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9일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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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관람기] ‘프롤레타리아 미술의 선구자’, 케테 콜비츠를 만나다
황정규  ㅣ  2015년 4월 29일


“나의 작품행위에는 목적이 있다. 구제 받을 길 없는 이들, 상담도 변호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의 인간들을 위해 나의 예술이 한 가닥 책임과 역할을 담당했으면 싶다.”



꽃추위가 가지지 않은 3월의 어느날,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분관에서 진행하는 케테 콜비츠 판화 전시회에 다녀왔다.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던 케테 콜비츠는 1867년 지금은 러시아 땅이 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집안은 중간계급으로 자유주의적 가풍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1848년 독일헉명에 참여하였고 자유신앙운동을 펼친 사람이었다. 아버지 역시 프로이센 정부의 억압에 분노해 자유주의운동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당시는 독일 사민당이 확대일로에 있고 사회주의 운동이 거센 발전을 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역사적 분위기는 그녀의 가족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그녀의 오빠인 콘라트 슈미트는 사회주의자로 독일사민당에 입당하여 기관지 전진에서 일하였고, 엥겔스와 교류한 인물이었다. 한글판 “맑스, 엥겔스 저작선집” 6권에는 오빠 콘라트에게 보낸 엥겔스의 유명한 편지가 실려 있다. 케테는 이런 주변 환경에 의해 자연스레 당대의 사회주의적 분위기에 젖어 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 출신 의사인 남편을 만나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케테 콜비츠의 작품 중에는 연작 판화 “직조공의 반란”이 있다. 이 작품은 1893년 하우프트만의 희곡 “직조공”의 초연을 보고 만들게 된 작품이었다. 하우프트만의 “직조공”은 작가가 실제 그 당시 가난한 직조공의 삶을 살았던 자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쓴 것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맑스와 엥겔스의 절친이자 독일 공산주의자동맹의 맹원이었던 슐레지엔 출신 혁명가, 빌헬름 볼프가 쓴 슐레지엔 직조공 봉기에 대한 책이 희극 “직조공”의 토대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자본론”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맑스가 이른 죽음을 맞은 친우 빌헬름 볼프에게 자본론 1권을 헌정하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케테 콜비츠의 직조공 연작은 매우 유명한데, 아쉽게도 이번 전시회에서는 한 작품밖에 있지 않았다. 이번 전시회가 콜비츠의 작품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키마미술관(오키나와 소재)에 소장되어 있는 56점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다 보니 중요한 작품들 중에 빠진 것이 있었다.


케테 콜비츠는 이른 시기부터 노동자와 여성 등 민중의 삶을 판화로 남겼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그녀에게 매우 큰 상흔을 남겼다. 그녀는 두 차례의 전쟁에서 두 명의 페테를 잃었다. 둘째 아들 페테는 케테와 남편 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두달만에 전사하고 말았다. 둘째 아들의 이름을 붙여준 손자는 2차 세계대전 발발 후 징집되어 전사하였다. 이러한 전쟁의 상처는 그녀의 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데, 실제 작품에서도 이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작품에는 노동자와 민중의 모습들 중에서도 여성, 특히 어머니를 담고 있는 작품이 많았다. 이는 그녀 작품의 또 다른 인상적 특징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전시회에는 칼 리프크네히트의 죽음을 추모하는 목판화와 중세 독일의 농민전쟁을 다룬 연작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4월 19일까지 이어진다. 이제 전시회의 종료가 멀지 않았으니, 가보지 못한 이들은 꼭 관람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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