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7일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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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비극, 초라한 희극] 새정치연합은 관제(管制)야당인가?
박남일  ㅣ  2014년 6월 27일

세월호 참사로 위기에 몰린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게 제6회 지방선거는 기울어진 운동장 아래쪽에서 벌여야 하는 경기였다. 거꾸로 보수 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에서는 절반은 이기고 시작한 경기였다. 박근혜 퇴진만 줄곧 외쳐도 대중적 지지를 듬뿍 얻어 완승을 거둘 수 있는 경기였다. 그러나 실제 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대중투쟁을 부담스러워하며 오직 세월호 정세 뒤에 숨어서 계산기만 두드리며 득실을 따지는 간교함을 보여주었다. 그로써 새누리당과의 대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간신히 무승부에 가까운 결과를 거두었다. 

결국 이변도 없고 파란도 없었다. "가만히 잊지 않겠다."며 세상을 금방이라도 뒤집을 듯했던 대중적 분노의 열기는 식어버렸고, 원성도 잦아들었다. 제6회 지방선거는 고질적인 양대 권력구조를 고스란히 재생산했다. 새누리당, 새정치연합 등 양대 보수정당은 굳건히 살아남고, 군소 진보 정당은 마냥 쪼그라들었다. 대통령을 지켜달라는 슬로건과 차악(次惡)으로 최악(最惡)을 단죄하자는 슬로건이 뒤범벅이 된 해괴한 선거판은 대중의 분노도, 그것을 대변하는 진보정당도 모두 삼켜버린 블랙홀이었다.

새정치연합은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토착자본가정당

영남지역에서 새누리당이 그렇듯, 지방선거를 통해 새정치연합은 호남에서 철옹성을 구축해왔다. 호남의 선거판은 줄곧 지역 졸부들과 결탁한 토호들 간의 치열한 권력 각축장이었다. 철저하게 그들만의 리그로 고착된 선거판에서, 대다수 고령의 유권자들은 잘 프로그래밍 된 로봇들처럼, 가장 낯익은 놈이나 가장 돈 많은 놈에게 표를 바쳤다. 물론 6회 지방선거에서는 몇몇 무소속 기초단체장이 당선되긴 했다. 하지만 그들 또한 결국은 새정치연합으로 돌아갈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는 없다. 
 
사실 호남의 지방선거는 이름만 바뀐 옛 민주당 독재 체제를 계승하는 통과의례일 뿐이다.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은 야당이 아니라 만년 여당인 셈이다. 부산, 대구에서 2위 후보들이 40%대의 득표율을 얻을 만큼 선전하여 영남의 지역주의에 약간의 균열이 생긴 것을 감안할 때, 새정치연합의 호남 토착 현상은 더욱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 지역주의를 이용하여 토착자본가들과 결탁한 새정치연합은 호남의 토착자본가 세력을 대변하는 수구 여당 노릇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들은 굳이 집권세력에 맞서 야성을 드러내며 투쟁할 필요가 없다. 그들 자체가 기득권 세력이기 때문이다.

사실 새정치민주연합에‘새 정치’가 없다는 것은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사실이다. 정책이나 후보자의 면면도 새누리당과 별 차이가 없고, 지역주의를 깔고 벌이는 선거방식도 비슷하다. 김대중 ․ 노무현에게서 상속받은 지지도와 이미지에 기대며 정부 여당의 헛발질로 인한 반사이익이나 챙기며 먹고 살아도 별 걱정이 없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연합이나 그 밥에 그 나물인 셈이다. 그 때문에 양대 우파정당을 한데 묶어‘조류(鳥類)정당’이라 비아냥거림이 나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낡은 정치세력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느 날 김한길과 안철수가 합작한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침몰 직후 후 구조당국의 태만으로 수백 명의 생명이 무참히 수장되어도, 그 참사 추모 집회 참가자가 무더기로 연행되어도, 노동자의 시신을 경찰이 탈취해도 정부와 여당을 향해 제대로 항의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박근혜가 눈물 쇼를 벌인 직후에 김한길은‘만시지탄’을 들먹이면서도 정부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공표했다. 자신들이 새누리당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2중대 정당임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새정치연합에는 옛 민한당의 피가 흐른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보수야당을 넘어 관제(管制)야당 냄새가 난다. 마치 5공화국 초기에 유치송이 이끌던 민한당(민주한국당)을 보는 듯하다. 1979년 말, 박정희 정권의 붕괴로 등장한 신군부는 제5공화국을 선포했다. 그에 따라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모든 정당을 해체하고, 야당 정치인의 활동을 규제했다. 군부독재를 위한 정치적 포맷(format)을 새로 깔았던 것이다. 그런 다음 1981년 11대 총선을 앞두고 신군부는 여당인 민정당(민주정의당)을 급조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구(舊)신민당 소속 의원 중에서 ‘특별조치법’ 규제를 받지 않던 의원들도 유치송을 중심으로 민한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사실상 민한당은, 권력을 강탈한 신군부가 의회정치의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 어중이떠중이 세력을 규합하여 만든 관제(管制) 야당이었다.

1981년 3월 25일. 11대 총선에서 민한당은 지역구 57석, 전국구 24석, 무소속 입당 1석 등 총 82석을 확보했다. 151석을 차지한 여당(민정당)에 이어 원내 제1야당으로서의 지위를 굳힌 민한당은 민정당 들러리 역할에 충실했다. 그리하여 유치송의 민한당에는 ‘민정당 2중대’라는 꼬리표가 달라붙었다. 그러나 관제야당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는 의석수가 35석으로 줄어든 민한당은, 새로 창당된 신한민주당에 제1야당의 자리를 내주게 되고, 같은 해 12월에는 당 운영에 불만을 가진 소속의원 12명이 집단 탈당하면서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에는 30년 전에 사라진 민한당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사실 지금의 새정치연합이 과거 민한당을 계승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당 ․ 새정치국민회의 등으로 이어진 계보를 거슬러 오르다 보면, 1985년에 민한당을 밀어내고 제1야당 자리를 회복한 신한민주당에 연결된다. 그리고 길게는 해방직후인 1945년 9월에 친일 자본가 김성수와 송진우 등 그의 벗들이 주축이 되어 창당한 원조 부르주아 친미 우파정당인 한민당(한국민주당)에 그 뿌리가 닿는다. 그럼에도 70년 야당의 역사에서 지금의 새정치연합만큼 야성을 잃은 야당은, 민한당 말고는 없었다. 과거 민한당이 전두환 식 군부독재에 협조한 것처럼, 지금의 새정치연합은 박근혜 식 자본독재에 충실히 협조하고 있다.
 
이른바 ‘진보정당’에는 보수야당의 피가 흐른다

한편 박근혜 정권 심판을 내건 이번 6회 지방선거에서 가장 처참한 결과를 받아든 것은 이른바 진보정당들이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 현직 기초단체장들이 줄줄이 낙선했다. 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정의당이나 노동당, 녹색당은 그 존재마저 위태롭게 됐다. 이로써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이어져온 진보정당 운동은 청산될 지경에 놓였다.

진보정당의 침몰 원인은 간명하다. 자본주의 모순에 정면 대응하지 않고 자유주의 보수 세력의 이중대로 우경화한 결과이다. 요컨대 통진당의 몇몇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들은 새정치연합 후보를 위해 선거 도중에 사퇴를 하는 등 스스로 한심한 모습을 연출하기까지 했다. 진보정당은 보수야당의 지지대 역할을 하고, 보수야당은 수구여당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이상한 흐름이 되풀이되면서 어느덧 진보정당에도 자유주의 보수 야당의 피가 흐르게 된 듯하다. 관제야당은 물론이고 진보정당들 또한 한국 사회의 본질적 모순에 둔감하게 된 까닭일 것이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소득 상위 10% 가구의 월 소득은 1062만원, 소득 하위 10% 가구의 월 소득은 89만원이었다. 무려 12배 차이가 난다. 이 구간의 1990년 소득 격차가 8.5배였음을 감안하면 지난 20여 년간 경제적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하게 전개되어 왔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게다가 극빈 가구와 최상위 가구의 소득은 통계에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실제 격차는 훨씬 크게 벌어질 것이다. 예컨대 상위 5%와 하위 5%의 소득 격차는 몇 십 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시장경제는 완전한 실패했다. 지금의 한국 경제는 지난 30년 동안 양대 보수정당이 빚어온 합작품이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정치 풍토에서 이러한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현실이 이러하지만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가난한 인민의 삶을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시장경제를 부르짖으며 자신들을 포함한 자본가에게 더 많은 이익을, 그리고 노동자에게는 더 많은 고통을 안겨주기 위해 온갖 술수를 부리고 있다.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적대적 관제야당과 단호하게 결별해야 한다. 그리고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당당하게 추진해야 한다. 그밖에 어떤 정치공학적 논리도 도탄에 빠진 노동자와 인민을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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