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8일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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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치세력화로 한단계 더 전진하고 있는 유럽 노동자민중 투쟁
황정규  ㅣ  2015년 4월 29일


유럽의 각국은 대개 오랜 사민주의 정당의 집권을 경험하였으며, 보수주의 정당과 사민주의 정당이 서로 교체 집권하는 양당체제를 유지하였다. 2008년 대공황 이후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가 부가한 긴축정책으로 민중의 삶이 악화되고 이 과정에서 사민주의 정당이 이런 긴축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민중의 분노와 저항이 분출하여 기존 양당체제가 붕괴하고 사민주의정당이 급속도로 몰락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와 함께 구체적 상황과 전개과정은 각이하지만 2010-11년 이후 성장한 대중투쟁에 기반하고 있는 새로운 좌파, 사회주의 세력들이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리스, 좌파정권의 등장


1월 25일 그리스 총선에서 그리스의 ‘시리자(급진좌파연합)’는 36.34%를 얻어 선거에 승리하였고, 그리스 역사상 최초로 좌파정당의 집권에 성공하였다.

시라자는 2004년 결성된 좌파정당, 단체들의 선거연합체에서 출발하였다. 1968년 프라하의 봄 이후 그리스공산당에 반대, 탈당한 그리스공산당 국내파와 1980년대 후반 탈당, 숙청된 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시나스피스모스(좌파운동생태연합)가 지금 시리자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다. 시리자는 애초 선거연합체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다른 많은 소수정당과 정치조직을 포괄하였다. 그 중에는 국제주의노동자좌파, 행동좌파통합운동, 재건공산주의생태주의좌파 등의 단체들이 대표적이다.

2010-11년 국가부채 위기, 유럽 트로이카가 부가한 긴축정책, 그리고 이에 대한 대규모 저항투쟁이 시리자가 약진, 집권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긴축정책에 대한 그리스 노동자, 민중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시리자는 대안정치세력으로 급부상하며 높은 지지를 얻게 되었다. 반면 유력한 좌파세력인 그리스 공산당은 2010-11년 대중투쟁과 시리자의 약진을 인민의 적이자 지배계급의 조종을 받는 흐름이라며 공공연하게 비판하였다. 이러한 정치지형이 대중투쟁 이후 새로운 급진 정치세력 등장의 염원이 그리스 공산당이 아니라 시리자에게로 몰리게 하였다.

시리자가 대중적 지지를 받게 된 이유는 긴축에 대한 명확한 반대를 당의 강령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대공황 이후 국가재정은 악화되었고, 국가채무는 급증하였다. 급증한 국가채무는 PIIGs(포르투강,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국가들을 중심으로 심각한 경제위기를 야기하였고, 이는 유로존 전체의 위기로 비화되었다. 유럽 트로이카와 그 배후에 있는 독일은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엄격한 긴축정책을 요구하였다. 이 긴축 재정은 경제공황으로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더 가혹한 고통을 전가하였다. 이제 전유럽에서 ‘긴축반대’는 노동자민중의 보편적 요구가 되었다. 긴축반대를 내건 시리자의 집권이 유럽 전역에 큰 희망을 안겨주는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다.

그러나 시리자 정부의 앞날에는 험난한 행로가 놓여있다.
 

우선 시리자의 강령 자체가 매우 온건하다는 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시리자의 강령의 실제 내용은 부채 재협상, 긴축정책 중단이다. 이는 부채 상환 자체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그리스정부가 이자를 감당할 수 있고, 공공투자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채를 합리적인 수준에서 재조정하고, 긴축재정을 통해 빚을 갚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통해 빚을 갚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상 현재 유럽연합의 계급관계 속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합리적 요구를 제시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실현불가능한 것이라는 주장이 시리자 내외에서 나오고 있다. 이미 2013년 창당대회에서 좌파강령을 제출한 그룹들은 유로,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한 바 있다. 최근 신임 재무장관은 트로이카를 협상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주장을 강하게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유로존의 유지가 시리자 주류의 입장이다.

결국 이러한 입장은 결국 2월 초중반, 유럽재무장관회의인 ‘유로그룹’ 회의에서 그리스 지원패키지 연장을 두고 이루어진 협상에서 시리자 정부의 대거 후퇴를 결과하였다. 2월 20일 그리스가 유로그룹과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4개월 연장하기로 합의하였는데, 합의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시리자의 반긴축, 부채재조정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소위 트로이카와 맺은 현재의 구제금윰프로그램을 사실상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합의 중에는 경멸적인 표현이 된 '트로이카(Troika)'는 '기관들(institutions)'로 바꾸고, '채권자(debtor)'는 '파트너'로 바꾸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내용도 있어 많은 이들의 냉소와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합의에 따라, 그리스는 유로그룹에 이러한 합의에 입각한 개혁조치들을 제출하여 기관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 내용을 대강 살펴보면, 실망스러운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집권 두 달을 맞은 시리자 정부을 섣불리 재단하긴 힘들다. 시리자 다수파의 노선이 잘못되었고 상황을 낙관한 측면도 있지만, 협상 초기 유럽중앙은행은 그리스 시중은행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끊었고 그리스 국내에서는 대대적 자본유출이 일어났다. 반면 시리자가 집권할 시기를 전후하여 그리스 내부의 대중운동은 다소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단순히 대중운동을 통해 난관을 극복해가기도 쉽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의 투쟁상황은 순탄치 않은 자본주의 변혁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러나 4개월 후 협상에서조차 이러한 후퇴를 반복한다면, 이러한 후퇴는 결정적인 패배로 굳어질 것이다. 그리스 시리자 정권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는 시리자가 어떻게 올바른 원칙과 정책을 수립해나가는가, 그리고 시리자를 더욱 압박하고 급진화시키며 유럽의 계급지형을 바꾸어내는 대중운동의 성장에 달려 있을 것이다.



스페인의 포데모스의 겉과 속

청년실업이 유럽에서 가장 높았던 스페인은 2011년 5월 15일 수도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을 점거하고 대대적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대중투쟁은 소강된 듯 보였지만,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에 대한 욕구는 높아 있었다.

2014년 1월 중순 새로운 정당 결성 요구를 담은 “변화를 만들자”라는 선언문이 교수, 언론인 등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발표되었다. 이윽고 이들을 중심으로 ‘포데모스(Podemos,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정당이 결성되었다. 오랫동안 스페인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사회주의노동자당(PSOE)’에 염증을 느낀 이들이 포데모스로 몰려들었고,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5명의 의원을 당선시켰다. 현재 포데모스는 당원수 2위, 당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정당으로 급격히 성장하였다.

그러나 포데모스의 성장이 현재의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할 새로운 진보적 정치세력의 등장을 바라는 염원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지만 당 자체의 행보나 정책은 강한 의문이 들게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반적으로 직접민주주의와 대중참여를 강조하는 유럽의 새로운 정치세력화 추세와 다르게, 포데모스는 당 지도자인 파블로 이그레시아스의 개인적 명망성에 기대는 정치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그레시아스는 30대 중반의 젊은 정치학교수이자 스페인 미디어에서 유명한 토론자라고 한다. 포데모스는 대중에게 편하게 다가가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그레시아스의 개인적 인기에 의지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현재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또 다른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럽 각국에서 부상하고 있는 급진, 좌파 정당을 무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분석, 평가해야 함을 의미한다.

사회주의 세력의 재등장, 슬로베니아의 통합좌파


과거 사회주의 국가였던 슬로베니아에서도 사회주의세력의 정치세력화가 급진전되고 있다. 2012년 민관협력(PPP)을 통해 부패한 과속단속 카메라 사업을 추진하던 말리보르 시에서 저항이 시작되었다. 이 투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결국 IMF도 놀랄 만큼 강도 높은 긴축정책,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던 슬로베니아 총리까지 사임하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대중투쟁 이전부터 새로운 세대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주의 이론을 학습, 선전하는 활동(노동자와 펑크 대학, 노동연구소 등)이 활발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대중투쟁을 통해 슬로베니아 민중들은 자신들의 겪는 고통, 자국 자본가정권이 부과하는 정책이 유럽 위기, 더 나아가 자본주의 자체가 야기한 문제라는 것을 점차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슬로베니아 사회주의자들은 2012년 투쟁 이후 사회주의정당 결성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었다. 이들은 2014년 3월 8일 ‘민주적 사회주의 이니셔티브’라는 당을 창당하고 다른 좌파 정당들과 ‘통합좌파’라는 선거정당을 결성하여 단 몇 개월만에 원내진출(6%)을 이루었다. 반면 동 선거에서 사민주의자들은 5.9%, 퇴진한 총리가 속한 당은 4.5% 득표로 찌그러들었다.



교훈


우리가 유럽의 경험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동자민중의 커다란 정치적 열망이다. 이들은 기존의 자본가계급 정당들이 아닌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길 바라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 힘은 일년도 안 된 신생정당을 유력한 정당으로 탈바꿈시킬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열망을 안고 등장한 정치세력이 노동자민중의 삶을 개선시키고,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역사적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희망은 또 다른 절망으로 바뀌고 말 것이다. 요컨대 사회주의로의 역사적 흐름을 만드는 정치세력의 등장이 핵심적 과제라는 것, 이것을 유럽의 노동자민중운동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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