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일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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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좌담회(7)] 베네주엘라 혁명 어디까지 았나?
인터뷰 및 정리 : 김광수  ㅣ  2014년 5월 1일



<베네주엘라 혁명의 전진>

김광수 - 차베스가 집권한지 거의 15년이 다 되어가는 데 베네주엘라는 아직도 실험, 혹은 과도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진전은 어느 정도로 평가할 수 있는지?

허석렬 - 같은 남미라도 쿠바의 경우는 혁명이후 기존 국가기구를 일소하고, 새로운 기반위에서 국가를 설계해 나간 것과는 달리, 베네수엘라는 국가기구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기존 국가기구를 인수한 것이다. 기존의 관료를 유지한 가운데, 민중조직이 있었지만 이들이 혁명을 전면적으로 이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베스 자신이 처음부터 21세기 사회주의를 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민족민주혁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또한 스스로 제 3의길을 천명했었다. 즉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닌 제 3의 길을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집권중에 반혁명 세력의 반동에 의해 위기를 겪었고, 즉 쿠데타도 있었고, 이런 와중에 혁명이 급진화되었다고 보여진다.

정리하면 처음에는 모호한 상태에서 집권을 했고, 반혁명세력의 공세에 응전하는 과정에서 혁명이 급진화되었다. 차베스진영에는 여러 세력이 있다. 사민주의 세력도 있었고, 공산당도 있고, 트로츠키세력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이 세력간의 역관계를 보자면 처음에는 급진파가 차베스 진여에서 약했지만 혁명이 급진화되면서, 급진파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했지만 기존 국가기구를 인수했기 때문에 관료들을 비롯한 부르주아계급과 연계되어 있는 세력 때문에 지지부진했던 측면이 있었다.

김광수 - 다른 나라의 경우도 반동의 공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급진화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본다. 칠레의 경우도 트럭사업자들의 파업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민중위원회가 지역에 설립되고 식량배급을 책임지는 과정이 있었고, 러시아혁명의 경우도 1917년 7월 반동기를 거치면서 볼셰비키 세력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나, 프랑스 혁명조차도 유럽반동국가들의 간섭전쟁이 시작되면서, 혁명군의 조직과정과 국내 반동세력에 대한 단죄가 병행되면서 혁명이 속도가 붙은 거나 모두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제가 의문이 나는 건, 반동의 공세는 한결같이 모두 겪었던 문제인데, 유독 베네주엘라는 반혁명세력에게 매우 관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김영삼 같은 경우도, 쿠데타 시도가 있었던 것은 군사독재시절의 핵심인 하나회 세력을 완전히 뿌리를 뽑은 것과 참 비교가 된다. 

허석렬- 이건 가정인데, 미제국주의가 인권문제 등을 빌미로 간섭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형식적 민주주의 틀안에서 혁명을 진전시켜야 한다는 모종의 합의가 있는 것 같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미국이 코앞에 있고, 간섭의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에 혁명을 폭력적으로 진행할 수 없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미디어(방송사) 같은 경우도 2002년 쿠데타에 가담을 했는데도 이들을 한꺼번에 폐쇄 시키지 못하고, 나중에 RCTV의 경우만 전파면허연장을 불허하는 방식으로 면허취소를 했다.

김광수 - 그 말씀을 들으니, 우리나라역사에서 해방직후에 당시 좌파가 압도적이었고, 일부 반동적인 언론들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니까 당시 수도에서 가장 강력했던 노조인 식자공 노조가 주도해서 반동언론을 마비시키는 경험이 있는데, 사회주의자가 집권을 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노동자들이 반혁명세력에 대한 사보타지나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이 대단히 의문스럽다.

허석렬 - 그것이 베네수엘라 노동자계급의 역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국가경제가 석유산업에 의존하다보니까 산업노동자들의 형성이 지체되었다. 농업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지주계급도 약했지만 농민부문도 약했다. 농민 대부분이 도시로 이주해 도시빈민이 되었고, 카라카스 지역의 빈민촌이 거대한 비공식부문을 형성하게 되었다. 산업노동자들의 경우는 40년대 2차대전이후에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사민주의적 지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석유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사실상 어용, 노동귀족화가 되었다.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의 경우는 1950년대 정부안에 에너지부가 설립되면서 비로소 석유자원의 이익을 베네수엘라로 가져오기 시작했고, 이후 OPEC(석유수출기구)창설의 주역이 되면서 석유수익이 베네수엘라의 주된 수입원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나마 있던 내수관련 산업들도 위축되었고, 석유의존도가 매우 높은 산업구조가 형성되었다. 그러면서 노동자계급의 형성이 지체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혁명의 게토화>

김광수 - 차베스의 각종 미션들의 경우를 보면 국가재정이 동원되기는 했지만 실제 민중의 자조, 자립조직형태, 특히 협동조합의  형식을 빈 것이 많았는데, 실제 이런 전략이 민중의 자치라는 측면을 강조했지만 혁명의 게토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있다. 이점에 대해서 교수님의 견해를 듣고 싶다.

허석렬-차베스가 집권한 당시 베네주엘라는 산업자본주의가 약했다. 석유가 주된 산업이고, 물론 철강회사도 있고, 전력, 통신등의 산업이 존재했지만 앞서 말한 대로 산업노동자군이 형성되지 못했다. 광범위한 비공식부문이 존재했고, 이들 부분을 협동조합, 이른바 사회적 경제라 부르며 조직하려고 했었다. 이들이 사회적 경제라 명명한 것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으로 편입한다는 의미에서였다.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생산하는 소규모공장을 짓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실험은 양면성이 있는 것이었다. 노동계급의식을 가질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부르주아 의식을 강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2002년 쿠데타가 실패하고 많은 자본가들이 미국 마이애미로 탈출을 했는데, 그 덕에 폐쇄한 공장을 노동자들이 자주관리를 통해 다시 가동하게 되었고, 이른바 공동경영(국가가 절반, 노동자가 절반의 소유권을 갖는)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몇 년간 지속되자 노동자들이 안락함을 추구하고 현상유지에만 만족하게 되어 소부르주아 의식이 만연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차베스 집권동안 베네수엘라에서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양상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즉 민중의 가처분소득이 늘면서 내수산업이 발전하고, 국부유출이 어느 정도 진전되면서 부르주아들의 소득도 아울러 늘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농업생산성도 높아졌다. 

김광수 - 마치 베네주엘라가 자본주의의 과잉이 아니라 결핍 때문에 고통받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허석렬 - 토지혁명도 쿠바나 사회주의 혁명을 겪었던 나라처럼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해서 농민에게 분배하는 것이 아니고 부르주아 질서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소유권을 재검토하는 것이다. 지주들의 소유권이 불분명하니까 국유지로 변경하거나, 장기적으로는 유상몰수해서 분배하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이 과정에서 지주들의 저항이 거세고, 심지어 농민활동가를 살해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차베스정권의 노력에 의해 농업부문에서 생산성이 높아졌다. 식량을 수입하는 나라였는데 지금은 상당히 개선되었다. 

김광수 - 우리의 경우는 토지혁명의 경우도 전통적인 농민들의 요구가 이데올로기적 뒷받침이 있었다. 경자유전이라든지, 뭐 이런 이데올로기가 나름 역할을 했는데, 베네주엘라의 경우, 토지혁명의 주체적 요구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허석렬 - 베네주엘라는 스페인 식민지로부터 시작한 나라여서 인종간의 분업이 있었고, 대토지소유를 기본으로 하는 라티푼디움이 농업생산단위라고 보면 된다. 즉 대지주가 인디오나 흑인노예를 이용해 농사을 짓는 것이 보편적이었지, 농민은 아예 없었다고 보면된다. 오히려 베네주엘라 사회는 농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21세기 사회주의>   

김광수 - 고 차베스는 21세기 사회주의를 많이 언급했는데, 20세기 사회주의와 21세기 사회주의를 어떻게 구별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차베스 본인이나 제 3자의 입장에서는 무엇이라고 보고 있나요?

허석렬 - 20세기 사회주의 실험을 다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왜 실패했는가라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기본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자주성이 20세기 사회주의에서는 구현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당의 지도가 중심이 되고 노동자들이 객체화되었다는 것이다. 차베스 세력이 주장하는 것은 주인공-prognostics 민주주의, 다시 말해 참여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사회주의와 참여민주주의를 결합하는 것이다.

김광수 - 그점에서는 21세기 사회주의자들의 대체적인 합의이고 해방연대도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참여의 주체적 측면을 보자면 베네수엘라의 현상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노동자계급의 형성이 부족하고, 노동자들의 참여는 자주관리는 있으나 빈민들이 다양한 미션과 결합되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참여가 보장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강력한 노동자 정당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허석렬 - 베네주엘라에는 노동조합까지 포괄하는 노동자 정당, PSV가 존재한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혁명적으로 진출하려해도 국가관료들이 저항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도르라는 유명한 철강공장이 있는데, 노동자들이 국유화를 오래전부터 요구해왔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자본이 들어와 있는데, 따라서 국제관계 때문에 국유화할 수 없다는 것이 관료들의 입장이다. 산업부문에서는 말은 자주관리를 한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고려 때문에 자본가들의 법적인 권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더 급진적인 진출이 억압당하고 있다.

김광수 -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역량이 발전하지 않으면 이를 극복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거라고 본다.

허석렬 - 그래서 혁명속의 혁명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차베스 내부에서 혁명속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혁명진영이 단일한 성격을 가진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내부의 토론과 투쟁을 통해서 혁명속의 혁명을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국제분업>

김광수 - 차베스가 시도한 새로운 국제분업의 모델은 일단 남미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됩니다. 물론 이러한 국제분업에서 브라질 같은 대국이 결합되었다는 것도 성과의 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국제분업이 여전히 유효한 지, 혹은 새로운 국제적 단결의 구심으로 성장할 수 있을 지 궁금하고 그 점에 대한 평가를 부탁한다.

허석렬 - 하나는 ALBA 라고 하는 볼리바르 동맹이 있는데 가치법칙을 무시한 민중들의 스스로 필요에 의해 호혜적인 분업체계, 규모는 크지 않고, 베네수엘라의 석유자원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현실이다.

그런데 최근에 베네주엘라가 메르코수르에 가입을 했다. 메르코수르는 처음에는 신자유주의 발상에서 시작했고 EU와 같은 형태를 지향 했었다. 라틴아메리카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빈껍데기가 되었다. 그러나 브라질의 룰라가 집권하고 아르헨티나에도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상당한 규모의 경제기구로 발전되기 시작했다.

원래 95년도에 창설한 메르코수르에는 우루과이, 파라구아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4개국이었는데, 거기에 2006년에 베네수엘라가 참여한 것이다. 왜 베네수엘라가 이런 신자유주의 성격이 강한 조직에 가입했는가라는 의문이 있는데, 지역통합을 배제하면 베네수엘라가 고립될 수 있기에 메르코수르에 들어가서 의제를 바꾼 것이다. 자본가들의 효율성제고 따위의 의제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정치적 통합문제를 제기한다든지 하는 것이 예로 들 수 있다. 

이외에도 우나수르와 같은 정치적 통합체인 남미 연합도 주도했고, 카리브해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동맹체도 만든 바 있다. 베네수엘라는 자국내에 혁명을 진전시키고, 국제적으로는 미제국주의에 대항해서 지역통합을 꾀하고 있다고 본다.

김광수 - 너무나 당연한 실천이 아닌가한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도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하면 자원의 조달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시도는 당연하지 않을까 한다. 특히 제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베네수엘라의 노력이 소련해체 이후에 미국에 대항하는 지역적 정치적 동맹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허석렬 - 차베스의 업적중의 하나는 세계 다극화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북미를 제외한 아메리카 대륙의 새로운 동맹체를 형성한 것이다. 러시아, 중국과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켰다. 한편 중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중의 하나다. 베네주엘라뿐만 아니라 브라질과도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그런 노력들이 미국중심의 일극체제를 다극체제로 변모시켰다는 점이다. 

김광수 - 이점에서도 이런 실천이 나름 모델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겠다.

허석렬 - 가다피의 경우도 아프리카 연합을 추구했다가 미국에서 제거 당했다고 본다. 가다피가 생존하기 위해 미국의 요구를 거의 다 받아주었는데, 막판에는 미국이 리비아에 미국사령부를 설치하겠다는 요구를 했고 이를 리비아가 거부하자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진 것이다.

김광수 - 일국에서 사회주의 실험이 무모하거나, 혹은 결국 실패가 예정되었다는 비관주의자들도 상당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성과를 말할 수 있을까요?
베네수엘라가 제국주의로부터 간섭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혁명의 전진이 주춤거렸던 면도 있는데, 일국에서 사회주의가 가능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는데...

허석렬 - 베네수엘라가 일국적으로 사회주의로 전환하는 것은 지난할 것 같다. 지금도 부르주아들을 한꺼번에 무력화시킨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가 반혁명으로 가면, 우리는 더 사회주의로 가겠다는 식이지, 주도적으로 부르주아를 정치적 억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전략은 국가가 장악한 부문에서 사회주의적 부문을 만들어나가서 사회주의 원리가 압도적인 영역으로 만들어 2030년까지 점진적으로 사회주의를 이루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김광수 - 베네수엘라의 혁명의 속도는 국제혁명역량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전망> 

김광수 - 베네주엘라 혁명의 전망을 진단하신다면?

허석렬 - 혁명속의 혁명이 어떻게 진전될 것인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핵심그룹들이 얼마나 힘을 가질 것인가에 결정될 것이다. 지금은 차베스 진영은 모호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일관되지 않다. 내부의 다양한 이념적경쟁 속에서 사회주의적 지향을 가진 세력이 강화되고, 국가권력을 주도할 수 있느가에 좌우된다고 본다.

김광수- 사회주의적 인간형의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학교교육이나 노동자에 대한 정치교육에서 전진이 있는지요?

허석렬 - 중등학교에서 볼리바르혁명에 대한 수업을 하고 있는데, 반대파에서는 교육의 중립성을 이야기하며 이에 반대하고 있다. 저는 그것보다는 일반인들이 중등교육도 제대로 받고 있는 현실에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특히 필요한 전문가들이 과거에 배제되었던 계층에서 배출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볼리바르 대학에서는 사회주의 교육을 시키고 있다. 지금 반차베스 학생데모는 모두 과거 부르주아 대학에서 교육받은 친구들이 미제국주의하고 연계하에 주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베네수엘라 혁명은 지지부진한 속에 조금씩 진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미국의 간섭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서 절제된 가운데 혁명이 진전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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