이 돈을 건넨 정치권 인사 8명의 리스트를 세상에 공개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가운데 1명은 이명박의 측근이었고, 나머지는 현직 국무총리, 전직 또는 현직 대통령비서실장 등 비롯한 박근혜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었다. 그로써 ‘부패 척결’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사정 정국을 주도한 박근혜 정권의 복판에 성완종이라는 부메랑이 꽂히고 만 것이다.
 



‘사정 정국’은 레임덕의 반증


부패 척결을 내세우며 사정의 칼날을 치켜드는 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미 익숙한 일이다. 요컨대 ‘3당합당’이라는 꼼수로 탄생한 노태우 정권은 ‘사정정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정적들의 부패로 자신의 무능과 부패를 덮으려 했다. 그러나 미래 권력으로 떠오르던 김영삼 측의 반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범죄와의 전쟁’을 운운하며 사정의 칼끝을 힘없는 잡범들에게 돌리고 말았다. 그 사이에도 노태우 자신은 수천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노태우 정권의 부패 척결은 자신의 거대한 부패를 은폐하는 수단이었다.

그 뒤 사정 정국으로 재미를 본 권력자는 김영삼이었다. 집권 초부터 자신의 재산상황을 공개하며 사정 칼날을 높이 든 김영삼 정권은 이전 정권의 고위 관료들에 대한 전 방위적인 사정 드라이브를 펼쳤다. 그리하여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을 비롯하여 고위직 검찰과 군 장성 여러 명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이어진 사정 정국에서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김영삼의 정권의 서슬 퍼런 사정 칼날 뒤편에서는 ‘한보사태’라는 초대형 금융비리가 저질러지고 있었다. 또한 김영삼 정권의 부패는 IMF 구제 금융 사태라는 국가적 위기로 이어졌다. 

김대중 정권 또한 취임 첫해에 전 정권에 대한 사정의 칼날을 들었다. 이른바 ‘세풍’ 사건 수사였다. 그 결과 15대 대선 때 이석희 국세청 차장 등이 현대 SK 대우 등 23개 대기업에서 166억여 원을 한나라당 대선자금으로 불법 모금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어 1999년에 김대중 정권은 제2의 사정정국을 펼쳤으나 ‘옷로비 사건’을 덮기 위한 꼼수라는 의혹 속에서 무기력하게 마감되었다. 이어 노무현 정권 또한 이전 정권에 대한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했다. 특검은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구속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노무현 정권은 레임덕 위기를 맞아 정재계를 대상으로 다시 사정 칼날을 들었지만, 핵심 관련자들이 자살을 하는 사태가 이어지면서 흐지부지되었다.



한편 이명박 정권은 집권 2년차에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통해 전임자 노무현을 직접 압박했다. 그러나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고 시골로 내려간 전직 대통령이 자살을 하고 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 정권에 대한 사정으로 국정 주도권을 잡으려던 이명박의 구상은 그로써 완전히 일그러졌고, 오히려 이명박 정권은 “전임 대통령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여론의 부메랑에 맞아 궁지에 몰렸다. 그 여파로, 이듬해 6월 지방자치 선거에서 집권여당 한나라당은 크게 패했다.

지난 수십 년의 한국 현대사에서, 새로운 권력은 자신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부패 척결’을 외쳐왔다. 그리고 적잖은 부정부패 사례를 적발해냈다. 레임덕 위기에 빠진 권력이 과거 권력의 부패를 들추어 자신의 부패를 감추려는 해묵은 수법이었다. 역대 정권의 사정 정국은 곧 레임덕의 반증이었다.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권의 부패 척결 소동 또한 자신의 무능과 부패를 지난 정권의 부패로 덮고 권력 위기의 출구를 찾으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사정의 칼날을 제대로 뽑기도 전에 성완종이라는 강력한 부메랑에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그만큼 기반이 취약한 정권임을 보여준 것이다. 


계급 사회에서 권력 부패는 척결되지 않는다


성완종 스캔들은 많은 이들에게 머잖아 박근혜 정권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박근혜는 성완종 스캔들이 터진 직후, 비난의 화살이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쏟아지는 틈을 타서 비행기를 타고 중남미로 날아가 버렸다. 더불어 현직 대통령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대중적 비난도 나날이 증폭되었다. 여기에 야당은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더니, 이대로 가면 박근혜 정권은 그 부패상이 낱낱이 밝혀진 뒤 결국은 망할 것만 같다. 과연 그것은 가능한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계급사회에서 부패는 척결되지 않는다. 성완종 스캔들은  권력과 자본을 연결하는 부패 사슬의 한 가닥이 끊어진 사고 국면일 뿐이다. 하지만 그 끊어진 고리는 곧 더욱 치밀하고 교묘하게 복원될 것이다. 이미 그 조짐은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의 입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는 로비가 전혀 통하지 않는 정부라는 것이 확인됐다”고. 이처럼 지배 권력은 깃털 몇 개 쯤 과감히 뽑아 던지면서 결국 몸통을 지켜낼 것이다. 지배 권력은 부정과 부패로 생명을 연장하는 까닭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사회에서 부패의 역사는 까마득하다. 먹고 남은 음식물이 부패하듯, 잉여생산물이 발생하면서 그것을 둘러싼 인간들 관계에도 부패와 비리가 시작되었다. 더불어 그것이 오래토록 일상화되면서 지배집단은 부패를 부패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예컨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사람이 사람의 신체를 소유하며 노동을 강제로 수탈했다. 그것은 죄악이었다. 하지만 당시 지배자들은 당연한 일로 여겼다. 집단적 의식이 부패한 결과였다.

노예사회가 망했어도 부패는 척결되지 않았다. 지배 권력은 장원(莊園)이라는 경작지를 매개로 사람을 예속시켜놓고 여전히 그들의 잉여노동을 착취하며 부패를 일상화했다. 게다가 그 정점에 있던 왕실의 부패와 타락은 극에 달했다. 한편 그것은 새로 출현한 자본가계급이 “보라, 저 썩은 무리들을 제거하자”며 그들의 지배체제를 건설하는 명분이 되었다. 그리하여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치 아래, 권력의 부정과 부패를 ‘법치’라는 이름으로 차단하는 자본주의 국가체제를 세웠다.

하지만 자본가계급의 사상과 의식이 그리 건전한 것은 아니었다. 사회의 물적 기반인 생산수단을 독점한 그들은 ‘임금노동’이라는 방식으로 사람의 노동력을 헐값에 거래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화폐, 즉 현금을 매개로 부패의 사슬이 이전보다 훨씬 치밀하고 교묘해졌다. 그 과정에서 자본가계급과 그들 국가의 관료들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숱한 노동대중의 의식을 부패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를 구축했다. 그리하여 일상적 착취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자본과 권력의 거래는 이 시대의 보편적 지배방식으로 발전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본질을 은폐한 말장난이며 속임수이다. ‘보수’를 표방하는 지배계급은 부패의 커넥션을 바탕으로 사악한 생명을 유지한다. 반면 진보는 흥한 적이 없기 때문에 망한 적도 없다. 부패는 보수의 물적 기반이다. 따라서 드러난 부패보다 위험한 건 드러나지 않은 부패이다. 그보다 더 위험한 건, 법으로 보장된 부패이다. 대다수가 부패로 인식조차 못하는 계급 착취의 틀 그 자체가 가장 위험한 것이다. 계급사회에서 부패는 권력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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